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피보다 진한 느슨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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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성애 로맨스와 정상 가족 신화를 재현하는 데 치중된 한국 드라마의 경향성에 반하여, 로맨스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관계 속 인간을 비추는 ‘장르물’과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그리는 드라마들이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있다. OTT 서비스나 유튜브 등 드라마가 제작되고 소비되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다양해진 것 역시 드라마의 다양한 재현 방식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인 중 하나이다. ‘다양성 드라마’에 대한 오랜 수요와 동시에, ‘다양성 드라마’를 분류할 만큼 현재 주류 드라마가 아직 제한적인 이야기만을 담아내고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퀴어는 현재 한국 드라마 콘텐츠가 확보하고 있는 다양성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존재이다. 지난 설 특선 영화로 TV에서 방영한 ‘보헤미안 랩소디’에선 아무런 맥락 없이 동성 키스신이 삭제된 바 있다. 성 소수자였던 실존 인물의 일생을 다각적으로 담아낸 영화에서 합당한 이유 없이 해당 장면을 잘라낸 것은 성 소수자의 모습을 지우고 배제하는 혐오의 관성이 대중 매체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대중 매체는 아직도 다양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서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욱 발화되고 전달되어야 하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한국 드라마의 전통 격인 가족 시트콤의 형태로 풀어낸 웹 드라마가 있다. 《으랏파파》는 유튜브 채널 ‘연분홍TV’에서 제작한 한국 최초 퀴어 시트콤으로 펀딩을 통해 제작된 3부작 드라마이다.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한 청소년 ‘혀크’와 그의 하우스메이트이자 아빠인 체육 교사 ‘고현미’가 사는 집에 택배 기사 ‘쌀차비’가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정상성의 개념이 서사에 중심적으로 자리하는 가족 드라마에서 이성애자도, 혈연관계도 아닌 가족을 주인공으로 표방한 것이다.
《으랏파파》의 가족이 여타 가족 드라마에서의 가족과 다른 지점은 서로 간 느슨한 관계에 있다. 혀크는 택배를 전달받은 인연이 전부인, 이름도 몰라 손에 들고 있던 찹쌀 과자에서 이름을 딴 쌀차비가 고시텔에서 쫓겨나 밤길을 헤매자 가족과의 상의도 없이 집으로 들인다. 저도 모르는 사이 식구를 하나 더 들이게 된 고현미는 황당해하지만 ‘쟤도 이쪽’이라는 혀크의 급조된 설득 한 마디에 바로 쌀차비를 받아들인다. 이름도 나이도 잘 모르는 이들이 한순간에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된 계기는 ‘이쪽’이라는 공통감이다.
이를 소수자성에서 오는 사회적 소외나 소수자 간 공유되는 연대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들의 공통감을 완전히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엔 상대가 소수자라는 인식에서 촉발하는 구체적인 공감의 감정뿐 아니라 포용과 존중의 가치로 나를 보호해줄 것이며 모든 걸 단정 짓지 않아도 유지되는 느슨한 관계를 긍정하고 있으리라는 믿음 역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고현미는 쌀차비의 성 지향성이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쌀차비 역시 혀크가 여자인 고현미를 왜 아빠라고 부르는지 묻지 않고 망설임 없이 아저씨라고 부른다. 이들은 서로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다. 평등이 가장 중요한 원칙인 이 집에선 상대의 존재를 자신의 시야에 맞춰 재단하며 정의 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사는 모두가 그러한 이상적인 인식을 뼛속 깊이 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등의 원칙을 역설하는 고현미는 여전히 혀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다. 혀크가 만나는 이들이 ‘팸’인지 ‘부치’인지 궁금하고 혀크가 남자와 함께 있자 의아하게 바라보며 ‘요즘 세상이 어떤데 남자를 만나냐’고 한탄한다. 어릴 때부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며 허세를 늘어놓는 고현미와 여자의 정의를 묻는 청소년 사이엔 세대의 간극에서 오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며 퀴어 커뮤니티에 몸담아온 성인과 가변적인 환경 속에서 아직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의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고현미의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배제하지 않는다. 소수자를 모범적으로 그리며 서사적 도구로 대상화하는 차별적 묘사를 피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니는 빈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이란 무엇이냐는 청소년의 질문에 고현미는 ‘책임’이라고 답하며 내 여자 하나만큼은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비장하게 답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실소가 터지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유머가 무언가를 매듭짓지 않고 시종 감상자들이 채워나갈 수 있는 열린 질문을 제시하는 드라마의 화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퀴어라는 일원적인 정체성이 아닌 각각 고현미, 혀크, 쌀차비의 대답을 할 뿐이며, 그 사이의 넓은 틈에서 관객들은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다.
작가 이반지하는 ‘관객이 이 작품을 보며 요새 10대 안 저렇다, 요새 부치 안 저렇다 토론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생산하길 원한다’고 밝힌다. 매체에서 철저히 가려 왔던 퀴어의 존재를 적극적이고 힘 있게 드러내는 수사법이다.
동시에 드라마는 이러한 논의에서 최소한 수호되어야 할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성 지향성에 대해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혀크에게 쌀차비는 그렇지 않다며 위로하고, 대화를 몰래 듣던 고현미는 혀크를 의아하게 바라봤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수많은 고민이 유머러스하게 허용되는 이 극에서 ‘모두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원칙이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심지어 스스로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제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혀크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쌀차비가 단호하게 피력하고 오히려 오랜 시간 혀크와 함께 살아온 고현미가 깨달음을 얻으며 반성하는 장면은 어른의 보수적인 시각을 뒤집는 청소년의 시선이 유의미한 동료 의식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며 폭넓게 형성되는 연대의 힘을 조명한다. 쌀차비가 무성애자와 관련된 포스터 앞에 멈춰서는 마지막 장면 역시 의미 있게 다가온다. ‘레즈비언 부치’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고현미와 성애에 관련된 고민에 골몰하고 있는 혀크의 공간에 쌀차비는 새로운 물음표를 가져다준다. 극은 완성되지 않은, 그리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존재의 열린 질문이 가져올 균열을 긍정하고 기대하며 끝이 난다.
퀴어라는 정체성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인 이 집에선 모두가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마땅히 전제되고 그리하여 평등이 당연시된다.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각자의 영역이 있음을 존중하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하고 일차적인 집단을 소재화한 극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 가치를 《으랏파파》는 전면에 내세운다. 피보다 진한 느슨한 관계로 맺어진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 가족’이 아니지만 여타 전형적인 가족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설적이지만 당연하다. 사회가 믿는 정상 가족 신화는 수많은 가능성을 억지로 배제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더 이야기되고, 더 비춰져야 한다. 주류 매체에서 꺼내지 않은 이야기의 물꼬를 유쾌하게 튼 극에서 오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더욱 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과 함께 웃고 싶다. 고현미의 옛 애인과 관련된 이야기나 혀크와 쌀차비의 지향성에 관한 고민 등 아직 밝혀지거나 완결되지 않은 서사가 많아 시즌 2를 기다리게 된다. 이들이 또다시 가져다줄 유의미한 질문과 웃음을 기대해 본다.
참고 기사
김일란 감독, 이반지하 작가, 백현주 배우가 말하는 한국 최초 퀴어 시트콤 '으랏파파', 씨네21 (남선우)
[조현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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