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이면 어떤 풍경이 만들어질까. 스무 살 때부터 궁금했던 그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 20인치 캐리어를 끌고 해운대로 향했다. 눈을 뜨면 영화를 찾고, 하루의 끝도 영화로 마무리하는 열흘.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영화에만 잠겨 보고 싶었다. 올해로 31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A-리스트' 영화제로 공식 선정되었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 나란히, 전 세계 17개 영화제에만 주어진 이름이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가장 가고 싶었던 축제가 세계가 인정한 무대가 된 해에, 그 축제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더 설렜다.
이번에는 관객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원봉사자로 지원해 영화제를 함께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축제를 바깥에서 즐기는 것을 넘어, 그 안쪽에서 영화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씨네필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영화사를 깊이 알지도, 남들보다 많은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했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인물의 얼굴과 대사가 오래 남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이번 부산행에는 작은 질문 하나를 챙겨 갔다. 스무 살의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할까. 열흘간의 영화제는 영화를 만나는 여정이자,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1019_00083006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19001026_wopobxfp.jpg)
파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자원봉사자로 내가 배정된 곳은 프레스 지원팀이었다. 축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리이며,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내가 건넨 배지를 목에 걸고 각자의 현장으로 흩어졌다. 그 배지는 그들이 영화제 안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출입증인 배지와 패키지를 전달하고, 배지 데스크와 프레스센터에서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폈다. 이번 영화제를 찾은 취재진만 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가끔 다른 팀 지원을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 데스크 앞에서 보냈다.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같은 안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고, 사람이 몰리는 시간엔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빽빽한 근무 일정에 몸은 금세 지쳤고, 하루가 끝나면 다리가 묵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이 났다. 똑같은 배지를 건네고 똑같은 설명을 해도, 그 모든 일이 영화제라는 공기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반복되는 업무조차 이 축제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났다.
매일 아침 새로 나오는 영화제 일간지를 챙기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데스크에 가지런히 쌓아 두다가, 나도 하루에 한 부씩 따로 챙겨 두었다. 어제 열린 행사 소식, 오늘의 상영작,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손님이 뜸한 틈이면 한 장 한 장 넘기며 꼼꼼히 읽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인 일간지가 조금씩 두꺼워지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영화제의 하루가 종이 한 부에 담겨 쌓여 가는 것 같았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1018_23183631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18235131_efcynlru.jpg)
까치발을 들고, 파도 너머로
근무가 있는 날에는 근무표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그 틈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상영과 행사를 찾았다. 취소표를 확인하는 일은 어느새 하루의 루틴이 됐다. 보고 싶던 작품에 빈자리가 생겼는지 수시로 들여다보고, 시간이 맞으면 야외무대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말하자면 나만의 치열하고도 고요한 전쟁터였다. 겉으로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근무 시간과 이동 시간, 상영 시간이 쉴 새 없이 맞물렸다. 지쳐 있다가도 취소표 하나가 뜨면 피곤이 싹 가셨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빈 시간을 어떤 영화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마저 즐거웠다.
그 틈 사이 야외무대인사에서는 스크린 속 얼굴들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다.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배우가 함께 선 무대는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질문은 늘 혼자 남았다. 왜 이런 인물을 만들었을까, 이 장면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영화제에서는 그 질문을 품은 채 만든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늘 스크린 너머에 있던 사람들. 이름으로만 알던 이창동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같은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관객에게 손을 흔들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영화가 갑자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기분이었다. 그 공기와 목소리, 사람들의 환호까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의 나는 마치 바다를 처음 본 어린아이 같았다. 조심스럽게 발끝을 담가 보고는, 차갑고 낯설고 그래서 더 신기한 그 감촉에 한참을 멈춰 서 있는.
사실 내 캐리어 안에는 서울에서부터 고이 챙겨 온 포스터가 있었다. 사인을 받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넣어 온 것이었다. 무대인사가 있는 날이면 그 포스터를 꼭 쥐고 사람들 틈에 섰다. 앞사람들 머리 너머로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발뒤꿈치를 한껏 들었다. 결국 포스터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챙겨 오는 마음, 어쩌면 그게 좋아한다는 것의 가장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 챙길 수는 없었다. 놓친 작품도,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한 자리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렵게 도착한 상영관과 잠깐 머물렀던 행사장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밤바다 위에 뜬 스크린, <룩백>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룩백〉이었다. 내가 이 영화제를 선택한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관통하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룩백〉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실사로 옮긴 작품이다. 만화를 향한 열정을 품은 시골 소녀 후지노와,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지만 압도적인 그림 실력을 가진 쿄모토가 만나 함께 그림을 그려 가는 이야기. 감독은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사람은 왜 이야기를 쓰는가, 왜 무언가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영화를 보니,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내가 부산까지 들고 온 질문과 겹쳐 보였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무엇으로 이어지는 걸까.
이 영화를 보며 마음에 남은 건 두 사람의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였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데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온전히 나만의 이유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 인해 생겨난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묵묵히 해 나가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게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야외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도 특별했다. 실내 상영관처럼 바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부산의 밤공기와 옆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면서, 수많은 사람과 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 영화와 함께 마음에 새겨졌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왔을 사람들이, 같은 장면 앞에서 함께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날 생각했다. 스무 살의 설렘이 꼭 그때와 똑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겠다고.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경험을 가지고 영화를 본다. 같은 장면에서도 다른 곳에 멈추고, 예전엔 지나쳤을 감정에 오래 머문다. 좋아하는 방식은 달라졌어도,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였다.
가장 깊은 밤의 물결, 미드나잇 패션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1018_23545699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19000052_ykfrddbz.jpg)
미드나잇 패션.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이 갔다. 한밤의 열정이라니. 밤에 극장에 들어가 아침 해가 밝을 때 나오는, 말 그대로 밤을 영화에 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애니메이션 특별전에 맞춰 애니메이션 세 편을 연달아 상영하는 밤이 따로 마련됐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밤을 골랐다. 〈짐 퀸〉, 〈웰컴 투 돌리 하우스〉, 〈천사의 알〉.
솔직히 하드한 일정이었다. 낮에는 근무를 하고, 틈틈이 상영관을 찾아다닌 뒤였다. 몸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계속 영화와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시간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불이 꺼진 극장 안에서 한 편이 끝나면 다음 세계가 열렸고, 서로 다른 세계를 건너는 사이 바깥의 밤은 조용히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같은 상영관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졸음이 조금씩 와도 피곤함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큰 사람들. 이름 그대로, 너무 좋은 영화가 있다면 열렬히 환호를 보내는 그곳에는 한밤에도 꺼지지 않는 열정이 모여 있었다. 극장을 나서며 아침 햇빛에 눈을 찡그렸을 때,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는 게 좋았다.
썰물 앞에서, 가장 큰 박수를
부산국제영화제의 꽃은 영화의전당 BIFF 루프씨어터라고 생각한다. 개막식과 폐막식이 모두 그곳에서, 탁 트인 하늘 아래에서 열린다. 배우들이 걸어 들어오고, 수많은 영화가 소개되고, 또 마무리되는 모습을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다.
개막식은 보지 못했지만 폐막식에는 함께할 수 있었다. 수많은 영화와 사람들이 '영화제'라는 하나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열흘 동안 흩어져 있던 내 장면들도 하나로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데스크에서 건넨 배지, 하루하루 모아 둔 일간지, 틈틈이 확인하던 취소표, 까치발로 바라보던 무대, 야외 스크린의 〈룩백〉, 새벽까지 이어진 애니메이션. 각각은 그날그날의 일정이었지만, 모아 놓고 보니 그게 나만의 부산국제영화제였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최대한 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작품을 완성해 이곳까지 온 사람들에게, 축제를 함께 만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기대를 품고 부산을 찾은 관객들에게. 저마다의 이유로 묵묵히 여기까지 온 그 모든 여정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나에게도.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1018_23535519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19000538_qkcpzfmg.jpg)
부산에 머무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낮에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었는데, 야외 상영을 기다리는 저녁이면 바닷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이 겹쳐 있던 그 열흘에는 왠지 모를 처연함이 묻어 있었다. 무언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 이 시간도 곧 끝난다는 걸 알고 있는 마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참 좋았다. 끝이 있다는 걸 알아서 한 편 한 편이 더 소중했고, 바람이 서늘해질수록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열흘 내내 피곤했다. 근무는 빡빡했고, 잠은 늘 모자랐고,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런데도 단 하루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영화를 만날 수 있을지부터 생각했고, 지친 몸으로도 다음 상영관을 향해 걸었다. 무언가에 이렇게 푹 빠져 본 게 얼마 만이었을까.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를 찾았다. 근무를 마친 저녁에도, 늦은 근무가 있는 날이면 일출을 보러 이른 아침에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해운대로 향했다. 모래 위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방금 본 장면들이 천천히 다시 떠올랐다. 극장 안에서 영화에 잠겨 있었다면, 바다 앞에서는 그 영화를 오래 곱씹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일정 속에서 바다는 일종의 쉼표였다. 영화와 영화 사이, 마음을 정리하고 다음 이야기를 맞을 준비를 하는 자리. 영화의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매일 바다 곁에 머물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바다를 찾던 마음과 영화를 찾던 마음은 닮아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그 앞에 있고 싶어서 발걸음이 향했다. 틈이 나면 바다로, 또 틈이 나면 상영관으로. 열흘 동안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 사이를 쉬지 않고 오갔다.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빠져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얼마나 아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도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좋아함.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 열흘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냥 좋은 것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떠나기 전에는 스무 살의 설렘이 아직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계절이 바뀌듯 마음도 조금은 모양을 바꿨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여전히 영화를 좋아할 이유가 있었고, 지쳐도 다시 달려가고 싶은 자리가 있었다. 그게 지금의 내 대답이다.
부산을 떠난 지금도 그 마음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를 찾았던 것처럼, 이제는 틈이 날 때마다 영화를 찾는다. 퇴근길에 작은 극장을 기웃거리고, 주말이면 보고 싶던 영화의 상영 시간을 뒤진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내 안의 파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냥 좋은 무언가가 있다면, 한 번쯤은 그 안에 푹 빠져 보길 바란다. 조금 지치고 조금 무리하더라도, 그 시간은 분명 오래도록 반짝일 테니까.
여름과 함께 영화의 바다에서 보낸 열흘의 파도가 지나갔다. 빈 포스터를 품은 캐리어를 다시 끌고 돌아가는 길, 나는 벌써 그 바다로 다시 뛰어들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1018_231612864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19000616_eaqozhnd.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