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 시리즈-하양' 내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니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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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우리말로는 하양. 한자로는 백색.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우리말과 한자를 혼합한 흰색이다. 하양을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깨끗한 도화지’이지 싶다. 티 없이 맑은 순수하고 순결함을 간직하고 있다. 지식백과에 표기된 흰색의 정의는 비유적이다. ‘눈이나 우유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 눈이나 우유의 색이다. 채도는 없지만 가장 밝은 명도를 가지고 있는 색이 흰색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색이 하양이다. 당장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의 옷장을 동시에 열어봐 가장 많은 색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절반 이상은 하양이라고 하지 않을까.

 

업무를 위해 하양을 입는다고 가정하면, 하양은 소음과 감정 소모가 지나치게 많을 때 우리에게 공간을 제공하여 질서 감각을 주는 긍정적 효과를 주기도 하고 자칫 차갑고 불친절해 보일 수 있는 장벽을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주기도 한다.

 

하양은 선명하고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청결하다. 파랑과는 또 다른 차가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무미건조할 수도 있고 삭막해 보일 수도 있다. 하양은 모든 소음을 차단해주기 때문에 때로는 고립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양에 투영된 이미지는 확장되기보다는 정체되고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뚜렷한 하나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아간 청년이 있다. 그는 한없이 맑고 순수했으며 자신보다는 남을 헤아리기 바빴다. 이 세상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기를 꾸준히 노력했던 그 청년은 하양을 닮았다. 그 청년을 떠올리며 이 세상이 하얘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를 만나기 위해 7월과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존재는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지만 나의 일상에 묻혀 빛을 바라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다. 내 앞에서 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2020년 7월 10일에 본 극단 일터의 연극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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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새 끊임없이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변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극은 1980년대를 가리키고 있다. 평화시장의 공장, 열악하고 노후 된 근로환경이 여실 없이 드러난다.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을 것을 챙겨 먹지 못하고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가지는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대우마저 허락하지 않은 환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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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깎아서라도 어린 여공들을 도와주기 위해 재단 보조사로 일했던 청년은 혼자보다도 함께여야 더 행복하다고 믿었다. 학교를 가야 할 어린 여공들의 가냘픈 삶,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리아리해진다.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근로기준법을 주장하고 노동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설문지를 돌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펼치기 위해 바보회를 결성한다. 노동자가 갖춰야 할 권리는 당연한 것임을 극중극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길섭이 지은 ‘대장부의 눈물’에 있었던 구절이 좋았다.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증표이니, 너는 부끄러워 말고 크게 소리 내어 울어라" 이와 함께 불렀던 그들의 노래 중 눈물이라는 맥락 속에서 와닿았던 가사가 있었다. "저 들에 핀 꽃은 이슬로 피지만, 불꽃은 눈물로 피어요."

 

2021년에 산업현장에 사고가 나면, 의료진이 잠시 대기 중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다. 유급 휴가를 받는다. 공기 청정기가 있어 숨 쉬기 편한 환경이다. 대표의 모토는 쉬면서 건강하게 사람답게 일하자이며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2021년은 이런 모습이다. 2021년엔 이런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면 좋을 텐데. 수많은 땀을 흘린 ‘바보회’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미순이가 명희에게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나를 위로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바꾸는 공식은 뭘까예. 근데 이건 공식이 없어예. 왜냐면 답은 여기 이 마음에 있으니까. 이 마음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못하니까. 마음도 자기 거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을 바꾸면 서서히 바뀌니까. 명희언니 마음이 내 마음이니깐예.”

 

 

연극을 하는 내내 무대 한편에서 청년은 함께하고 있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세상,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되었다. 그가 원했던 세상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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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5일, 청년을 기념하는 공간을 방문했다. 그 공간에는 총 3개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청년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함께하는, 길>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를 곱씹어보며 상설전시의 공간 이음터를 찬찬히 걸었다. 그가 써놓은 수기를 바탕으로 펼쳐진 전시는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훑어보기에 충분했다. 분신자살을 결정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거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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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다운 노동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같다. 청년의 어머니는 청년이 죽고 나서 한 연설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가 되세요.”

 

기획전시 <함께하는, 길>과 <보고 싶은 얼굴>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노동자들이라 힘주어 말하고 있다. 웹툰을 통해 회화를 통해 조각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된 매체가 나에게 다가왔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이 세상이 하얗게 변하기를 원하며 애써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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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며 수없이 다짐했던 한 노동자의 다짐을 들여다본다. 그의 열의는 일기를 뚫고 내게 전해진다. 깨끗하고 순수한 세상이 되기를 원했다. 노동 중심,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이 사회가 물들기를 소망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출발점은 내가 되어야 한다. 나비효과를 믿는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돌풍이 일어날 거라 믿는다. 내 마음이 바뀌면 세상은 바뀔 거라고 가슴속에 수없이 새긴다.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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