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팬의 시선으로 창작된 예술가의 이야기 - 도서 '문학으로 덕질하다'

어쩌면 비하인드 스토리
글 입력 2020.11.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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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신중선(문학으로덕질).jpg

 

 

 

저는 프로 덕질러입니다

 

일명 금사빠(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인 나. 그 이유를 말해보자면, 세상엔 매력적인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온전히 자신만의 빛을 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 대상으로, 나는 이들에게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린다. 어느 무언가에 꽂히는 순간, 내 세상은 그로 인해 돌아간다. 이처럼 덕질은 내게 하나의 습관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몇 달 전, “당신은 누군가의 팬입니까?”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단지 누구의 팬인지, 어쩌다 그(혹은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하였는지 등에 관하여 적는 글이었다. 나만의 스타를 서술하는 건 꽤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글을 작성하면서 내 곁에 자리했던 수많은 연예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을 스마트폰 앨범 안에 존재하던 그들 말이다. 오랜만에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던 이 시간을 통해 나의 덕질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내겐 일상에 가까운 덕질. 그리고 최근에 돌아보게 된 나의 덕질 생활. 나에게 ‘문학’과 ‘덕질’, 두 단어가 들어간 책이라.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진 흥미로운 책 소개가 궁금증을 자극했다.

 

 

 

친숙한 듯 낯설었던 <문학으로 덕질하다>


 

<문학으로 덕질하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듯 낯선 장르의 책이었다. 바로 스마트소설이었는데, 이는 짧은 형식 안에 깊은 내용을 담으려는 픽션이자 스마트폰을 겨냥한 새로운 소설 장르를 뜻한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을 겨냥한 소설이라니. 정확히 나를 저격하는 소설이었다. 나 역시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은 말하고 싶은 바를 압축해서 전달하다 보니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무엇을 얻거나 깨닫길 바라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를 매료시킨 몇몇 어구나 문장들은 기억 속에 오래 자리하기도 한다.

 

단지 짧은 글로 이뤄진 책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는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덕질 대상으로 소개했다. 세계적인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펼친 몇몇 예술인들까지 모두 다뤘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아놓은 노트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자는 한 예술가의 특정 시점에 들어와 그 위에 상상력을 더한다. 물론 이는 허구지만, 이상하게도 있을 법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저자가 진정한 문학 덕후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덕후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관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절대 무시 못 할법한 거대한 양의 정보들이 말이다. 이와 같은 정보를 가지고 글을 쓰니 생생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 영화의 마니아들만 봐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주목하지 않는가? 사실 설정 오류가 발생하는 순간, 관객들의 몰입도는 깨진다. 이 책 역시 탄탄한 밑 작업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팬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으로 덕질하다>는 달랐다. 기존의 완성된 재료들을 이용해 환상적인 요리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허구적인 소설에서 현실감 넘치는 소설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이에 등장하는 예술가에 대해 애정이 짙은 사람, 즉 열성 팬이라면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붓을 다시 집어들다


 

사실은 소개된 예술가들 중 몇몇을 알지 못했기에 부끄러웠다. 특히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임에도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어 더욱 그러했다. 앞의 이유로 누군지 밝히기는 어렵겠지만, 검색창에 이름만 쳐도 수천수만 건의 자료가 나오는 사람이었다. 그의 가치를 미처 알아보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웠달까. 그러나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기에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좀처럼 아쉬움은 뒤로 하고 다시 책에 빠져들었다.

 

문학-190.jpg

 

 

조금은 낯선 매력이 풍기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니 궁금증이 차올랐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으니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장 미쉘 바스키아. 입안을 겉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의 이야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너무 일찍 빛을 발한 바스키아는 저자의 도움으로 현실에 나타났다. 활자 속 생생히 날뛰는 그가 말을 건넬 것만 같았다.

 

끝없는 예술의 세계 속,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예술가들이 쥐고 있던 붓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그의 낙서는 예술성이 넘칠 뿐만 아니라 상당히 역동적이어서 눈앞에 나타나는 듯했다. 그만의 개성은 또 어떠한가. 독보적인 스타일의 천재 화가를 직접 볼 수 없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창조자이시며 나를 소멸시킨 자


 

그저 그런 글도 있었지만, 진정 감탄이 나오는 글도 존재했다. 전자의 경우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끝맺음이 아쉽게 느껴졌달까. 몇 분 동안의 짧은 시간에 누군가를 사로잡기가 진정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달랐다. 전자의 단점을 완전히 메꿔주는 글이었다. 초장부터 사로잡혔다. 상상할 수도 없던 관점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전개하니 헤어나올 틈이 없었다. 이는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_나의 창조자이시며 나를 소멸시킨 자]였다.

 

 

겨우 스물아홉 해를 살다 간 나는 말이죠, 오랜 동안 사람들이 나를 왜 그토록 싫어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태생이 비천하니까 혹은 절름발이에다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라서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죠. 아버지는 내 나이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인지시켜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기피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냄새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던 거죠.

 

-p.211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작품 『향수』의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자신을 탄생시킨 장본인에게 건네는 말을 담은 글이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 작품 속 스물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가장 천재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인물이라 묘사된다.

 

제목부터가 강렬하지 않은가. 어느 누가 작품 속 연쇄살인마의 입장도 생각했겠느냔 말이다. 자신도 사랑받고 싶다고 고백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은 바티스트. 더욱이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자신의 상태에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작가로부터 부여된 설정 때문에 끔찍한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연민이 생겨났다.

 

 

묻고 싶어요. 체취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기는 한 것입니까? 나는 왜 하필이면 냄새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타인의 냄새를 탐하게 되었을까요. 하긴 그처럼 괴이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온 세상을 향해 마법을 걸 수 있는 궁극의 향수 같은 건 제조해내지 못했을 테지만요.

 

소설의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즉 내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을 때 아버지는 나를 묘지로 데려갑니다. 그곳이 내가 사라지기에 적합한 장소라 여긴 것이죠. 아버지는 탈영병과 불량배와 창녀 등 온갖 군상들을 그곳에 그러모았습니다. 그 수가 서른이라고 책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소설을 끝내기로 작정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향수를 뿌립니다. 궁극의 향수이니 당연히 주변에 아름다움이 퍼져나갔을 테죠. 비천한 군상들은 처음엔 놀라고 다음으로는 감격합니다. 과연 향수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연쇄살인마인 내가 인간 천사로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들 모두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p.212

 

 

체취, 냄새가 없다는 건 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향기가 없는, 향기롭지 않은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던 비참하고 우울하지 않은가. 심지어 30명의 사람이 모여 그의 몸을 조각내어 먹는다. 그런데 그는 이를 향수를 뿌린다고 표현한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함으로써 자신이 사랑받았다고 느낀 것이다. 이토록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니, 상상의 자유로 인해 꺾인 그의 날개는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몇 장이 채 안 되는 글을 읽으면서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캐릭터가 눈에 밟힌다니, 정말 신기할 정도다. 무엇보다 ‘냄새 없는 인간’, ‘궁극의 향수’ 등 향으로 여러 표현을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때 살짝 소름이 끼쳤달까. “스마트소설”이라 하면 바로 이 글을 떠올릴 듯하다. 그 정도로 한순간에 확 몰입하게 한, 긴 여운을 남기는 글이어서 좋았다.

 

*

 

나처럼 짧은 글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을 남기고 싶다. 부디 ‘나의 창조자이시며 나를 소멸시킨 자’를 보며 전율을 느껴보길!

 

 


 

 

문학으로 덕질하다

- 인물스마트소설 -
 

지은이 : 신중선

출판사 : 문학나무

분야
한국소설

규격
128*210mm / 올 컬러

쪽 수 : 224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5629-108-4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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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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