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짝사랑 연대기] 6장 : 하나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완성할 때까지 계속 쓸 것입니다.
글 입력 2020.07.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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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짝사랑 연대기」 프롤로그를 올린 날짜가 4월이었으니, 이 에세이를 연재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다음 파트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가 올라올 예정이다. 에필로그를 올리기 전에, 6장에서는 어떤 주제에 대해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 끝에, 나는 본 장의 마무리로는 ‘이 주제’를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내가 거쳐야 하는 과정에 대해서 말이다.

 

이 주제에 관해 쓰면서, 역시 하나의 소설이라도 완성하는 게 쉽지 않음을 느꼈다. 소설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아는 게 많다고 해서 소설을 잘 쓰는 게 아니었다. 작품 완성도의 조건에 대해 아는 게 많다는 것은, 글을 쓸 때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했다. 어느 순간 나는 글을 아직 써보기도 전에, 글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필요한 것들이 먼저 보여서 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엔 완성도 있는 글 하나를 완성하기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하나의 뚜렷해진 결론에 내가 도달하는 걸 느꼈다. 소설 하나를 완성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럼에도 나는 왜 글쓰기를 사랑할까. 너무나 부족한 걸 스스로 아는 내가 왜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할 수가 없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에필로그로 자연스럽게 답하게 될 것 같다.

 

그 대답을 하기 위해, 일단은 이번 6장은 소설이 하나 나오기까지 내가 거치는 과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주제가 나오지 않으면 소설이 시작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설이 시작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세상엔 여러 작가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작법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 동기는 소설을 시작할 때 쓰고 싶은 ‘장면 하나’가 있어서 그걸 붙들고 쓴다고도 한다. 그 한 장면을 쓰기 위해 여러 장면을 붙이고, 그 장면 사이사이에 개연성을 넣으면 그게 플롯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했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또는 궁금해서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어야 그 주제를 말하기 위해 인물들과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에 썼던 장르문학 소설의 세계관도 한 질문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신이 있다면, 그런데도 왜 세상엔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왜 잘 되어야 마땅한 착한 사람들이 가혹한 환경으로 굴러떨어질 때가 있고, 단죄받아야 할 사람이 더 승승장구할 때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스토리가 짜이기 시작했다.

 

만약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 짓기 위해 검사와 변호사처럼 싸우는 존재들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착한 사람이 불행을 겪는 이유는, 불행한 운명을 심판받게 이끈 검사의 승리인 것이다. 나쁜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건 변호사 쪽이 좋은 운명을 이끌어 낸 것이고. 이런 식으로 나는 그 소설의 세계를 지탱할 천상의 한 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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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설 수업에 과제로 제출한 소설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인간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여러 현상을 목격했다. 특정 종교의 신도가 전도를 위해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다니는 것이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랬다. 그걸 보며 질문하고 싶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왜 비합리적인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비합리적인 것에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기 위해서 나는 역병이 한 바탕 돈 세상에서, 종교를 믿게 되는 한 여자아이를 창조하게 되었다.

 

소설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자, 그 질문을 찾는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나는 질문이 존재하지 않으면 소설이 시작할 수가 없었다.

 



소설 완성도의 기본, 자료 조사하기.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베트남 전쟁이라는 소재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살았다. 내 동기들은 나를 ‘학교 지박령’이라는 우스운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또한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연꽃 아래>에 참여해, 재판도 방청하고 집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의 말을 직접 들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자료조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소설을 쓰는 것부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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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조사를 위해 서포터즈의 일원으로서

시민평화법정을 방청했다.

 

 

앞에서 소설을 쓰려면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질문을 가공하여 소설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료조사라고 말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 그때 당시에 플롯은 금방 완성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완성된 콘티가 존재하는데도, 그 소설은 금방 쓸 수가 없었다. 중간에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시작하기조차 나에게 너무 큰 짐이 되어 쓸 수 없는 소설이었다. 나는 내가 쓰려는 소설의 스케일에 비해서, 내가 아는 게 너무 적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콘티를 그저 그대로 둔 채 먼저 자료 조사에 집중했다. 자료 조사를 반년 이상을 하고 나서야-물론 반년 동안 자료조사만 한 건 아니지만- 나는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료 조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탄탄한 자료가 그 소설의 개연성을 살리는 장치라고 생각해서이다. 내가 구축한 소설 속 세계관을 탄탄하게 받드는 건 내 지식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자료이다. 소설에 현실성이 없거나, 개연성이 없어서 독자들을 말 그대로 확 “깨게” 하면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독자에게 도달할 수가 없다. 소설이 나와 독자를 잇게 해주는 통로라면, 자료조사는 그 통로를 무너지지 않게 차곡차곡 탄탄히 쌓은 벽돌과 같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소설을 다 썼던 밤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 조사를 녹여내서, 결국 소설을 완성했다는 감격에 그날 밤은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타인의 피드백 받고 수정하기


 

합평에 대한 중요성은 전 시리즈들에서 많이 언급한 것 같으니 여기서는 짧게 말하도록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저렇게 열심히 조사해서 완성한 소설을 동기들에게 보여줬을 때 과연 나는 찬사만 받았을까? 아니다. 자료조사를 탄탄히 해서 소설 속에 개연성과 사실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소설적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 소설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 인물이 너무 많다는 문제, 너무 설명투라는 문제, 타자화가 된 등장인물 등등 여전히 여러 소설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래서 저 소설은 동기들의 피드백을 받고, 두 번 크게 갈아엎었다.

 

아쉬운 마음과는 별개로 그건 정말로 필요한 과정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등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소설의 결점을 스스로 알아채기는 힘들다. 한 소설을 위해 자료조사를 오래 했다고 해도, 소설적인 결점이 없을 수가 없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소설적인 결점을 모르고 세상에 내놓았으면 아쉬웠을 것이다. 프로 작가들도 편집자의 의견을 받는다는 걸 생각했을 때, 타인의 피드백 필요성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완전한 완성은 없는 것 같다. 계속해서 쓴다면.


 

이 글을 슬슬 마무리하기 전에 재밌는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나는 소설을 포함해서 어떤 글이든 기-승-전-결을 대략이라도 정해둔 콘티가 있어야 글을 쓰는 걸 시작한다. 즉, 이 「글짝사랑 연대기」는 업로드하기 전부터,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어떤 주제로,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 것인지 각 장마다 다 정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장이 그 콘티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6장이 내가 처음에 기획한 콘티에서 가장 벗어난 내용이다.

 

원래 6장은 ‘내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애정 하는 소설’에 대해 소개하려고 했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소설이 바로 이 글에서도 중간중간 나온 베트남 전쟁에 대한 소설이었다. 이 글에 대해 애정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게, 자료조사만 반년 이상을 하기도 했고 이 소설로 담당 교수님께 극찬을 받았다. 그래서 3월에 글짝사랑 연대기 콘티를 짤 때는 6장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부터 완성하는 과정, 이 소설이 나에게 갖는 의미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게 구상했다.

 

하지만 올해 소설 수업에서, 나는 처음 뵙게 된 교수님으로부터 이 소설에 대한 새로운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칭찬만 받았다 보니, 이 소설이 더 완성도 있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르던 때였다. 하지만 새로 만난 교수님 덕에 부족한 점을 추가로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 소설을 또 고칠 필요가 생겼다. 그러자 이 소설을 자랑하는 내용으로 채운 6장의 콘티를 따를 수 없었다.

 

 
하나의 소설을 쓰는데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그 과정은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그래서 그 목표점에 도달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산 하나를 넘은 것뿐이었다는 더 솔직한 고백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100p를 넘겨 완결한 소설도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올해의 공모전을 위해 연재를 하면서 다시 틈틈이 수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완전한 완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6장을 쓰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낙담하지 않고 계속 쓴다면 말이다. 내가 아꼈던 소설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을 때 부족한 점이 보인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족한 점이 보일 만큼 내가 작품을 보는 눈이 깊어졌고 더 나은 작가가 되어있다는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 장의 마지막 장인 6장을 빌어 다짐해 본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평생 작가가 되지 못해도, 다른 직업을 갖게 되어도. 그래도 계속 쓰고 있을 것이라고. 결국,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이 존재하려면, 결국 써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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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메모한 아이디어들.

이 아이디어들이 모이면 플롯이 된다.

 

*

 

제가 글을 짝사랑하는 과정을 다룬 글짝사랑 연대기에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장엔 저에게 글이 어떤 의미인지 결론을 내는 마지막 장, 에필로그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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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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