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과물보다 과정이 돋보인,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전시]

글 입력 2021.04.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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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진라면과 마찬가지인 미국의 캠벨수프, 혹은 코카콜라 등 친숙한 브랜드와 필수재를 대상으로 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앤디 워홀 그 자체도 1928년에 태어나 1987년에 작고한 현대 예술가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에 가끔은 그가 200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앤디 워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캠벨수프 통조림, 벼락 맞은 듯한 은발머리, 대량생산에 용이한 실크 프린팅 작품들,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라는 그의 말. 이러한 단편적인 부분들을 조합해보면 앤디 워홀은 '괴짜, 파티광, 혹은 돈을 밝히는 속물'에 가까워 보인다. 혹은 일찍이 실크프린팅 작품으로 성공 가도에 올라 고생 하나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이미지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앤디 워홀의 모습은 그의 일부일 뿐이다. 더현대서울의 복합문화공간 ALT.1에서 진행된 전시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은 친숙한 작품 너머에 가려져 있던 앤디 워홀의 다른 부분들을 잘 보여주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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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은 더현대 서울의 개관전으로 오픈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의 대표작인 마릴린 먼로, 꽃 등 시그니처 판화 작품은 물론 쉽게 볼 수 없었던 그의 드로잉 작품을 포함한 153점의 작품들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의 주요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대규모 투어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릴린 먼로 작품을 시작으로 캠벨 수프 시리즈, 꽃과 황소 시리즈 등 너무나도 익숙한 작품들과 함께 그가 함께 작업했던 밴드의 앨범 자켓, 기타 등 여러 소장품들이 전시관을 채웠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의 유명한 작품들보다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던 그의 명언들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었다.

 

 

 

약하고 내성적이었던 아이, 앤디 워홀과 최고의 지지자였던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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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n Heyman, courtesy Woodfin Camp Associates


 

예술가로 성공한 이후 사진 속 앤디 워홀의 모습은 아주 개성 있고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과 달리 어렸을 적 앤디 워홀은 연약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안 그래도 내성적이었던 그는 신경병의 일종인 무도병을 앓게 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또래 친구들보단 만화책, TV와 더 자주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슬로바키아체코 출신의 이주민이었던 앤디 워홀의 가족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의 어머니는 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빚을 내서 미술 도구와 카메라를 사주는 등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은 이런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을 정도로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작품에도 녹아 있었다.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섹션 1 Fame, My Love, My Idol은 명성과 관련된 앤디 워홀의 작품들을 다룬 섹션인데 바로 이곳에 마릴린 먼로의 작품과 함께 그의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를 그린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 또한 미술에 흥미가 많아 이후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앤디 워홀이 뉴욕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당시에는 그의 일러스트에 어머니의 손글씨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어머니와 함께 자신들이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책인 "25 Cats Name Sam and One Blue Pussy"를 펴내기도 했다. 앤디 워홀에게 있어 어머니는 최고의 지지자인 동시에 마음이 통하는 동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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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ats Name Sam and One Blue Pussy의 일러스트(출처: Brain Pickings)

 

 

 

앤디 워홀도 처음부터 성공했던 건 아니었다.


 

비즈니스 또한 최고의 예술이라는 앤디 워홀의 표현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성공 가도에 올랐을 것이란 오해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나 앤디 워홀은 앞서 말한 대로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첫 커리어 또한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순수 예술가가 아닌 산업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취준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뉴욕 거리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했다. 워홀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고 그중 한 잡지사는 워홀의 일러스트가 매력적이지만 그들이 필요한 건 일러스트가 아닌 구두 디자인이라는 이유로 워홀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워홀은 50개 이상의 구두 디자인을 그려 해당 잡지사를 다시 방문했고 이들은 워홀의 실력과 열정에 반해 그와의 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워홀은 점차 이름을 알리며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고 이는 그가 예술가가 되는 데에 큰 발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벨벳 그라운드라는 밴드와도 협업해 우리에게 익숙한 바나나가 그려진 앨범 재킷을 만들기도 한다.

 

워홀이 처음 작업했던 구두 일러스트 및 벨벳 그라운드의 앨범 재킷 또한 이번 전시에서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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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친숙한 소재를 활용한 친숙한 작품. 그로 인해 더 이상의 관심과 흥미를 느낄 순 없었던 예술가, 앤디 워홀. 이번 전시는 친숙했던 그의 결과물 뒤에 숨어 있던 삶의 과정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ALT.1는 전시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도슨트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이용해 별도의 신청 없이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의 도슨트 중 한 명인 김찬용 도슨트는 유튜브에 이번 전시를 보기 전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을 영상으로 업로드해두었다. 그냥 보면 단순한 작품이지만 이러한 콘텐츠를 활용해 그에 얽힌 깊은 이야기들까지 제대로 즐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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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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