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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붉은 모래를 들이마시는 시간 : 알파 Alpha [영화]

영화 <알파> 리뷰

by 정희정 에디터
2026.10.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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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석고처럼 굳게 만드는 혈액 매개 바이러스가 퍼지는 도시.

      13세 소녀 알파는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의문의 'A'자 문신을 새긴 채 집으로 돌아오고,

      의사인 엄마는 알파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감염 여부 결과를 기다리는 2주 사이,

      학교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소문은 곧 낙인이 되어 알파를 옭아맨다.

      그리고 삼촌의 등장은 알파와 엄마의 불안을 증폭시키는데…

       

      synopsis
       

       

      ※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어가는 몸, 굳어버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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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병을 대신해 눈앞의 감염자에게 날카롭게 향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피부를 의심스럽게 살피고 한 걸음씩 물러난다. <알파>는 몸이 대리석처럼 굳어가는 가상의 질병을 통해, 감염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시작되는 배척과 고립, 그 속에서 타인에게 다가가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 아이의 시선으로 좇는다. 에이즈 위기의 기억이 겹친 이 병은 환자의 몸과 곁을 지키는 가족의 삶에 그토록 오래 남는 흔적을 새겨 넣는다.

       

      어린 알파가 삼촌 아민의 팔 위에 마커로 선을 긋는다. 주삿바늘 자국들을 이은 선은 별자리 같은 문양이 된다. 어린 조카는 이제 팔이 더 예뻐졌다고 말한다. 문양을 따라가던 시선 끝에 아민의 주먹이 나타난다. 그 손이 천천히 펼쳐지고, 그 안에는 무당벌레 한 마리가 움직이고 있다. 영화는 아민의 병과 중독에 앞서 그가 조카와 맺는 관계를 보여준다. 훗날 병마가 그의 몸을 어떻게 바꾸어놓더라도 우리는 아이에게 작은 생명을 보여주던 삼촌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열세 살이 된 알파의 팔에도 바늘이 닿는다. 파티의 소음 속에서 붉은 피와 검은 잉크가 섞이며 커다란 A가 새겨진다. 문신 주위로 붉게 부어오른 딸의 피부를 발견한 엄마는 바늘이 어디서 났는지, 새것이었는지부터 다급하게 묻는다. 상처를 소독하고 검사를 서두르면서도 결과를 쉽게 믿지 못한다. 엄마의 낯빛에는 이 병이 초래할 일을 가까이서 겪어본 사람의 공포가 서려 있다.

       

      학교에서는 검사 결과보다 이른 배척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알파의 상처를 경계하고 피가 묻은 배구공을 피한다. 수영장에서 알파가 다쳐 피를 흘리자, 비명을 지르며 물 밖으로 빠져나간다. 함께 쓰던 공간이 순식간에 비고 알파만 남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상처를, 다음엔 알파를, 이윽고 알파가 있는 공간 전체에서 물러난다.

       

      남자친구 아드리앵은 이전에 나눈 입맞춤으로 자신이 감염된 것은 아닌지 알파에게 묻는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더 깊은 접촉을 시도한다. 뒤늦게 그의 등에서 같은 문신이 발견되면 그의 질문들도 달리 들린다. 그 역시 같은 바늘에 노출됐지만 자신의 문신은 숨긴 채, 알파와의 접촉으로 생길지 모를 일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팔의 문신은 드러나고 등의 문신은 옷에 가려진다. 같은 바늘에 노출된 두 사람 중 감염자로 취급받는 쪽은 알파뿐이다. 자신의 위험을 감춘 채 알파와의 접촉을 문제 삼는 그의 말은, 자신이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원인을 그녀에게 돌릴 여지를 만든다. 그 때문에 그의 불안은 자기 몸을 지키려는 두려움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대리석에 새겨진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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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와의 접촉을 둘러싼 불안은 엄마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의사인 그녀는 많은 의료진이 떠난 병원에서도 대리석으로 굳어가는 환자들을 돌본다. 동생 아민도 그 병을 앓고 있다. 딸의 감염을 막으려 애쓰던 엄마는 자신의 손끝에 상처를 내고 딸의 상처와 맞대어 피를 섞는다. 딸을 세상의 혐오 속에 홀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과, 또다시 가족을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엉겨 붙은 슬프고도 기이한 의식이다.

       

      엄마의 불안에는 사실 이미 겪은 상실이 겹쳐 있다. 이 지점에서 <알파>의 시간은 기묘하게 뒤섞인다. 어린 알파 곁에서 앓아가던 아민은,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열세 살 알파의 방 안에도 환영처럼 스며들어 있다. 관객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에야 이미 죽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딸에게 생길지 모르는 일을 걱정하는 동안, 엄마는 동생을 잃던 시간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이 연출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엄마의 유예된 애도가 알파의 삶에 얼마나 깊게 얽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엄마는 알파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민을 자신의 삶에서 놓는 것도 차마 하지 못했다. 알파는 그렇게 엄마가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으려 했던 상실까지도 그녀의 행동과 두려움을 통해 먼저 겪는다.


      삼촌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알파는, 상처받고 배척당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열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병든 아민에게 다가간다. 자신의 방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한다. 세상 모두가 두 사람을 밀어냈을 때,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숨을 쉰다. 학교에서 자신의 몸 때문에 고립됐던 아이가 집에서는 다른 사람의 아픈 몸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 접촉에는 자신이 겪은 배척을 통해 타인의 고립을 헤아리는 마음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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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을 찾은 알파는 학교 선생님과 그의 감염된 연인을 마주친다. 알파의 시선을 알아챈 남자가 자신의 외모를 두고 말을 건네자, 알파는 그저 선생님을 알아봤다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의 모습이 정말 멋있는 것도 맞다는 말을 덧붙인다. 얄팍한 예의나 가벼운 위로가 아닌, 심연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진심. 이는 학교에서 알파의 몸을 훑으며 감염의 흔적을 기어코 찾아내 밀어냈던 폭력적인 응시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시선이다. 어린 시절 삼촌의 흉터 위로 별자리를 그렸던 아이는, 낙인과 고립이 한 사람의 세계를 어떻게 조용히 허물어뜨리는지 몸소 알게된 뒤에도 타인의 병든 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관객은 알파의 이 맑은 시선을 따라가며, 질병의 징후로만 여겼던 대리석 몸을 두려움 너머의 경이로운 대상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대리석으로 변하는 몸에는 감염자에게 존엄을 되돌려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뒤쿠르노는 성당의 대리석 성상을 떠올리며, 인간 이하로 취급받았던 이들의 삶과 죽음에 아름다움과 존중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감독이 아름답게 만든 몸을 관객도 반드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병원 장면에서 강조한 것은 알파의 말에 담긴 진심이다. 알파가 상대의 모습에서 실제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리석의 단단한 형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한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은 바람도 겹쳐 보인다. 피부의 유연함이 사라질수록 아민의 몸은 오래 보존될 조각을 닮아간다. 죽음에 가까워지며 영구히 남을 듯한 형상을 얻지만, 그 몸은 끝내 갈라지고 부서진다. 존엄을 부여하는 대리석의 아름다움과 한 사람을 온전히 붙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이 같은 몸에 놓인다.

       

       

       

      피부, 숨, 기억 속에 내려앉는 붉은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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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에 짓눌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알파. 그런 알파를 깨워낼 수 있는 건 아민이었다. 고립 속에서 벗어나려 거친 바람 속을 혼자서는 뛰어내리지 못했던 알파가 삼촌의 손을 잡고 창밖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갇힌 방 안을 벗어난 두 사람은 드넓은 운동장을 함께 달리고 춤춘다. 병으로 고통받던 아민도 사라지고 이 밤에는 조카와 함께 웃는다.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웃으며 바라본다. 운동장을 향해 빛나는 조명이 낮과 밤의 경계를 흐리고, 몽환적인 화면의 흐릿함이 꿈속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은 동시에 이 환상이 머지않아 끝날 거라는 암시를 만든다. 그 해방의 시간 끝에 아민은 알파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잠들면 깨우지 말아 달라고. 누나가 이어놓았던 시간은 아민에게 거듭 견뎌야 할 고통이었다.

       

      아민의 부탁은 모텔의 붉은 방에서 다시 시험받는다. 그를 따라 들어온 알파 앞에 과거의 엄마가 나타나면서 두 시간이 한 공간에 포개진다. 죽으려는 아민을 누나는 막아선다. 그러나 동생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과 어린 딸, 알파가 죽음을 가까이 알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 마음이 충돌한다. 결국 누나는 직접 주사를 놓아주고, 남매는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나란히 잠든다. 잠에서 깬 누나는 곧 아민을 되살리려 한다. 알파는 삼촌과 약속했다며, 다시 깨우지 않기로 삼촌과 약속했다며 엄마를 말린다. 그러나 누나는 기어코 동생을 깨워낸다. 아직 숨 쉬는 동생을 가만히 두는 일은 누나에게도, 의사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민의 부탁을 지키려는 알파와 그의 생명을 붙들려는 엄마가 같은 침상 앞에서 맞선다. 아이에게 죽음을 가까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던 아민의 바람과 달리, 알파는 그 방에서 죽음과 그것을 거부하는 엄마의 마음을 함께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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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이란 아마 그 안에 갇힌 자가 내뱉는 고통의 목소리까지도 끌어안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한쪽 손과 눈을 제외한 온몸이 돌로 굳어버린 아민이 병상에 누워 있다. 일상적인 농담을 건네며 어떻게든 절망을 지우려는 누나를 향해, 아민은 마침내 "너무 아프다"며 눈을 감는다. 누나가 본능적으로 다시 그를 깨우려 손을 뻗는 순간, 서서히 감겨가던 아민의 단호한 눈빛이 그녀의 손길을 멈춰 세운다. 굳어가는 몸에 남겨진 당사자의 마지막 주체적 의지이자 호소였다. 수없이 말했지만 차마 들어주지 못했던 동생의 부탁을 누나가 처음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 비로소 아민의 기나긴 고통도 끝이 난다.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이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민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 붉은 피에서 붉은 모래로 이어지는 영화의 시각적 전환은 압도적이다. 아민의 부서진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모래가 바람을 타고 공간을 가득 메운다. 누나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민은 그 붉은 모래바람 속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남겨진 엄마와 알파의 몸 위로 붉은 먼지들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대리석이 억지로 붙잡아두려 했던 집착의 형태라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는 형체를 잃은 대신 남은 이들의 삶 전체로 스며드는 애도의 방식이다. 눈을 뜰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이 고통스러운 상실의 먼지는 이제 그들의 피부와 호흡 깊숙한 곳에 영원한 기억으로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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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모래바람이 지나간 뒤,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아민의 상처 난 팔, 그 위에 그림을 그리던 조카 알파. 다시 등장한 아민의 주먹 쥔 손이 천천히 펼쳐지지만, 생동하던 붉은 무당벌레는 온데간데없고 텅 빈 손바닥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어린 알파의 작은 손이 따뜻하게 맞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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