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무더웠던 9월과 10월 중순을 지나, 서서히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문득 지난해 겨울의 날카로운 공기가 떠오른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매서운 한파를 뚫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찾았던 지난해 12월 말의 기억이다. 개관 이후 두 번째로 열린 전시를 보기 위해 추위를 견디며 발걸음을 옮겼던 그날의 풍경이, 다시금 겨울을 앞둔 지금 새롭게 떠올랐다. 계절의 변화가 불러온 오래된 기억을 따라, 당시 마주했던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전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해보고자 한 실험실을 들여다본 듯한 인상을 받았다. 거창한 전시회라기보다는, 사진에 몰두한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기 위해 땀을 흘리는 실험실에 가깝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과 포토샵의 발달로 이러한 시도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늘 그렇듯,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이 되는 순간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새로운 것, 이콜, 오래된 것, 과거의 것.
이처럼 ‘새롭다’는 말은 각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새로운 것’을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당연한 것에 대한 기준이 흐뜨러짐으로써 우리의 시선도 넓힐 수 있게 된다. 전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진예술에 대한 한국 사진사들의 예술적 실험을 시대별로 소개하며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을 가감없이 펼쳐낸다.

사진이 예술의 한 분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50년대 후반, 한국의 예술가들은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 매체의 예술적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전후의 혼란을 거치며 한국 미술은 현대미술로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고, 전쟁 이후 등장한 여러 실험적 그룹을 중심으로 앵포르멜, 추상미술, 모더니즘 등 전위적인 미술 사조가 전개되며 기존 제도에 도전하는 예술 실험의 장이 펼쳐졌다.
1960년대에 이르러 형식화된 추상미술의 열기가 잦아들자, 그 빈자리는 오브제, 팝, 옵아트, 공간 실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시도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회화 중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러한 전위적 국면은 사진 매체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이 시기의 실험미술을 통해, 사진은 단순한 기록 수단을 넘어 개념과 행위를 탐구하는 독자적인 예술 언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제1전시실
제1전시실은 바로 이 시기 한국 사진예술의 태동기, 그 치열했던 흔적들을 재구성한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이승택의 옹기로 만든 조각과 이를 다시 사진으로 담아낸 작업은, 실재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우리를 사진의 세계로 이끈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매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실험들이 꼬리를 문다.

김구림의 포토몽타주와 포토세리그래피, 사진 이미지를 석판화로 옮긴 김차섭, 그리고 대중매체 이미지와 자신의 초상을 결합한 곽덕준에 이르기까지. 퍼포먼스를 기록하여 행위와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 이규철의 작업 역시 이 흐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수직 벽 없이 시원하게 트인 제1전시실의 전경은, 앞선 작가들이 보여준 일련의 개념적 실험들과 묘하게 닮아 있다. 이는 마치 사진에는 정해진 틀도, 경계도 없음을 선언하는 거대한 서막과도 같다.

제2전시실
제2전시실은 1970~80년대 개념미술의 흐름이 사진이라는 매체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조명한다. 특히 개념미술 그룹

이곳에서는 다양한 매체 실험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김용철의 포토페인팅부터 이건용의 신체 논리가 담긴 개념적 기록, 역사적 보도사진을 판화로 재해석한 장화진의 시선이 눈길을 끈다. 또한 최병소는 서구 개념미술을 한국적 맥락으로 치환하고, 이강소는 퍼포먼스 기록과 포토세리그래피를 통해 회화와 사진, 즉 2차원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들의 작업은 사진이 예술이 된 시대에 대한 응답이다. 사진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작가의 사유와, 더 나아가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개념미술이라는 틀 안에서 모색했던 흔적들. 전시장 곳곳에는 그 시대를 관통했던 열기가 여전히 배어 있다.

제3전시실
제3전시실은 앞선 세대의 매체 실험을 계승하여 1980년대로 넘어온 예술적 흐름을 펼쳐 보인다. 문범을 비롯한 서울대 출신의 젊은 작가 그룹 서울‘80과 이교준, 이규철 등 당시의 젊은 작가들은 사진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시각과 지각, 감각을 실험하는 장으로 활용하며 그 영역을 경험과 기억의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이규철의 작업은 사진과 경험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안구의 형태를 본뜬 구형 구조에 사진을 배치하는 ’사진조각‘을 통해, 평면이라는 사진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마치 조각을 내부에서 들여다 본 것 같은 인상을 제시한다. 이는 사진이 회화가 될 수도, 조각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조형적 시위다.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고, 우리의 사유와 감각마저 사진에 종속되어버린 오늘날, 이들의 작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을 ’사진‘이라는 고정된 틀에 가두고자 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실험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사진을 통념을 뒤흔드는 전복적 매체로 다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제4전시실
마지막 4전시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앞선 공간들이 이미지의 조형미와 매체적 실험에 천착했다면, 이곳은 시선을 거친 현실의 한복판으로 돌린다. 1980년대의 획일적인 정치·사회상에 반발했던 민중미술 작가들은, 사진을 제도적 권위와 형식적 관념에 저항하는 사회적 언어로 호출했다.

여 운, 안창홍, 신학철, 민정기 등의 작가들은 사실주의적인 보도 사진들을 가위질하고, 비틀고, 회화적으로 재배열하는 포토콜라주와 석판화 작업 등을 통해 시각적 기록물을 사회 비판적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들의 작업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단면을 직시하게 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매개로 그 시대가 처했던 현실을 감각적으로 재경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치열했던 사회적 기억을 예술이라는 형태를 빌려 아카이빙하려는 시도이자 증언이다.
나가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열쇠가 되었다. 사진은 회화, 판화, 조각, 설치, 영상... 사진은 타 장르와의 경계를 보란 듯이 허물며 예술의 범주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예술이 난해하고 모호한 이유는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고, 반대로 예술이 심오하고 흥미로운 이유 역시 끊임없이 그 경계를 지우려 하기 때문이다. 전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매체의 확장을 증명함과 동시에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다. 사진이 예술의 영토로 포섭되어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이 전시의 숨겨진 부제를 조심스레 떠올려본다. <예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과거, 사진의 등장이 회화에 위기감을 주었듯, 오늘날 생성형 AI와 같은 기술은 또다시 예술을 위협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사진은 결국 예술의 한 분과가 되었다. 지금의 위기인 AI 역시 점차 예술이라는 거대한 늪으로 포섭되어 갈 것이다.
예술은 위기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전시에서 발견한 예술의 본질이자, 이 불가해한 세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