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극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 매그놀리아 [영화]

끝없는 비극의 굴레
글 입력 2021.05.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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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그놀리아>는 한 퀴즈쇼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인간사를 다루며 그 행간에 놓인 인간의 비극을 조명한다. 영화는 총 9명의 삶을 집약적으로 다루며 결국 인간이 겪는 비극은 끝없는 굴레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많은 이의 삶을 다룸에도 과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각 인물이 퀴즈쇼를 중심으로 얽혀 있단 것이 밝혀지는 순간을 향한 긴박함은, 단 한시도 화면에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퀴즈쇼는 그 자체로 영화를 관통한다.

 

 

 

애들이 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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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는 어른과 아이를 대결 구도로 세워 승리를 판가름한다. 퀴즈쇼는 극 중 30년이나 명성을 끈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소개되는데, 제목은 ‘애들이 뭘 알아?’이다. 이는 아이들이 알면 뭘 얼마냐 알겠느냐 말하면서, 실제로 뭘 알고 있다면 거기에 신기해하며 집단으로 박수를 쳐주는 게 그만큼이나 오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퀴즈쇼의 포맷은 수많은 비극을 초래한다. 아이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철저하게 대상화된다. 어른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의 아이로서의 순수함과 귀여움은 남아 있는 존재. 극 중 스탠리가 자기 자신을 ‘괴짜’라고 칭한 건 무리가 아니었다.


또한, 퀴즈쇼를 비추는 티비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도 끊임없이 비극을 양산한다. 과거 퀴즈쇼의 퀴즈왕이었던 도니는 모든 상금을 부모에게 빼앗기고, 현재 신기록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스탠리는 친아버지의 방관과 학대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정답만을 말하는 기계가 되길 요구받는 그들은,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이들, 즉 어른과 대치되는 이들은 퀴즈쇼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 인생도 퀴즈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침묵하는 어른들이 있다.

 

 


침묵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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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오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침묵한다. 그들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죽음이 닥친 후에야 비로소 과거를 살핀다. 30년 동안 퀴즈쇼의 호스트를 맡으며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누린 지미 게터는 어린 시절 딸을 성적 학대한 후 암에 걸려 두 달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순간이 돼서야 아내에게 속죄한다.


토크쇼의 제작을 맡은 얼 패트리지는 과거 아들과 병든 아내를 두고 떠난 전적이 있다. 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가운데 그는 간호인에게 자기 아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고, 뒤늦게 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음을 시인한다.


얼을 찾아온 아들 프랭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눈물 젖은 원망을 토해내지만, 그는 이미 정신을 잃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속죄하는 순간에도 지미는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진정한 죄와는 대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끝끝내 침묵이든 침묵이 아니든, 침묵한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릴 잊지 않았다.“라는 퀴즈쇼의 캐치프레이즈는 웃기게도 그들의 삶을 겨냥한다.


 

 

우연의 탈을 쓴 비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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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한 사건 현장을 방문한 사명감에 넘치는 경찰관 짐은 범인이 묘연한 상황에서 자신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는 꼬마를 만난다. 꼬마는 그 앞에서 범인의 정보가 담긴 랩을 열심히 하지만, 그는 곧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건 현장을 떠난다.


주목해봐야 할 것은 그때의 카메라 앵글이다. 카메라는 태연히 떠나는 짐을 바라보는 꼬마의 뒤통수만을 비출 뿐이다. 그리고 곧 화면은 곧바로 책상 위에 여러 권의 책을 펼친 채 그것들을 읽는 스탠리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스탠리는 다정한 스태프의 애매한 대응으로 퀴즈쇼 도중 바지에 오줌을 싸는 수치를 당한다. 후에 스탠리가 일어나지 않으려고 하자 PD가 그 스태프에게 무슨 일이냐 묻는다. 이때 그 스태프는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투로 일관한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방관자 그 자체이다.


두 어른의 침묵으로 이어진 아이들은 퀴즈쇼에 등장하건 등장하지 않건 삶 자체가 거대한 퀴즈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인간사의 비극을 퀴즈쇼의 포맷으로 보이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 집약해 어떻게 비극이 양산되고, 또 어떻게 쉽게 거기에 침묵하는지를 보여준다. 광범위한 인간사는 한 프로그램 쇼에 녹아 있다.


인간은 얼마나 기만적이 존재인가. 이 삶과 이 세상에서 잘해보겠다 다짐하는 사명감에 넘치는 경찰관은 자기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꼬마를 무시해 버린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 스탠리를 감싸줄 수 있었던 조금은 다정한 듯 보였던 스태프 역시 끝끝내 불안정한 시선을 거둘 뿐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비극은 양산된다.


영화 <매그놀리아>는 우연의 탈을 쓴 순간의 어긋남을 통해 삶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비극은 그저 한순간에서 비롯되고, 이는 그리 대단한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예고도 없다는 것을.


  


총의 실종, 개구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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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일종의 절대자가 이들에게 적절한 단죄를 내린다는 점이다. 짐이 잠시 위험에 처한 사이 앞서 랩을 하던 꼬마는 그의 총을 가져가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 하늘에서 내리는 개구리 비는 얼과 지미의 목숨을 앗아간다. 사실 단죄의 시작은 그들이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그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단죄가 이루어지는 순간 지미의 아내는 딸 클로디아을 찾아가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아교정을 하려 돈을 훔치던 도니는 다시 돈을 되돌려 놓고 싶은데 열쇠가 고장 난 상황에서 다행히 짐을 만나 돈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단죄의 순간이 되자 인간의 연대가 시작된다.


마치 종말이 시작된 후 필사적으로 서로를 찾기 시작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이 장면은 인간은 결국 혼란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극 중 인물들은 타의든 자의든 서로를 찾고 오랜 시간 케케묵은 감정은 그렇게 개구리 비에 씻겨 나간다.


극 초반 짐은 하루에 좋지 않은 호출이 20번씩 와도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행복한 경찰이라 말한다. 그가 도니를 도운 후, 그러니까 임무 수행이 끝난 후에는 하늘에서 총이 떨어진다. 꽤 직설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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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친 전개는 개구리 비에서 절정에 달한 뒤 고요해진다. 그리고 이 뒤에는 공허한 질문이 함께 남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 짐은 도니를 보낸 후 차에 남아 이렇게 되뇐다. 이는 영화 <매그놀리아>가 끝없는 비극의 원인을 꼽는 장면으로, 우리는 용서 할 수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용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게 된다.


어릴 적 병든 엄마와 자신만을 두고 떠난 아버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이건 인간이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닌 듯하다. 극 중 짐이 신에게 기도하듯, 또다시 개구리 비와 같은 간절한 기회만을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듯하다.


영화는 마지막 클로디아가 짐의 진실한 고백을 듣고 환하게 웃는 정면 샷을 잡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줄 사랑은 많지만, 누구에게 줄지 모르는 도니는 평생을 방황할 것이고 스탠리는 자신을 더 잘 대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말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다. 모든 이들이 웃는 결말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영화 <매그놀리아>가 시작할 때 나온 우연으로 점철된 비극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그건 마냥 웃음만 나오는 일은 아니다. 인간의 비극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리고 거기에 도대체 끝은 있는 것일까.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영화 <매그놀리아>를 통해 이렇게 답한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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