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바랜 기억으로의 인도자, 피노키오 - My Dear 피노키오展

글 입력 2020.07.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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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피노키오는 ‘무서움’이다.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속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때문이다. 피노키오의 친구 램프윅이 당나귀로 변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나 마부가 음모를 꾸미는 장면 등 다소 섬뜩하게 연출된 장면들에서 느낀 공포적인 인상은 성인이 된 지금에도 진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동시에 ‘환상’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시작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피노키오의 주제곡, ‘When you wish upon a star’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크게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멜로디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전혀 연관되지 않는 듯한 두 개의 감정을 함께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피노키오는 여전히 궁금하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원작자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이다. 그만큼 많은 이에게 읽히고, 새롭게 해석되어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고 있는 피노키오를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모습과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시각예술 작품을 아카이빙한 전시를 통해 수많은 이들이 피노키오를 기억하는 방식을 기록하고자 했다. 전시 제목이 마치 편지 같다. 「My dear : 피노키오 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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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에서 상영되는 짧은 영상 작업은 이탈리아 영상 전시 기획사 크로스미디어 그룹에서 제작한 전시 예고편이다. 마치 영화나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과 같은 느낌을 주어 환상과 동심의 나라로 초대된 듯 들뜬 기분을 준다. 화면 맞은편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마티올리의 일러스트들은 피노키오만을 유일하게 실루엣으로 처리한 화면을 통해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준다. 초입에서부터 피노키오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인상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전시는 어린 시절에 둔 채 오랫동안 잊어 온 한 존재를 순식간에 입체적인 만남의 장으로 이끈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서막: 피노키오의 모험’에서는 카를로 콜로디의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을 중점 삼아 전시에서 소개할 수많은 피노키오들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간과하고 있었지만, ‘피노키오의 모험’은 1885년에 신문 삽화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신문과 함께 전시된 삽화들 역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은 피노키오의 모험이 얼마나 오랜 시대의 물살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다음 섹션인 ‘My dear 피노키오 : 일러스트레이션 거장들의 오마주’에서는 피노키오를 자신의 예술세계에 투영하여 재해석한 작가들의 삽화들이 전시된다. 여기서는 앤서니 브라운 등 유명 동화작가들의 삽화는 물론 지울리오 안타모로, 로렌조 마조티가 제작한 영화와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모험을 각색한 연극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원작자 카를로 콜로디가 피노키오를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이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이야기를 수놓는 ‘콜라주 동화’로서 창조했다는 해석에 기초하여 마찬가지로 콜라주의 화려한 화면 구성을 차용한 빅토리아 포미나의 삽화는, 작가들이 단지 어릴 적 추억을 회고하고 재현하는 것을 넘어 피노키오 자체를 한 작가의 예술관과 세계관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케 한다.

 

빅토리아 포미나의 삽화를 한국의 작가들이 영상작업으로 또다시 각색한 작품은 이 전시 현장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2차적 해석과 재생산의 과정을 상징한다. 국적과 시대를 초월한 이들의 기억과 경험들이 피노키오라는 소재로써 한데 모여 또 다른 피노키오 이야기의 탄생을 이끌어내고 있다. 피노키오는 수없이 다시 읽히고 쓰인다. 작품들 사이사이로 읽을 수 있게 비치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삽화가 실제로 수록된 서적들은 그들의 작품을 ‘보는 경험’뿐 아니라 ‘읽는 경험’까지 폭넓게 선사하며 관객을 새로운 재해석의 주체로 바로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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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ctoria Fomina

 

 

세 번째 섹션이자 마지막 섹션인 ‘환상과 재미 속으로 : 피노키오와 시각예술’은 마찬가지로 여러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통해 각양각색으로 표현된 피노키오를 보여주는데, 이 공간에서는 조금 더 작가 개인의 독창적인 세계관이 존재감 있게 발현된다. 참여한 거의 모든 작가의 ‘작가 노트’를 작품 옆에 배치하여 피노키오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낸 방식을 글로써 함께 제시한 해당 전시의 특징은 이번 공간에서 더욱 흥미롭게 기능한다.

 

피노키오를 읽을 때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읽었다던 마르누엘라 아드레아니의 따뜻한 그림들은 인물을 향한 공감과 연민에서 나오는 온기를 보여주고, 루카 카이미는 바닷속 생물로 캐릭터들을 치환하여 피노키오의 엉뚱함과 호기심을 인간이 손에 쥘 수 없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민경아는 하회탈과 명화 속 인물의 코를 길게 늘인 조형물과 패러디를 통해 거짓말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피노키오의 긴 코는 거짓말이 아닌 오히려 진실의 상징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변신(메타모포시스)’이라는 피노키오의 특징에 주안점을 두고 이를 기반으로 조명에 따라 색이 변하는 추상회화를 선보인 이브 샤르네의 작품은 피노키오의 특징뿐 아니라 쓰고, 읽고,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곧 변신하는 피노키오 이야기의 특징 역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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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urizio Quarello

 

 

전시를 기획한 유제승 큐레이터가 피노키오가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이유로 꼽은 ‘판타지적 요소’는 다른 말로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슬프면 재채기가 나오며, 나쁜 행동을 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정직한 인과관계의 세상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고 그래서 섬뜩하다. 인간과 닮아있으나 그 정도가 모호한 형상을 볼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공포감,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경험한다. 피노키오에는 현실에 있을 법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여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마저 담아내지만, 그 이야기 속 동화적인 투명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구부러진 현실이 익숙한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직선적인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세상은 차마 꿈꿀 수조차 없이 아름다워서 동시에 기괴하다.

 

‘불쾌한 골짜기’ 현상의 해소 방법으로서 가장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현상이 느껴지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이다. 전시는 피노키오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적 존재와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또 그 세계에 피노키오를 초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그리고 관람자의 세계에도 문을 두드림으로써 피노키오와 관람자, 그리고 관람자의 현재와 어린 시절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대화할 수 없었던 낯설고 신기한 세상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들이 상호작용하며 부유하는 공간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은 이해되고 보듬어진다. 그 상호작용의 중심에 있는 피노키오는 매개자이자 각자의 어린 시절로의 인도자가 된다. 모두의 ‘My dear’를 떠올리게 하는 피노키오는 관람자의 ‘My dear’를 자처하기보다 관람자에게 먼저 다가가 ‘My dear’를 속삭이는 존재에 가깝다는 단상을, 전시를 관람하고 난 후 은은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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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ccession Antonio Saura / antoniosaura.org / A+V Agencia de Creadores Visuales 2020

 

 

세상에 애정과 우정을 갈구하는 피노키오의 모습에서 어른이 이해할 수 없는 유년기의 직선적인 감정을 느꼈다던 안토니오 사우라는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하며 어린 시절을 오마주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피노키오가 속삭이는 ‘My dear'는 동시에 관람자의 어린 시절에게 전달되는 부름이기도 하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빛바랜 기억은 누군가가 사랑으로 쓰다듬었을 때 애틋한 색깔이 된다. 하나의 동화에 모이는 모두의 기억이 팔레트처럼 펼쳐져 섞임 없이 다채로운 대화를 이루는 공간에, 여전히 누군가의 ’My dear’일 당신도 함께 초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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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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