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법 - 패치 인류세 [도서]

인간이 만든 세계를 인간의 시선 밖에서 바라보기

by 이수진 에디터
2026.10.18 14:56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처음 <패치 인류세>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인류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였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인간의 과학적·산업적·경제적 활동이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 흔적이 지질학적으로 남을 만큼 인간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인간이 단순히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종을 넘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다는 의미가 그 이름에 담겨 있다. <패치 인류세>는 여기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그렇게 인간이 바꾸어놓은 세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들은 거대한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바라보는 대신 인간이 만든 인프라와 생태계가 만나는 구체적인 장소들을 ‘패치’라 부르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들여다본다.

       

       

      image (4).jpg

      <패치 인류세>

       

       

       

      이미 만들어진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대부분 완성된 결과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버튼을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고, 주문한 물건은 다음 날 집 앞에 도착한다. GPT에 질문을 입력하면 몇 초 뒤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술은 하나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 결과가 편리할수록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패치 인류세>를 읽으며 처음으로 그 결과의 앞과 뒤를 길게 펼쳐보게 되었다. 책에는 공장과 무역 시설, 댐과 운하, 단일 경작지, 상하수도처럼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온 수많은 인프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을 바꾸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환경을 바꾸면 그곳에서 특정한 생물이 번성하고 이동하며 적응한다. 그렇게 달라진 생태계는 다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은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시설과 제도를 만든다.

       

       

      image (3).jpg

       

       

      나는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이미 자리를 잡은 세계에서 태어났다. 도시에는 도로와 아파트가 있었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왔으며, 세계 반대편에서 생산된 물건도 손쉽게 살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이어 이제는 GPT와 Claude 같은 생성형 AI까지 일상의 도구가 되었다. 나는 이런 기술의 변화에 꽤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관심의 방향은 주로 ‘다음에는 어떤 기술이 나올까’, ‘앞으로 무엇이 가능해질까’에 가까웠다. 환경을 생각한다고 했지만, AI에 질문을 던질 때 사용되는 토큰과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처럼 눈앞에 보이는 인과관계 정도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하나의 기술이 등장하기까지 어떤 자원과 공간, 역사와 생명들이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다시 다른 존재들과 만나 어떤 예상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갈지는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인간이 이미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굳이 질문하지 않았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내가 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바라보던 방식은 꽤 단순했다. AI를 사용하면 전력을 소비한다. 자동차가 많아지면 탄소가 배출된다. 공장을 만들면 환경에 영향을 준다. 원인과 결과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관계는 그렇게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다. 하나의 기술과 인프라는 다른 공간과 생명, 물질과 만나면서 또 다른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이 다시 새로운 변화를 낳는다. 기술 하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관계를 바라보는 일인 것 같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만의 것은 아닌 세계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의 의도와 실제 결과가 계속해서 어긋나는 장면들이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 하노이에는 현대식 하수도가 건설되었다. 유럽식 도시를 만들기 위한 문명의 상징이었지만, 인간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 만든 하수도는 뜻밖에도 쥐가 번식하기 좋은 공간이 되었다. 인간을 위한 인프라가 다른 생명에게도 훌륭한 인프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소개구리와 부레옥잠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황소개구리는 저렴한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 도입되었지만 사육장을 벗어나 토종 개구리를 잡아먹고 질병을 퍼뜨렸다. 한때 세계 각국의 식물원에서 탐내던 관상식물이었던 부레옥잠은 인간의 관리 밖으로 나오자 강과 운하, 저수지와 논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이동시킨 존재들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는 인간의 계획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놓은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는 현상을 ‘이탈’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다. 이탈하는 것은 생물만이 아니다.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이동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국경과 행정구역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례들을 따라가면서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한 내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고 자연이 그 영향을 받는다는 일방향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면 환경이 달라지고, 그 환경에서 다른 존재들이 움직이며, 그 움직임이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조건을 만든다. 서로의 변화가 다시 서로의 환경이 된다. 세계는 인간이 설계하고 자연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가 서로의 삶에 개입하며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곳에 가까웠다.

       


      333.jpeg

       

       

      이런 관계를 따라가다 보니 평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분류도 낯설어졌다. 황소개구리는 아주 오래 전, 식량일 때는 유용한 존재였지만 생태계를 교란하기 시작하자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부레옥잠 역시 아름다운 관상식물이었다가 인간이 원하는 장소를 벗어나자 골칫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잡초, 해충, 유해종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물론 인간의 생활과 기존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분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만 책을 읽고 나니 그 이름들이 존재 자체에 붙어 있는 고정된 성질이라기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 인간이 붙인 이름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무엇이 유용하고 무엇이 해로운가는 결국 누구의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부레옥잠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에게 부레옥잠은 물길을 가로막고 물을 빨아들이는 골칫거리지만, 다른 생물에게는 새로운 서식 환경을 만드는 구조물이 될 수 있다. 책은 여기에서 인간 외 존재가 구축한 환경 역시 일종의 ‘인프라’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인프라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당연히 도로와 철도, 건물과 통신망처럼 인간이 만든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인간만이 다른 존재가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한 생물의 활동이 다른 생물에게 삶의 조건이 되고, 그것이 다시 주변 환경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세계의 유일한 설계자도, 유일한 사용자도 아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인간의 필요와 편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쉽게 잊게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올까에서 무엇이 일어날까로

       

      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궁금해하는 편이다. 생성형 AI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까. 지금보다 더 뛰어난 모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동화는 어디까지 가능해질까.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대체로 아직 등장하지 않은 기술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졌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나올까가 아니라, 그다음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르다. 전자가 기술 자체의 성능과 발전 방향을 바라본다면, 후자는 그 기술이 세계 안에 들어온 이후 만들어낼 관계를 바라본다. 어떤 자원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공간과 인프라를 만들어내는지, 누구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누구에게는 불리한 조건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존재와 시스템을 만나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AI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모델의 성능이나 필요한 전력, 데이터센터의 규모처럼 비교적 직접적인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것이 우리의 노동 방식과 도시, 에너지 시스템, 자원 이용 방식과 결합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미래를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하나의 독립된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영향력이 지구를 바꿀 정도로 커진 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인간은 그 변화의 결과를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인간이 시작한 변화가 인간의 의도대로 끝나지 않는다.

       

      *

       

      기후위기에 관해서라면 이전에도 수없이 들어왔다. 탄소 배출량, 지구 평균기온, 해수면 상승 같은 숫자들도 익숙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나와의 거리는 멀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는 문장은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생활과 연결하기 어려웠다.

       

       

      image (2).jpg

       

       

      <패치 인류세>가 ‘패치’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인류세를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변화로만 바라보다 보면 각각의 장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놓칠 수 있다. 같은 산업화와 개발도 지역의 역사와 생태, 그곳에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 외 존재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저자들은 거대한 데이터와 이론만큼이나 현장을 직접 관찰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관점은 환경 문제뿐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숫자로 만들고 평균을 내며 유형을 나눈다. 그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관계들은 쉽게 지워진다. 어쩌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아래로 내려와 하나의 장소에서 무엇과 무엇이 만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짓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오래 남았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기술과 시설을 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하다. 부족하면 더 만들고, 불편하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오래되면 허물고 다시 짓는다. 발전이라는 말도 대체로 무언가가 더해지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또 다른 관계와 예측하지 못한 효과를 낳는다면,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만큼 ‘무엇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도 중요한 질문이 된다. 기술 발전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일 세계와 그 이후의 시간까지 조금 더 길게 바라보자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이수진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낙인과 회복, 그리고 빛으로 향하는 길 - 데미안 [도서]
      2. 02 [Review] 실내에서 만난 여름의 절정 -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 2025
      3. 03 [Review] 황금빛 선 너머의 진심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