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리를 보다 - 스트릿 노이즈 STREET NOISE

글 입력 2021.03.13 13: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영국 런던을 여행할 때, 벽에서 춤을 추는 작품들을 만난 적이 있다.

 

눈으로만 보는데도 다소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저들마다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바쁜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 땐,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오해를 가지기 쉽다. 하지만 그것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무한한 생명력과 폭발할 듯한 자유를 느낀다. 혹은,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피티(Graffiti)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을 가진다. 고대 동굴의 벽화, 유적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림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의 세계를 기록하여 표현하며, 나아가 소망과 기원을 새겨 넣는다. 본 전시에서는 그래피티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크래쉬(Crash), 닉 워커(Nick Walker)로 한 장르의 포문을 연다. 이후로는 그래피티가 쥔 가능성, 소수문화에서 순수예술로 향하고자 했던 그들의 방향성을 거쳐 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아티스트까지 만날 수 있다.


정확히는 랩 음악, 브레이크 댄스를 즐겼던 ‘소수’의 시발점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뉴욕 뒷골목의 젊은이들을 생각해 보자. 커다란 점퍼, 널찍한 바지, 저들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즉흥적인 예술을 뿜어내는 도시의 예술가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판판한 곳이라면 어디에든 그림을 그렸다. 자신들이 속한 크루의 이름, 갈망하는 것 혹은 두려워하는 것들.


너무나 날것의 단어와 그림들로, 한때 그들의 예술은 도시문제로 여겨졌다. 도시의 청결함을 중시했던 당시의 어른들은 거리의 예술가들을 가리거나 숨기거나, 또 붙잡기에 급급했다. 덕분에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된 이들은 스프레이, 스텐실을 활용한다. 즉, 그들만이 줄 수 있는 속도감과 역동성을 가지게 된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도시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으면서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저마다의 반항과 역동성에 박차를 가해 당당히 미술계의 한 분류로 자리 잡았다.

 

 


CLASSIC



ⓒNick walker_5.jpg

 

 

익명, 혹은 가명을 활용했던 이들 중 몇몇의 이름이 대중을 향해 떠오른다. ‘닉 워커’와 ‘크래쉬’다.

 

영국을 거닐던 닉 워커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한다. 스텐실은 텍스처나 그림의 모양을 오려낸 후, 물감을 흩뿌려 찍어내는 기법이다. 덕분에 지워진 그림들을 수없이 다시 찍어낼 수 있고,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다양한 색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나는 그의 작품을 ‘정중한 폭발’이라 표현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어떤 상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을 펼쳐놓아야 합니다.”
 

 

 

POSSIBILITIES


 

v2-9a6e60b4d6222f90c26da048da0a4223_1440w.jpg


 

존(Jon)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철수’와 같이, 꽤 흔한 이름이다. 많고 많은 존(Jon) 중에서도, 존원(JonOne)은 태그 기법으로 자신을 알린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강렬한 색채를 활용하여 J-o-n-O-n-e을 새긴다.

 

작품 속에는 그가 느끼고자 했던, 알리고자 했던 자신만의 리듬감이 있다. 음악으로 친다면 락과 재즈, 자유로운 박자 속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힘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색채는 폭발적이다. 마치 메인 거리에서 겪은 소외감을 끌어모았다가, ‘에너지파’를 쏘는 듯한 강렬함을 만날 수 있다.

 

그래피티씬에서 유명세를 얻던 존원은 곧 주류 예술 문화에 편승된다. 레지옹 도뢰르Legion DHonneur에서 문화/예술 부문 훈장을 받고,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여 우리 사회에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jr.jpg

 

 

제이알(JR)은 프랑스 파리 길거리를 배경으로, 사진 위에 사진을 흩뿌리는 작품 방식을 가진다.

 

그는 단순히 미학적인 측면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그의 시선, 다른 이로 하여금 자신의 시선을 공유하며 사회적 관점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28 Millimeters’ 프로젝트는 독보적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휴머니티를 기반으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이들을 소개한다. 비록 그의 작품 방식은 엄연히 불법적이었지만, 공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면에서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문구에 증명을 더한다.


한 분야의 시작, 가능성과 사회에서의 영향력까지. [STREET NOISE]에서는 소란과 혼란이 주는 예술적 영감과 자유의 에너지, 나아가 ‘없던 사람’을 ‘있는 사람’으로 변모한 이들을 소개한다. 억압받고 무시당하며 자란 그들의 반항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 동시에 자신만의 서명을 활용해 자신의 존재마저 알리고자 했던 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런던 구석에서 그래피티를 만났을 때,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뭘까.’라고 생각했다. 거리를 더럽히는 동시에 특색이 되기도 하고, 가끔 사진 촬영에 방해되면서도 하나의 커다란 배경이 되어 주기도 한 작품들. 그들의 의중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젠 한 도시의 아트로서 그들을 기꺼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STREET NOICSE]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래피티라는 주제의 강렬함만은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주는 그래피티에 대한 존중, 그들의 예술이 가진 묘미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신설된 P/O/S/T 공간은 People(사람), Object(물건), Street(거리)가 조화롭게 구성된(Tailored)이라는 뜻을 가진다. 30%는 전시, 30%는 물건, 그리고 나머지는 거리를 배경으로 한 우리들이 완성시킨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전시를 관람하여 그들의 욕망과 작품 의도를 파악하는 동시에, ‘나’의 갈망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 자유로운 영혼의 외침 사이에서, 여느 때보다 나와의 대화에 솔직한 자세로 임할 수 있었다.

 

 

210208_[Street-Noise]포스터-닉워커.jpg

 

 

[이민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