[도슨트 by 푸름] 동시대 미술 맛보기 모음집

APMA, CHAPTER THREE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글 입력 2021.05.2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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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by 푸름]은 필자(푸름)가 직접 체험한 문화예술을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소개하는 페이지입니다.

 

 

 

APMA, CHAPTER THREE


 

안녕하세요, 여러분! 새로운 전시와 함께 돌아온 [도슨트 by 푸름], 푸름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전시는, 빼어난 동시대 미술 작품을 다수 소장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소장품전, [APMA, CHAPTER THREE]입니다!

 

전시 제목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듯이, 이번 소장품전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최한 세 번째 소장품전입니다. 추상회화, 구상회화, 목공예, 개념미술, 설치미술, 영상예술 등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한 번에 맛보고 올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 전시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은 전시된 작품들이 1960년대부터 202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전시 작가의 상당수는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죠.

 

그래서 이번 도슨트 제목은 ‘동시대 미술 맛보기 모음집’으로 붙여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본 전시에서 특정한 사조에 관한 깊은 이해나 작품들 사이 일관된 서사를 체험하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APMA, CHAPTER THREE]는 정말 매력적인 전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동시대의 다양한 사조의 예술작품이 한 데 모여있어서,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부터는 제가 본 전시에서 특히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몇 점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차원을 넘나드는 예술가 – 이건용



우선 본 전시에서는 문자 그대로 차원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도슨트에서 소개해드릴 작품은 이건용 작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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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신체드로잉 76-1-B>

 

 

이 그림은 3차원의 행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사실 그림만 보면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3차원이 반영된 2차원이라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추상회화로 보이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렇지만 작가가 작품 옆에 첨부해 놓은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이 작품이 왜 3차원을 2차원으로 기록한 작품이라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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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작가는 현재에도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현대미술가입니다. 얼마 전에는 예술의전당 전시 <ㄱ의 순간>에서 ‘한글 달팽이걸음’이라는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지요. 사실 ‘달팽이걸음’ 행위예술은 작가가 1979년에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입니다. 이러한 이건용 작가의 작품은 대개 3차원인 자신의 행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기어 기록한 것들입니다.

 

그의 <신체드로잉> 시리즈 중 한 작품인 위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 옆에 첨부된 사진들을 잘 살펴봅시다. 또한, 이 작품이 그려진 평면이 천으로 된 캔버스가 아니라 나무라는 점 역시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화가가 작품을 그리고자 할 때면 그릴 평면을 마주 보고서 붓을 듭니다. 그러나 이건용 작가는 본 작품을 그리기 위하여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평면의 뒤편에 서서 붓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널빤지 너머로 손을 뻗어 붓이 닿는 곳까지 색을 칠합니다.

 

손이 닿는 곳까지 붓칠을 다 하고 난 뒤에는, 색이 입힌 부분까지 나무판을 톱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잘린 나무판은 옆으로 잠시 밀어두지요. 그러고 나서는 다시 나무판 뒷면에 섭니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낮아진 나무판이기에, 작가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깊게 붓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곳에 팔이 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붓이 닿는 곳까지 붓칠하고, 또 한 번 더 붓칠이 된 곳까지 나무판을 톱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더 반복합니다. 나무판의 가장 아래까지 붓이 닿게 되었을 때가 이건용 작가의 3차원적 행위 기록이 마무리되는 때입니다. 작가는 톱으로 자른 나무 조각들을 순서대로 다시 붙입니다.

 

그가 3차원을 2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색채의 변화’입니다. 우선 작품의 위부터 아래까지 색채의 변이를 잘 살펴봐 주세요. 작가는 본 그림을 그리는 데에 검은색과 흰색을 사용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드러나듯, 작가가 처음부터 두 색을 완전히 섞어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칠해졌을 가장 윗부분은 검은색과 흰색이 다소 독립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즉 그림의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길수록, 흰색과 검은색이 섞이어 칠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섞이지 않은 채로 사용되기 시작한 물감이 작가의 행위가 반복됨에 따라 섞일 수밖에 없어진 것이지요. 이러한 점에서 위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까지 잡아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붓칠하는 것이 비교적 어려웠을 상단부의 붓칠 간 밀도는 붓칠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을 하단부의 붓칠 간 밀도보다 낮습니다. 가장 아래는 붓칠이 빈 부분이 거의 없지만, 가장 윗부분는 붓칠 사이에 듬성듬성 틈이 있습니다. 작품이 창작되는 당시의 서사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쩌면 이 그림은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3차원적 행위에 시간이 포함된 4차원적 요소를 2차원으로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것들을 관찰하고 난 뒤에는, 2차원의 그림 속에서 3차원적인 작가의 행위가 더욱 생생하게 상상되지 않나요? 저는 이제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볼 때면 그가 작품을 창작하는 당시의 서사까지 연상됩니다.

 

더욱 매력적인 점은 이러한 이건용 작가의 실험적인 작업은 여전히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용 작가는 지난해 미국 아트플랫폼 아트시(Artsy)가 선정한 ‘지금 주목해야 할 작가’ 35명 중 유일한 한국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죠. 역시나 현재 진행 중인 [APMA, CHAPTER THREE]에서 40년이 넘도록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마주해보실 수 있습니다.

   

 

 

의자, 의자, 의자 – 조셉 코수스


 

이번에는 작품 설명에 앞서서 세 가지 상황을 떠올려보도록 합시다.

 

외국인 친구가 여러분과 메신저로 대화하던 도중 갑작스레 여러분에게 의자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이걸 뭐라고 불러?’ 그럼 여러분은 뭐라고 답해줄 것인가요? 아마 ‘의자’라고 부른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다음 상황입니다. 역시나 외국인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갔습니다. 친구가 카페에 놓여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묻습니다. ‘이걸 뭐라고 불러?’ 그럼 여러분은 역시 ‘의자’라고 부른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마지막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외국인 친구가 당신에게 ‘stool’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럼 여러분은 이것마저도 ‘의자’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참고로 stool은 의자, 보통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가리킵니다.)

 

그럼 여기에서 ‘진짜 의자’는 무엇인가요? 아마 대부분은 ‘두 번째 의자가 진짜 의자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물 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진짜 의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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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코수스 <하나이면서 세 개인 스툴>

 

 

‘의자’라는 것은 구체적인 실재를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의자’는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를 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라는 ‘실재’가 ‘ㅇ, ㅡ, ㅣ, ㅈ, ㅏ’이 글자들을 조합한 것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나요? 이 다섯 개의 글자와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를 연결한 것은 사회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어 문화권 사회이지요. 영어문화권 사회에서는 같은 것을 가리킬 때 ‘s, t, o, o, l’이 다섯 글자의 조합과 연관 지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있는 부분인데 말이지요. 조셉 코수스는 바로 이 부분을 집어낸 것입니다.

 

코수스의 작품 ‘하나이면서 세 개인 스툴’에서는 세 개의 사물, 그러니까 왼쪽부터 ‘의자 사진’, ‘실물 의자’, ‘의자(stool)의 사전적 정의’가 묶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세 가지 모두 의자인 동시에 의자가 아닙니다. 그것이 담고 있는 ‘개념’은 의자이긴 하지만 셋 모두 의자의 ‘기능’은 할 수 없지요.

 

“어? 왼쪽의 ‘의자 사진’과 오른쪽의 ‘의자의 사전적 정의’가 의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가운데의 ‘실물 의자’는 왜 ‘의자’가 아니라는 것인가요? 앉을 수 있지 않나요?”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대답은 실물 의자 왼쪽 아래에 있는 ‘작품입니다. 앉지 마세요.’라는 팻말에 있습니다.

 

조셉 코수스의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인 ‘실물 의자’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됨과 동시에 ‘실물 의자’마저도 ‘의자’의 본질적 기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의자는 그 위에 앉기 위해 있는 것인데, 코수스의 작품 속 ‘의자’에는 ‘앉으면 안 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이것은 ‘의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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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초현실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에게 이 질문을 하면 아마 ‘아니다’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죠. 그리고 정말로, 그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캔버스 위에 있는 물감의 조합이지요.

 

이처럼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일상적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조셉 코수스의 개념미술 작품들의 매력입니다. 이번 [APMA, CHAPTER THREE] 전시에서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으니 꼭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평안을 마주하며 – 김창열



아무래도 마지막 작품 소개는 이 작품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전시 동선상 마지막으로 감상하실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바로 김창열 작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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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회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이번 [APMA, CHAPTER THREE]에서 선보이는 김창열 작가의 작품은 그의 <회귀> 연작 중 하나입니다. 지난 1월 5일 슬픈 작고의 소식과 함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다가간 김창열 작가를 기리기 위하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김창열 작가의 작품 하나만을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도 작고 소식과 함께 김창열 화백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창열 작가는 8년 전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한 도립 미술관이 건축되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물방울을 발견할 수 있기에, 그는 ‘물방울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 즉 단순한 기하학적 추상이 아니라 작가의 감정, 행위, 표현 등을 담는 추상회화의 선구자이며, 그의 물방울에는 이러한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지요. 전시 해설을 따르자면 그는 당신의 물방울에 분노, 불안, 공포 즉 격정적인 감정들을 녹여내어 ‘허(虛)’로 돌렸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마음에 평안을 얻은 것이지요.

 

본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배경과 물방울의 대조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흐릿하다 못해 해체되어가는 것만 같은 천자문 한자들인데, 물방울은 그 그림자까지도 극사실적으로 또렷합니다.

 

이로부터 더 많은 해석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더 많은 말씀을 나누어드리고 싶기도 하지만,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그저 작품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것인 듯합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김창열 작가의 작품이 그랬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에서는 김창열 작가의 한 작품만을 감상할 충분한 공간까지 가질 수 있기에, 그 평안을 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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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모펫 [Lot 110207X (미나리아재비꽃)]

 

 

그 외에도 프레드 샌드백의 공간을 가르는 조각, 도널드 모펫의 참신한 캔버스 회화, 얀 보의 ‘가치 부여’ 작업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다채로운 전시이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다녀와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APMA, CHAPTER THREE]는 2021년 8월 22일까지 계속됩니다. 방문 전에 예약하실 것을 권유해 드립니다. 지금까지 [도슨트 by 푸름], 푸름이었습니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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