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 늙음, 연극 한 권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글 입력 2021.02.01 14: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평균 나이 55세', 나의 나이에서 20여년 정도 더 떨어진 거리. 하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당장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한 번에 지나간 것 같은 느낌처럼 내 다음의 15년, 20년도 비슷할 것 같다는 짐작 때문이리라.

 

조금 아득하고, 방심한 그때 '곧' 도착할 시간. 그때 나도 무언가 다른 걸 시작할 것 같아 준비하는 마음으로 본 책이다.

 

 

중년의 삶_표지입체.jpg

 


여섯 명의 중년 배우와 한 명의 연출가.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한 문장, 한 문장에 삶의 숨결과 매력이 반짝반짝 살아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보기 전엔, 어떤 나이에든 무엇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책을 본 후의 감상은 조금 달랐다. 새로운 걸 시작하려는 믿음과 용기는 적극적인 의지에서 태어나기도 하지만, 어떨 땐 모든 걸 소진해버렸다고 생각한 그 때, 마음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발견할 때 발휘하게 된다.

 


후천적 지체 장애, 갱년기 불면증, 경력단절, 은퇴, 우울증, 공황장애, 생활고, 이석증, 천식 등을 안고 살아왔으니까요. 결핍 혹은 과도함이 우리를 조금은 더 배려하고 덜 고집스러운 어른으로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런 걸 할 수 있겠어?'라고 반문할 새도 없이 '그냥 하지 뭐' 하고 저지르는 사람들입니다. (14)

 


새로운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결핍', 다른 하나는 '단순한 마음'. 어떤 결핍이 우리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인도한다는 건 조금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은 새로웠다. '단순한 마음'의 의미는 단순하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 마음을 유효한 실천으로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다.

 


<배우수업>에서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는 '무릇 배우란 군인 못지않게 철저히 규율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다. … 그 다짐(연출가의 뜻을 존중해야겠다는)은 안타깝게도 생각에만 머물렀다. 나는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배역에 대한 불만으로 쉬이 잠들 수 없었다. (97)


나는 반장으로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는 형편, 건강 상태, 간절한 욕망 등을 알고 있었기에 연출가로서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기보단 자꾸만 배우들 상황에 맞추려 했다. 그런 충돌이 내 멘탈을 수시로 흔들어댔다. (130)

 


같은 바람을 안고 모인 모임인 것 같지만 그 모임의 목적을 해석하는 시각이 달라 충돌이 일어나고,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 거였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즐겁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또 적당히 대충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관객을 위한 연극이 아니라 연극을 위한 연극도 있음을 그가 알았다면 다른 노래르 부르지 않았을까. (165)


어쩌면 그는 늘 짓던 표정으로 관객의 역할을 다 했을 수 있는데, 그를 핑계 삼아 나의 연기를 유죄로 몰아붙이는 나 자신이 너무 웃겨서 혼자 웃고 말았다. 그만큼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관객에게서 오는 피드백에 힘을 얻고 다시 용기 내어 더 잘하고 싶다 (168)

 


육아와 집안일을 하던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연극에 대한 자기만의 견해를 갖게 되고,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만끽한다. 진짜, 배우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협력이라는 규율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하고, 자신의 양심과도 싸워 이긴 결과다. 흡사 수행하는 과정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나도 오십 년 넘으면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인생 2막에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즐기면서?" (197)


늦기 전에 중년을 사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와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임을 기억한다. (203)

 


못다 이룬 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꿈, 그리고 늙어감. 늙어간다는 이슈 앞에 '꿈'은 더 찬란하게 빛나고, 이 꿈에 다다르기 위해 한 번 더 도약하려 한 몸짓 덕에 '늙음'은 더 아름다워진다.

  


"타인을 연기해도 배우란 결국은 나를 보여주는 심오한 몸부림이다. 그냥 되는 대로 살아서는 배우로서 자격 미달이다." (206)

 


꿈에서 늙음으로 가는 전체 과정으로서 삶. 이 책의 여섯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연출가는 한국의 중년 여성을 넘어 오롯한 인간이라는 존재로 사는 게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

 

"좋아하는 걸 일로 하고 싶진 않아."


언젠가 동생이 그런 말을 했다. 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지 않고 일부러 물러나는 것도 지혜이며, 나는 그 지혜를 몰랐던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어있었고,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면, 힘들 때 그래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려는 용기랄까 동기가 좀 더 쉽게 생겨. 이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 말을 하고 조금 뿌듯했다. 이 믿음은 이 책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좋아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면 처음엔 좀 멋있는 것 같다. 다음엔 좀 힘들다. 그리고 그 힘듦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엔 비참하다. 낭만적으로 반짝이는 것 같은 시작에 비해 아주, 아주 별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가 중요하다. 이 시간에만 깨달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작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무엇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통과해야하는 관문이다. 안락함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축복인 것 같기도 하다.


연극이라는 예술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지속하기 위해,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책 소개


     

"계속 재미나게 살아볼까 합니다."

사이다처럼 톡톡 튀는 중년들의 연극 데뷔 노트

     

평균 나이 55세, 연출 안은영을 중심으로 7명의 중년이 연극을 하겠다고 뭉쳤다. 쉰 넘어 연극판에 뛰어든 그들은 '참별난극단 B2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4년 차 아마추어 연극배우들이다. 그들이 연극 '강 여사의 선택'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동고동락한 이야기가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라는 책에 담겼다.


첫 번째 이야기는 7인의 자기소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처음 연극판에 뛰어들 결심을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글들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처음으로 '강 여사의 선택'에서 배역을 받고 연기를 알아가던 순간을, 네 번째 이야기는 연극을 하다가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을, 다섯 번째 이야기는 연극 무대에 서서 관객과 호흡하던 황홀한 순간을 담았다. 


마지막 장은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한 7인 7색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록엔 본문에 미처 쓰지 못한 자유로운 수다를 풀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중년을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 중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차례


     

프롤로그 – 브라보, 세컨 스테이지 


첫 번째 이야기. 이상하고 자유로운 꽃중년의 등장 

당신은 누구신가요? 

"맞아요. 난 정신병자예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비행 소녀

아니네, 잘 살고 있는 거네 

오늘도 내일도 도전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라!

지금, 행복하기를 사는 중


두 번째 이야기. 그날 너무 용감했지 뭐야! 

희희노애락락 

긴 장마 끝에 

그르까? 가보까?

연극만 할 수 있다면 

연극이라는 바다에 풍덩

이 간절함에 응답하라


세 번째 이야기. 세상에, 내가 연극배우? 

최정주, 강 여사

정호정, 황 간호사

김영희, 치매 노인 3

최상옥, 치매 노인 1

마기원, 박영순 

윤현정, 양 선생

정호정, 한 선생

     

네 번째 이야기. 때로는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우리, 학예회 하는 거 아니잖아요!" 

다시! 다시!! 다시!!!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 거였어?

연극 하다 죽겠네

6학년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확 때려치울까? 


다섯 번째 이야기. 어쩌다 연극 무대에 서버렸네요

난, 벌거숭이 임금님

울림이 있는 시선을 느껴봐

보는 자에서 보이는 자로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지? 

아, 이런, 이런, 

강 여사가 된 최 여사


여섯 번째 이야기.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 참 괜찮은 일

이 사람이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엄마는 잘 늙어서 좋겠다? 

오호, 커튼콜! 

빛을 보다, 빛이 되다

황홀경 

진짜 배우가 된 것 같았다 


부록. 7인의 자유 노트

에필로그 – 나이 들수록 잘 배워야 한다

 

 

[이서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