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10. 새로 태어나는 순간

처음 연주하는 기타
글 입력 2021.03.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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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새로 태어나는가, 그 물음은 이슬아로부터 출발한다.

 

작가 이슬아가 매일 자정 넘어 에세이 한 편을 메일함으로 보내주는 뉴스레터 ‘일간 이슬아’에서 그는 꿈에서 깬 순간을 새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숙면은 새사람이 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푹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새로워진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순간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한 낮잠 속에서 이슬아는 여러 죽음을 겪었다. 죽임당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다. 꾸는 내내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험한 꿈이었다. 꿈에서 깨자 해는 중천에서 번쩍이고 심장은 중앙에서 펄떡였다. 아직 죽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일어났다. 이슬아는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부활하듯 이부자리를 빠져나와 방바닥에 발을 디뎠다. 걸어진다니 감격스러웠다. 걷는 행운은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므로. 두 발을 번갈아 내디디며 다짐했다.

 

일간이슬아, 신인들 중

 

 

그건 내가 계절이 변할 때마다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작년에도 꽃잎은 떨어지고 또 새로이 돋아났지만 새 생명이 돋고 죽는 때, 바람의 결이 문득 달라질 때, 첫눈이 내릴 때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난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럼 새로 태어났다는 말의 숨은 의미는 뭘까. 그건 이전과는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나는 이제 노래를 들을 때 가수의 목소리만 듣지 않는다. 띠링~ 하는 기타는 누가 연주하는지 둥둥/타치/둥둥탁! 하는 드럼은 누가 내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음악이 쪼개져 들린다.


그건 내가 기타의 세상에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단짝친구에게 비지시스터즈를 만들자고 했다. 내 이름인 비와 그의 이름 중 끝자리인 지를 합친 밴드 이름이다. 기타를 치면서 참깨와 솜사탕의 이즐께를 부르자고 했다. 그건 농담반 진담반이었다. 그때 난 무대에 올라가 비트박스를 하며 춤을 추거나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오빠들에게 진심으로 반했기 때문이다.

 

현생에 치이면서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고 급급한 게 많아졌고, 무려 13년 만에 기타를 얻게 됐다. 당근마켓에 ‘기타’ 키워드를 알림설정 해놓고 ‘당근!’하고 울릴 때마다 들어가서 호시탐탐 살폈다. 그리고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차가 없는 나를 위해 당근아저씨가 집 앞에 건네 주고 가셨다.


“완전히 새 거니까 잘 쳐요. 연락 온 사람 많았는데, 그래도 제일 먼저 연락해서 파는 거예요.”


당근아저씨 말대로 기타 가방에 가만히 보관된 기타는 기타줄이 하나도 녹슬지 않은 걸 보면 새것이 맞았다. 아빠는 어떻게 중고가 새 거냐고 했지만.


기타줄을 아래로 퉁길 때마다 괴상한 소리가 났다. 아직까지 손의 움직임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손으로는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일련의 패턴을 반복해야 하는데 코드를 바꿀 때마다 삐거덕 거렸고 내 손은 유연하지 못한 돌연변이 오징어 같았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상한 음이 아니라 거친 기타줄이 굳은 살이 박히지 않은 연한 손가락 끝을 찌르듯 짓누르는 아픔이었다. 스마트폰과 키보드를 터치하는 것에 비해 기타줄을 누르는 건 10배의 힘이 필요한 듯했다. 참나 개미가 베짱이보다 무조건 나은 건 아니었네. 베짱이는 나름의 고통을 견디고 좋아하는 일을 지속했다.


굳은 살이 박히고 아픔에 익숙해지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발바닥을 처음 땅에 댔을 때를 상상해 봤다. 말랑말랑한 피부가 딱딱한 땅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 엎어지고 저리 엎어졌을 때를. 기억에 없는 순간이니 상상이라는 단어가 알맞다.


처음 걷게 된 순간부터는 늘 그냥 걸었을 것이다. 걸을 때 엄지가 먼저 닿는지 뒤꿈치가 먼저 닿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신이 나서 달리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커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음악의 세상에서도 걷는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코드도 피킹도 아르페지오도 잘 되는 것 하나 없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이 글은 TMBP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기타의 세상에도 발을 들인 걸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난 계속 뭔가를 배울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 말하기 위해서, 내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나를 잘 알아가기 위한 활동을 끝내면 충분히 사랑할 마음을 갖추고 남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

 

그동안 TMBP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래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고, 새롭게 좋아하는 일도 멈추지 않을게요. 여러분도 부디 그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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