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웹드라마'의 개성 - 짧은 대본 [드라마]

글 입력 2021.04.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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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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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웹드라마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연.플.리]에서 시작되어 [에이틴]으로, 그리고 다시 [연.플.리] 혹은 [에이틴] 그 비슷한 류의 청춘 로맨스로 끝도 없이 우려지고 있는 현 웹드라마의 경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런 콘텐츠를 원하는 시청층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그들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현시대에 대두한 유튜브라는 미디어 채널에 이만큼 적절한 포맷을 갖춘 콘텐츠도 없다는 걸. 또한 이러한 콘텐츠 덕분에 인지도 없는 신인 배우들에게 대중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웹드라마를 썩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웹드라마가 어느 순간부터 그저 ‘작고, 짧은 드라마’ 정도로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웹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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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나는 웹드라마를 제법 좋아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1세대라 칭하는 2015~2017년 사이에 등장한 웹드라마를 나는 꽤나 즐겨봤다. 이를테면, 3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 평범한 20~30대 남성의 우스꽝스러운 내레이션을 특유의 빽빽한 편집으로 담아낸 [72초] 시리즈.


각자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남녀의 담화를 한정된 공간에서의 원테이크로 담아내어 마치 대학로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안겨줬던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리즈.


어딘가 맹한 두 여자가 겪는 일상 속 일화를 독특한 연출과 화법,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시키는 색감의 미술로 담아낸 [두 여자] 시리즈 등등.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기존의 지상파 드라마에선 시도할 수 없는, 오직 웹드라마에서만 가능한 무언가가 있는, 그렇기에 드라마와 명확히 구분되는 자기만의 개성을 갖춘 웹드라마를 좋아했다.


하지만 [연.플.리]로 대표되는 2세대 웹드라마에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1세대 웹드라마에 비하면 기술적인 퀄리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출연하는 배우들의 비주얼이나 연기력도 상향 평준화됐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단지 그게 전부라면, 드라마 대신 웹드라마를 봐야 하는 이유는 짧은 분량과 VOD가 공짜라서 본방사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두 가지 말고는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이후부터 나는 웹드라마를 썩 좋아하지 않게 됐다.

 

 

 

[짧은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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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얼마 전 한 웹드라마를 발견하게 됐고, 정말 오랜만에 내가 웹드라마를 제법 좋아하기도 했던 그때의 기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서두가 좀 길었지만 아무튼 이건 내가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쭉 챙겨보는 몇 안 되는 웹드라마 중 하나인 [짧은 대본]에 대한 감상이다.


사실 [짧은 대본]도 처음부터 지금의 [짧은 대본]은 아니었다. 2년 전 세 명의 주연 캐릭터별로 파트를 나눠서 각자의 연애 스토리를 늘어놨던 때만 해도, [짧은 대본] 역시 그렇고 그런 캠퍼스 웹드라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자본을 갖춘 제작사가 아닌 만큼 화면의 퀄리티 면에선 오히려 아쉬운 축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기존의 작가들이 알 수 없는 계기로 각성을 한 것인지 아니면 대대적인 작가진의 교체가 있었던 것인지, 이 캐릭터별 연애 스토리를 끝내고 일상 공감을 테마로 한 ‘짧게 말해서’ 콘텐츠로 넘어오면서부터 [짧은 대본]은 완전히 다른 색깔의 웹드라마로 거듭났다.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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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용적인 측면에선 그렇게 뛰어나다고 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일상 공감이라는 것 자체가 이전까지 만들어진 콘텐츠의 동어반복을 피하기 어려운 주제니까. 그럼에도 이 동어반복을 색다르게 만드는 [짧은 대본]만의 묘수는 ‘유머’다.


재치있는 대사, 슬랩스틱, 우스꽝스러운 상황 연출 등을 통해 뽑아내는 1차원적인 유머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짧은 대본]의 유머는 웹드라마라는 포맷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새롭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 있다.


한자리에 모여있는 세 인물 A, B, C 중 A와 B끼리만 대화를 하다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C에게 B가 묻는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 이에 C는 이렇게 답한다.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대사 없어.” 이후 C가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한 마디가 화룡점정이다.


“근데 대사가 없다는 대사는 어떻게 쓰는 거야?”


이 외에도 TV 드라마의 정형화된 틀을 넘나드는 솜씨가 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수준이다.


[짧은 대본] 속의 캐릭터는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비트에 맞춰 랩을 하기도 하고, 그 상황 속에 있을 필요가 없는 캐릭터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포즈나 행동으로 시선을 강탈하기도 한다. PPL을 두고 “이거 협찬이야.”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기본이고, 광고를 맡긴 업체의 사장님이 자기들 채널의 구독자라는 사실에 감사를 표하기까지 할 정도.


[짧은 대본]의 매력은 제4의 벽을 한계가 아닌 유머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어디서 이미 본 듯한 내용을 보고 있음에도 전혀 지루함 없이 에피소드를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다음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능글맞은 대본과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지문에도 매 순간 정확하게 응답하는 배우들의 호연도 한 몫을 단단히 차지한다.

 

 

 

웹드라마의 개성



[짧은 대본]은 왜 웹드라마라는 장르가 드라마와 별개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참으로 반가운 사례다.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흔히 쓰는 ‘개성’이라는 단어의 참뜻이다. 앞으로 등장할 3세대 웹드라마 라인업 속에는 그런 의미의 개성을 갖춘 작품들이 더욱 더 많이 있어주기를 바란다. 그런 웹드라마라면 ‘구독’과 ‘좋아요’를 아끼지 않을 것이므로.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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