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과 연애를 공부하는 이유 [사람]

직접 하는 사랑은 변덕스러운 햇빛 같고, 글로 배우는 사랑은 든든하다
글 입력 2020.09.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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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이후로 연애와 사랑에 대해 종종 공부해왔다. 텍스트, 그러니까 글로 말이다. 재치 있는 철학이 녹아든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소설들을 먼저 섭렵했다. 교양 교재에 발췌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열심히 읽었다. 전공 교재인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는 재수강 탓에 두 번이나 완독했다.

 

연애를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로맨스 영화의 변천사를 연애 행위의 변동에 대입한 책 『연애정경』도 구입해서 읽었다. ‘글로만 배운다는 말이 있다더니, 연애도 글로만 배운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연애와 사랑을 학구적으로 공부한 이유는 간단했다.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연애가 비록 당사자 간의 일이라지만, 관심 많은 분야에 무지하다는 건 꽤나 난감한 일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전 생애주기에 걸쳐서 하게 되는 것인데, 피상적인 노래와 판타지적인 드라마, 그리고 폭력적인 뉴스 속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제하고 나면 정작 아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사랑의 빈도에 비해 현실 속 사랑은 ‘알아서’라는 무책임에 내맡겨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혼자서 마음을 추려가는 데에도 이런 책들은 도움이 되었다. 사랑의 사회학이 제공하는 연애의 보편성은 울창하고 무서운 산꼭대기에 있는 아늑한 오두막집 같다. 높은 오두막집 창 너머로 먼 오르막길을 주욱 내다보니 두려움은 덜어지고 어떤 태도로 연애를 바라보아야 할지 조금씩 판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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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현재의 낭만적 연애가 출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매체에서 서술하는 사랑의 공식도 시대마다 조금씩 변해왔다.


 

‘2000년대 초반의 영화는 신자유주의 시대 연애의 전조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주요한 가치를 지닌다. 인물이 가진 구체적인 성격과 특수성이 연애 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는 경향은 2008년 이후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한층 강화된다. 2000년대 초반 영화는 90년대 신세대의 연애와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연애 사이의 징검다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책 [연애정경]에서는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미디어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 전후 로맨스영화의 디테일 변천사로 연애의 변화를 짚어낸다. 알고 보면 사랑은 절대불변의 일관된 가치라기보다는 사회상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가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진다.


 
‘언제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의식이 관계 맺기를 구조적으로 뒤흔들었다. 이 모든 측면에 합리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에서, 동시에 개인의 취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짝찾기 과정을 변화시켰다.’

 

[사랑은 왜 아픈가]

 

 

요즘에 상대의 재산이나 지위를 보고 사랑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옛날엔 그것들이 연애 조건의 대부분이었다. 그럼 현대에는 어떤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될까? 긴밀한 감정교류, 외적 매력, 취향이다.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사랑을 하며 교류되는 긴밀한 감정의 스펙트럼과 무게들도 개인이 모두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버겁다. 그러니 사랑이 잘 안 풀리는 게 꼭 ‘내’가 연애를 못 해서랄 것도 없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노력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랑이다. 그리고 노력과 응답은 개인이 일말의 능동적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울리히 벡이 현대 사회의 사랑을 유대의 방식이자 안식처이며 신흥 종교라고 말한 것처럼 연애는 그만큼의 위안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연애정경]

 

 

그렇다. 사랑을 공부한 뒤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사랑이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운명과 자연스러움으로만 점철된 미디어의 환상에서 깨어나 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의 사랑을 신흥 종교로 빗댈 정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의 영향력은 크다.

 

그런 중요한 가치를 공부와 사유 없이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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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공부해도 사랑을 온전하게 알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나는 다음으로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과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으며 사랑 공부를 더 해내려고 한다. 아, 물론 현실 세계에서 사랑도 열심히 병행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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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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