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도서]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글 입력 2020.07.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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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들려오는 소식들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7월이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권력형 성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무력감이 몰려온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그들의 용기가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은 이 지경이다. 자극적인 프레임의 기사가 난무하고,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친다. 내가 안 들으면, 내가 안 보면 마음이 편해질까 싶어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은 날도 있었다. 고개만 조금 돌리면 피할 수 있는 풍경이라니, 참 비겁하다. 보이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질 때면, 살아남은 피해자를 떠올린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피해자의 모습을 새긴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지금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김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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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올해 3월 출간된 <김지은입니다>를 떠올렸다. 출간 당시, 담담하게 읽어나갈 자신이 없어 외면했던 글이다. <김지은입니다>는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2년 전, 김지은 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상대로 미투를 했고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안겼다.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안희정은 가장 핫한 정치인이었고, 주위에 그를 지지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안희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김지은 씨 또한 그랬다. 정치인 안희정의 가치와 뜻에 동의했기에 그의 선거 캠프에 들어갔고, 수행비서로 발령받아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상사의 성폭력이었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자 돌아온 건 수많은 질문이었다. 해당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지만, 가장 크게 상처 입은 건 김지은 씨의 일상이었다.

 

2018년 3월, Jtbc 뉴스룸에서의 미투 이후 ‘김지은’을 둘러싼 무수한 말들이 생겨났다. 가해자 측의 공격, 언론의 프레임, 익명의 손가락으로 주워 담지 못할 말을 쏟아내는 이들, 성범죄 사건을 하나의 가십거리로 소비하며 말을 더하는 주변의 목소리. 나 또한 휩쓸렸던 것 같다. 쏟아지는 말들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때는 그냥, 모든 게 끔찍하고 피곤하게 느껴져 ‘빨리 사건이 종결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당시 피해자는 어땠을까. <김지은입니다>에 그때의 김지은 씨가 느꼈던 감정들이 빽빽이 녹아있다. 글을 읽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차마 언어화하기 힘든 경험과 기억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 활자 하나하나가 슬픔의 응어리를 만들어 숨구멍을 막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귀 기울일걸. 조금만 더, 목소리 내볼걸.

 

2018년 8월 14일,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난다.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하지 않았다”라는 재판부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사건이 어떻게든 종결되겠지’라는 마음을 그때서야 버렸다. 2018년 8월 18일, 친구와 서울역사박물관 앞으로 나갔다. 무더운 여름, 그곳에 모인 시민들의 마음이 더 뜨거웠던 날이었다. #METOO #WITHYOU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해가 저물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참 많은 분들이 한 자리에 나와 있었다. 미약한 희망의 냄새를 맡았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긍정.

 

하지만, ‘무죄’ 판결로 인해 더 많은 말들이 김지은 씨 위로 얹어졌다. 2차 가해의 폭격, 떠도는 말들에 하나하나 변명할 수 없다 보니 기정사실화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김지은입니다>에 이에 대한 세밀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리며 김지은 씨가 얼마나 지난한 싸움을 해왔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들이 가슴에 사무쳐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김지은입니다>는 권력과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말들에 맞서 ‘살아남은’ 김지은이 차곡차곡 쌓은 기록이다. 수행비서 시절의 업무 환경, 조직 내부의 분위기, 피해 당시 전후 상황 등 김지은 씨의 온전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의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위력 성범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맥락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사 몇 줄로는 알기 힘들었던 이야기다. 김지은 씨는 기록을 통해 미투부터, ‘노동자’ 김지은과 ‘피해자’ 김지은, 범죄 고발 이후 일상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증언한다.

 

특히 노동 상황에서 일어난 피해, 위력을 가진 상사에 의한 피해인 경우 왜 피해자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 <김지은입니다>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피해자에게 ‘왜 여태 말하지 않았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사람들에게 다음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함께하기


 

 

제발 조용히 누군가 다가와 밖으로 나온 나를 와락 안아줬으면 좋겠다. 이 분노가 멈출 수 있게 심장과 심장으로 “그래, 나도 너의 그 맘을 알아. 이해해. 공감해. 동의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다시 밖으로 나온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폭력의 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전에 이를 믿지 못하는, 믿지 않는 ‘듣는 이’를 위해 자기 경험을 가감해야 한다. 폭력 그 자체가 끔찍한 고통인데, 폭력을 언어화하는 건 더욱 가혹하다. 이후에는 2차 가해가 뒤따른다.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피해자가 말하게 하자.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자. 피해자와 같이 외치자. 김지은 씨가 겪은 일은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살아남은 피해자는 단순히 가해자와 권력에 맞서 싸우는 걸 넘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싸움의 끝에 존재해야만 진실을 밝힐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살아나갈 힘을 주는 건 지지와 연대다. 끝까지 이들의 손을 놓지 말자.

 

피해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삶의 어떤 순간에서 서로의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온기가, 거대해 보이는 벽을 넘을 수 있는 하나의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 싸움에 뛰어든 모든 사람들을 와락 껴안고 크게 외치고 싶다. “그래, 나도 너의 그 맘을 알아. 이해해. 공감해. 동의해. 우리,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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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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