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추억 보존 방법

상상 속에서 더욱 요요해지고
글 입력 2021.02.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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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보존 방법

  

 

내 상상 속에서 곱단이는 더욱 요요해지고

- 박완서, 그 여자네 집 中

 

 

추억의 장소 1호: 옛날 동네



유치원 시절을 보낸 동네 골목은 나에게 넓은 길이었다. 여름이면 친구네 마당에서 풀을 만들어 물놀이를 했고 겨울이면 유치원 가는 길에 한 켠에 쌓인 연탄을 툭툭 건들기도 했다. 어른들이 큰 집게를 들고 조심스레 옮긴 연탄은 아이들의 발길질에 금세 모양을 잃었다. 허연 연탄을 지나치고 나면 나타나는 언덕.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있는 또 다른 친구네 집.


그 나이 때는 친구네 집에 가는 일이, 길거리에서 연탄을 보는 일이 다 이벤트 같았기 때문일까, 유치원을 가기 위해서 꼭 지나쳐야 하는 2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향하는 언덕길이 나에겐 재밌었고, 흥미로운 만큼 길게 느껴졌다.


하기야 그 때는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지도 못했다. 내가 5-6살 때, 아마도 엄마가 몰래 뒤에서 따라왔던 어느 날. 파란 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내 옆에 선 어느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혼자서 길을 건너냐며 말을 걸었다. 혼자서 길을 건너는 첫 순간이었고 나는 무척이나 씩씩했지만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길을 건너주었다. 그시절의 나는 그렇게나 작았다. 횡단보도 혼자 건너지 못할 것 같은 어린 아이, 언덕 하나 지나는데 오만군데 시선을 빼앗기는 유치원생.


그래서 그 길을 다시 가지 못했다. 언덕이 너무 얕을까봐, 골목이 너무나 작을까봐. 단숨에 지나치기엔 나에게는 추억이 너무 꽉 들어차있어서. 처음엔 근처 골목을 지날 용기를 내지 못했고, 그 다음엔 내가 살았던 집 앞을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그 일대가 재개발되어 내 기억 속 뒤죽박죽된 동네 지리를 정정할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덕분에 어린아이에게 가늠이 되지 않은 여기에서 저기까지의 거리를, 지금의 내가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건물 뒤 공터에서 동네 언니 오빠들과 놀았던 날도, 분홍색 네발 자전거가 달렸던 골목도, 두루마리 휴지와 계란을 낱개로 팔았던 슈퍼도, 키우던 강아지가 자주 찾던 미용실도. 어느 것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있다.


 

 

추억의 장소 2호: 캠퍼스


 

추억_학교.jpg

 

 

지하처럼 서늘하고 어두운 1층 강의실, 눈부시게 볕이 잘 드는 2~3층 강의실, 층수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오가는 사람이 없어 동 떨어진 느낌이 드는 4층 강의실, 눈이 펑펑 내리면 설국이 되는 캠퍼스. 산을 깎아 캠퍼스를 만든 덕에 3층 외부 출입문으로 나가면 이공관 앞 주차장에서 셔틀을 탈 수 있는 이상한 구조.


봄이 되면 운동장 근처로 큰 벚나무에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교육관 가는 길 화단은 높게 영산홍이 뒤덮여서 갑자기 분위기 달라지는 이상한 미적 감각.


어느 화장실에 여기 등산하는 기분이라는 낙서가 있고 그 밑으로 공감의 말들이 이어지는데 그 건물이 학교에서 제일 낮은 곳에 있다는 크나큰 슬픔.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을 드렸던 교수님도 찾아뵐 겸, 학교에 가볼까 싶다가도 내가 아는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을 까봐 계속 미뤄두고 있다. 달라진 풍경을 캠퍼스는 낯선 장소로 돌변하고 과거를 끌어안은 나는 소외를 느낄까봐.


*

 

원형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과 작은 변화를 꾸준히 익혀서 계속 업데이트 하는 것 중에 나는 이미 한 번 전자를 선택했다. 그게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후회를 하지 않고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 잘못된 선택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두 번째 장소를 추억에 묻어도 되는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꾸준히 생각나는 걸 보면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확실한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유아기와 성인기만큼의 차이를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


갈까. 갈 수 있을까. 가는 게 맞는 걸까.

금이 가지 않는 추억과 새로워지는 추억 중에 어느 걸 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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