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

영화의 목소리를 듣다
글 입력 2021.03.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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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에 개봉한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배우분들의 열연 덕분일 수도 있고, 영화 전반적으로 깔린 클래식한 배경음악 덕분에 눅진한 감정이 조금씩 쌓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나에게 너무 익숙한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매일 같이 작은 텃밭에서 과수와 이름 모를 꽃들을 가꾸시던, 그 옛날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영화였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고도, 관객들이 모두 자리를 벗어난 후에도,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분명 그립고 반가운 감각과의 재회였지만, 수면 아래로 숨겨둔 비밀 상자를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열어본 그 느낌이란, 내 표현 능력의 범위를 넘어가는 경험이었다.

 

미나리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이 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영화와 마주하고 있긴 하다. 감정을 억누른 채 표정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들의 연기, 과하지 않은 촬영과 미장센들, 감독이 구현하고자 한 아름다운 영상미에, 마치 시나 에세이를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여운까지. 평상시 대부분의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쾌락과 같은 유흥의 것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회고와 성찰의 성질을 미나리에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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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영화에게 감동을 느낀 적은 언제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그 모든 영화들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듯한 감동을 주진 못했다. 내 감정의 수용능력의 한계일 수도 있고,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와도 나와 소통의 언어가 일치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해는 되어도 공감이 되지 못해 끝까지 보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내가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정리를 해보려 한다.

 

 

 

실화를 기반하다. '줄리 & 줄리아'


 

영화의 주인공이 실존인물이라거나, 영화의 배경, 사건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곤 한다. 감독과 작가의 온전한 창조물이 아닌 현실의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친밀감을 선사해주는 것만 같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만 봐도 '그린 북', '스포트라이트', '킹스 스피치', 그리고 '아르고' 등, 실화 기반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줄리 & 줄리아' 내가 사랑하게 된 한 영화의 제목이다. '줄리아 차일드'라는 실제 유명 요리사의 영상과 책을 보며 매일, 365일 동안 그녀의 모든 요리를 시도해본 '줄리'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러한 줄리의 이야기가 영화가 되었다. 영화는 줄리아에 대한 줄리의 팬심으로 시작된다.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에 갇혀 살고 있는 줄리에게 줄리아의 삶은 희망으로 다가왔고 그녀의 요리를 직접 해보고, 글을 쓰며 삶의 유일한 목표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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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랑스럽다. 줄리와 줄리아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인물들이고, 그녀들을 사랑하는 폴과 에릭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런 인물들과 그들의 삶이 실존하고 있다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더 오래 유지시켜준다.

 

물론 나를 비롯한 관객들이 이 작품이 실화라는 이유만으로 보는 내내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토리 자체가 부드러워서 향유하기 편안했고, 성장해나가는 줄리와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긍정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줄리아라는 인물들에게 빠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영화를 애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줄리아가 아닌 줄리와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지치고 힘들 때 줄리아와 에릭을 통해 위로를 받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의 주인공보다 닮고 싶은 삶의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영화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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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꿈을 꾸다. '미드 나잇 인 파리'


 

모든 창작물에게 제목은 중요하다.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을 공유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름을 보면서 가벼운 편견을 갖게 되지 않는가. 영화나 드라마, 웹툰과 같이 누군가가 분명히 소비를 해줘야 하는 창작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은 만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라도 상대방과 대화를 하게 되고, 대화를 통해 편견이 사라질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는가. 창작물은 글쎄, 제목에서 오는 호감도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사를 하지 못하면 그냥 스쳐지나갈 인연이 될 가능성이 큰 장르들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부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만약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이 로망을 갖고 있는 도시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하루 중, 당신에게 가장 설레이는 시간 언제입니까?' 아마 두 질문에서 가장 높은 응답을 받는 장소와 시간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두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낭만적인 영화의 제목만큼 내용도 낭만적이다. '길'은 늦은 저녁, 노란색 조명이 길을 밝히는 파리의 골목길에서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인 그가 꿈꾸는 가장 낭만적인 시대, 1920년대로 이동해 피카소, 헤망웨이, 달리를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길은 아이처럼 기뻐한다. 상상할 수도차 없었던 뮤즈들과의 만남은 그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나도 설렜다. 특히나 피츠제럴드가 나올 땐 탄성을 질렀다. 다양한 예술장르에 조예가 깊진 않다보니 다른 인물들의 등장엔 놀라움 정도를 느꼈지만, 피츠제럴드는 마음 속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팬심에서 우러나온 반가움이었다. 피츠제럴드와 피츠제럴드가 활동할 때쯤 태어난 J.D. 샐린저가 나왔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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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드리아나'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각자가 생각하는 '황금시대'는 다르다. 1890년대를 사랑하게 된 아드리아나와 1920년대를 사랑하는 길, 서로 다른 낭만을 갈망하는 그들의 작은 다툼에서 우리도 꿈을 꾸게 된다. 내가 온전히 사랑하며 함께하고 싶은 시대는 언제일까,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술이라는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물론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광범위 하지만) 우린 우리만의, 나의 낭만을 꿈꾸게 된다.

 

취향마저 스펙이 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과정 속에서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섬세한 손길을 느끼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미나리'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이다. 잔잔한 분위기 속 고조되는 감정, 클래식한 음악으로 형성되는 분위기, 그리고 나무 집이 불타는 장면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떠오른 영화였다.

 

지난 몇 년동안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영화가 된 이 작품은 정말 섬세하다. 인물의 삶을 공감하거나 그들의 표현 방식에 감탄을 하게 되는 영화가 아니었다. 차마 인물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겠는, 감정을 이해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작품에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모든 감정과 과정, 그 상황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이해한다는 말이 쉽게 해서는 안되는 말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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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미나리'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처럼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영화가 있다. 이런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수채화 같으면서도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단어마다 감정을 눌러 담은 글처럼, 배우들의 표정엔 각본에만 담겨있는 그 숨겨진 감정들이 담겨있다.

 

감독은 대사를 통해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미장센과 메타포를 활용해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려고 할 것이다. 수많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감정을 다루는 섬세한 손길은, 관객들에게 영화에 몰입을 하게 해주는 가장 친근하면서도 완벽한 예술과의 만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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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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