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발자국 멀리서 본 당신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다 - 아버지의 사과 편지

글 입력 2020.09.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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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읽은 감상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내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 읽고 난 지금, 각오했던 것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나는 분명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책을 펼친 건데 그 안에 남을 미워하지 못해서 나만 끈질기게 미워했던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과편지_표1(평면띠지).jpg

 

 

 

처음엔 변명처럼 들렸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친족 성폭행 생존자인 이브 엔슬러가 31년 전에 죽은 아버지를 화자로 설정해 상상으로 쓴 사과 편지다. 편지에 담긴 폭력의 내용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면 그녀가 강간, 폭력, 폭언 등 온갖 종류의 학대를 일삼았던 그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진짜 악랄한 폭력은 응당 가해자에게 향해야 할 미움을 피해자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정말 내 잘못은 없는 걸까?’ ‘사실 그도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았을까?’ 이따위 물음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처음 아버지 아서 엔슬러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나올 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가족에게 온전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가해자에게 필요 이상의 서사를 꾸며줌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던 수많은 사람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진짜 불편하게 했던 건 이 서사를 피해자 본인이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아버지에 관해, 또 아버지의 역사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보니 상당 부분을 머릿속에서 그려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책에서 전하는 아서의 상처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너무 상세해서 자꾸 아서 본인이 서술하는 거라고 착각하곤 했다. 변명하지 말라고, 그 어떤 것도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화자를 향해 분노하다가 그에게 마이크를 쥐여준 게 저자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가해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건 늘 내가 하는 짓이었다. 최근 친구에게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던 나는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언급하다 갑자기 그의 입장을 친구에게 변호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듣던 친구는 너는 왜 네 상처를 말하기도 전에 상대의 입장을 설명하느냐고 물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 전에 너의 감정부터 돌보면 좋겠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상대가 얼마나 힘들었든, 어떤 의도로 그랬든 내가 상처 입었다면 그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다. 아무리 가해자의 사연이 구구절절해도 그게 나의 상처를 씻겨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초반부에는 이브 앤슬러가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자처해서 가해자에게 외로웠던 유년 시절이니 그림자 인간이니 같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붙여주는 걸까. 작가도 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등한시하고 상대의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인 걸까.

 

문장들이 유려해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브 엔슬러는 과연 뛰어난 작가여서 만약 이 책이 허구의 소설이기만 했다면 감탄했을 만큼 섬세한 묘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건 소설이 아니다.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으니까. 그렇다고 이건 수필인 걸까. 그것도 아니다. 아서 엔슬러 본인이 자신의 심리를 증언하는 게 아니니까. 허구와 진실 그 사이에서 대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가족은 가장 쉽게, 가장 깊게 상처를 준다


 

몇 개월 동안 집요하게 나의 불안과 우울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선천적인 줄 알았던 나의 성격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상처에는 가족이 준 상처도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가족들도 나를 사랑한다. 우리 가정에선 폭력이나 학대는커녕 지지와 응원만이 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침울해 보이느냐는 물음에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연약하고 불안했던 시기에 겪은 가족들의 무관심이 어른이 된 지금 뒤늦게 떠올라서 우울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인생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도 깨달았다.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아무런 갈등 없이 마냥 화목하기만 한 가정은 많지 않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가정 내의 폭력이 얼마나 손쉽게, 비참하게 개인의 인생을 망가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서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이브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서는 이브를 폭력과 교육을 구분할 수 없도록, 폭력에서 성적 쾌락을 찾도록,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지 끝없는 검열을 하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이브는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의 소유물이었던 그는 절망의 파도에서 헤엄쳐 나와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많은 사람이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을 대단하게 보듯이 나도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작가, 사회운동가가 된 이브의 성취가 몹시 대단해 보였다. 단순히 직업적으로 성공해서가 아니다. 족쇄처럼 자신을 붙잡은 가정 폭력에 끊임없이 저항한 것에 대한 감탄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정환경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나는 이 사실이 퍽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봤자 타인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삶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다니. 나는 가족도 결국 남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집 밖에도 소중한 인연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책에 이런 부분이 있다. 어렵게 꿈을 찾은 이브는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지만, 아서는 그에게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아버지가 부자라서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고 애원하던 이브는 결국 그 학교를 포기한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부자 아버지를 둔 딸은 당연히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나도 그랬으니까.

 

이 세상엔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 많다. 그 가족이 실은 그 어떤 타인보다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가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을 얻겠지만 누군가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릴 만큼 날카로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가정의 울타리는 튼튼하다. 튼튼하다는 말은 폐쇄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외부인은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개입할 자격도 부여받지 못한다. 가정 문제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라. 우리 세대는 이 낡은 고정관념과 싸워야 할 것이다.

 

 

 

자기객관화의 함정에서 벗어나면


 

초반부엔 왜 하필 이브 엔슬러가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가해자를 소환하는 것을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읽는 내내 이런 거창한 이유는 없었을 거라고, 그는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책의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깨달았다. 가해자의 심리를 조명하고 피해자인 본인을 타자화함으로써 자기객관화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서가 이브에게 행한 행위 모두가 가스라이팅에 속한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를 자기객관화의 함정에 빠트린다. 한때 나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건네줘도 고맙다는 말 뒤에 항상 ‘정말 내 잘못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한 발자국만 멀리서 보면 쉽게 답이 나올 문제였다.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못난 인간도 아니었고 내 잘못만이 문제의 원인은 아니었다. 사람은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스라이팅으로 자기객관화의 함정에 빠진 사람은 타인을 단순하게 좋은 사람이고 자신을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심, 불안, 우울, 자책 등 연약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타인은 항상 확신에 차 있는 상태라고 믿는다. 매일 자신의 밑바닥만 보는 사람은 그것만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객관적인 태도라고 착각한다.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이브는 수도 없이 자신을 책망했을 것이다. 제삼자의 시선에선 궤변에 불과한 아서의 폭언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가부장제가 쌓은 아버지라는 권위만 빼면 아서는 그저 약한 존재에게 분풀이하는 볼품없는 인간일 뿐이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이브는 그를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닌 추악한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드디어 진짜 객관적으로 보게 된 이브 자신은 생각보다 착하고 괜찮고 강인한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더 이상 작품에 감정 소모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지금의 나에겐 더 받아들이기 힘든 책이었다. 각오한 대로 책 읽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끔찍한 폭력의 연대기에 눈살이 계속 찌푸려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 기분은 불쾌하지도, 찝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개운했고 어딘가 뭉클했다.

 

 

이브,

 

나는 너를 그날의 서약으로부터 풀어주려 한다. 그동안의 거짓말을 거두련다. 나는 저주를 풀려 한다.

 

늙은이는, 사라진다.

 

- P.186

 

 

나는 못난 사람이고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연기처럼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자책은 일상이다. 오늘도 나는 그저 내 실수를 지적했을 뿐인 상대에게 내 존재를 미안해했다. 상대는 어떠한 질책도 하지 않았음에도 혼자 부끄러워하며 상처 받았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며 나 자신에게 말한다. 상대가 마냥 완벽한 사람은 아니듯이 나도 마냥 못난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져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자신을 향해 내리는 평가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이 사실 그건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더 널리 읽혀서 더 많은 여성이 자기객관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온다면 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게 성폭행과 추행을 당했던 카일 스티븐스가 법정에서 한 말이 현실이 되는 일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한 여성으로 성장해 당신의 세계를 허물기 위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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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

- 딸아 미안하다. 그건 강간이었다. -


 

지은이 : 이브 엔슬러

 

옮긴이 : 김은령


출판사 : 심심


분야

외국 에세이 / 여성학


규격

133*193


쪽 수 : 208쪽


발행일

2020년 08월 14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5675-835-8 (03300)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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