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하세요, 저를 소개합니다. [사람]

글 입력 2021.03.05 18:3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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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로서 공식적인 첫 글을 올리기 전에, 왠지 나라는 사람을 내 글을 읽어보실 분들께 소개하면서 시작하고 싶었다.

 

내가 조금 자의식 과잉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또 이런 글을 흥미로워 하는 분들도 계실 테니. (그리고 나도 이런 글을 흥미로워 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곳이다 보니, 나는 나 자신을 필명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한운



 

閑雲(한운). 천천히 구름의 속도로 흘러가면서 쓸데없는 것들을 곱씹는 게 좋아.

 


이 문구는 내 개인 블로그의 프로필 메시지이다. 사전에 '한운'이라 검색하면 여러 동음이의어 중 한가할 한, 구름 운 자를 쓰는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이라는 뜻의 단어가 나온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올린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김순기 작가님의 '"심심바보" 영희'라는 글이었다.

 

찾아보니 김순기 작가님의 <김순기: 게으른 구름>이라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고, 아쉽게도 전시가 끝난 시점이라 나는 그 전시에 가보진 못했다. 그러나 그 글을 본 이후 내 필명은 한운이 되었다.


 

그는 항상 심심하다.

그는 심심함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는 심심하지 않다.

영희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예쁘고 착하다.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한다.

그는 "게으른 구름"이다.

그냥 이방인이다.

정해진 집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냥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이다.

그의 친구는 소나무와 비, 구름, 눈,

비바람이므로 이 세상에서는 특별한

정해진 형태도 없고 유용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희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영희가 없으면 사회의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

영희는 이 사회의 대들보이다.

영희는 미술의 가장 중요한 꽃봉우리이다.

영희가 없으면 꽃도 안 되고 나비와 벌도 없다.

영희는 모든 것들의 생명이다.

영희: "심심바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다.

 

"심심바보" 영희 - 김순기



[크기변환]구름 콜라주.jpg

 

 

나는 나만의 관점으로 사진을 찍을 때 주로 풍경 위주의 사진을 찍고, 자연과 하늘과 구름을 사랑한다. 쓸모없는 생각과 걱정들을 하며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이런 행위를 하는 데 별다른 목적은 없다. 줄곧 인생의 목적을 찾아 헤매던 내가 유일하게 별다른 목적 없이도 하는 것이 글쓰기이다. 그냥 순간순간의 내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나의 생각들을 비공개된 개인적 공간이나 익명으로 게시하는 일에 그쳤다. 내 생각들은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으므로, 내 글을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을 것이란 생각에 두려웠다. 세상에 내 생각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생각을 싫어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심함을 좋아하는' 내가 '그냥 이방인처럼 떠돌아다니기만 하면' 마치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 쓸모없는 시선들과 생각들이 대체 누구에게 가닿을까, 사회에 유용하기나 할까.


그러나 이 글에서 '영희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영희가 없으면 사회의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대목이 나오자,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결국 나에게 가장 사소한 일상이지만 가장 즐거운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구나. 그리고 나한테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사회의 대들보'가 되는구나.


나는 스스로 속도가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것도,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리뷰를 쓰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남들보다 느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천천히 하는 공부는 다음번에 더 빠르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본 드라마는 나중에 다시 글을 쓸 소재가 되며, 천천히 먹는 밥은 그 맛을 더 오래 음미할 수 있다. 맑은 날 구름이 자연스러운 바람의 속력을 타고 평화롭게 흘러가듯이 -그게 흰 구름 상태이든 먹구름 상태이든- 나도 그렇게 쓸모없는 것들을 곱씹으며 천천히 흘러가고 싶은 마음을 '한운'이라는 필명에 담았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향기>


말이 없는 자는 말을 하는 대신 글을 쓴다.

 

말은 너무나 쉽게 뱉어져

너무나 쉽게 소멸되는 것과는 달리


글은 오랜 시간 다듬고 매만져서

깊고 진하게 나의 향을 남길 수가 있었다.

 

- 2016년 9월 28일의 글


 

부끄럽지만 위의 글은 내가 오래전에 썼던 글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짧은 형식의 글로 내 생각을 많이 풀어놓았다. 나는 그냥 원래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세상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생각. 근데 사람들에게 내 생각에 대해서는 많이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였다. 앞서 말한 이유와 마찬가지 이유로, 누군가의 혹평을 들을까 무서워. 그저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다. 느린 나에게는 내 생각을 바로바로 정리해서 곧바로 입 밖으로 내야 하는 '말'이라는 것이 참 어려웠다.

 

안에는 생각이 많은데, 고여 있는 생각들은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그래서 생각들을 조금씩 다듬은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실 글이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까웠다. 살기 위해서 썼다.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을 분출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내가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일이 되었다.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필립 로스 - 울분 中


 

난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뭘 원했고, 왜 아파했었는지.

나는 어떠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인지.

 

난 당신들의 얘기도 듣고 싶어.

무엇이 당신을 당신으로 만들었는지.

그 방법이 어떤 문장이든 상관없어.

 

- 2016년 5월 28일의 글


 

그리고 나에게 글은 나를 되돌아보고, 나에 대해 설명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가 보여서 좋았다.

 

앞으로 이곳에 드라마, 영화, 도서 등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를 접하고 리뷰하는 글도 많이 쓸 테지만, 글의 중심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자리 잡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볼 때 주로 등장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인물의 성격을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작품의 줄거리인 배경과 사건도 중요하고, 보다 보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연출들도 많지만, 사실 나는 연출법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게 없다. 그런 요소들은 또 다른 분들이 많이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어차피 이 모든 게 사람 사는 이야기 아닌가.

 

 

<취향수집>


아니면 차라리 이런 건 어떨까. 틈틈이 글을 쓰는 거다. 

어떤 형태의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글에 내 취향을 다 녹여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글에서 얻는 공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위로가 그것밖엔 없어서.

받을 수 있는 위로가 그것밖엔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 글을 써야지.

 

- 2019년 10월 15일의 글



앞으로 나의 글들이 정녕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크다. 원래 뭘 시작하기 전에 걱정부터 하고 들어가는 타입이다. 하하. 하지만 걱정이 큰 만큼 그 걱정들은 나를 또 붙잡아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솔직한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써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또 했었던 한 분이라도 내 글을 보고 즐거움과 위로를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게 앞으로의 내 바람이다.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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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박세나
    • 제가 글을 쓰면서 걱정했던 부분과 비슷해서 위로가 되네요..! 영희라는 아이를 보면서 감응력에 대해 생각했어요. 감응은 감동에 응하다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으면 응해서 움직이는 (글을 쓰는 등의 행위)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해요. 그렇기에 감응은 능력이라고 합니다. 느릿한 속도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영희 덕분에 빛을 내는 것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보고 의도하신 대로 즐거움과 위로를 받았습니다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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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채이
    • 박세나따뜻한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이렇게 감응하는 게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요소가 아닐까 혼자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 또한 '감응은 능력이다'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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