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함께 읽으'시'죠] 1편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

이 세상에서 ‘시’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글 입력 2020.06.16 16: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 세상에서 ‘시’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마셜 매클루언은 오래전에 ”미디어는 메시지(message)이자 마사지(massage)“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시는 메시지이고 또 마사지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연마해온 말하기 기술을 동원하여 어떤 취지를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전달할 때의 시는 ‘언어를 통한 메시지’이고, 말들이 무슨 취지를 실어 나르기보다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배려하며 한 공동체의 퇴락한 말들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을 대의 시는 ‘언어에 대한 마사지’이다.”

 

“시가 그토록 대단한가. 그렇다면 시는. 있으면 좋은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면 시 역시 그렇다. 그러나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는다. 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59, 260

 


 

나 역시, 그러므로 솔직하게


 

시는 어렵다. 그리고 재미없다. 시를 옹호할 문장을 몇 단락 적어봤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솔직하게 적는다.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나도 솔직히 시집을 읽는 것보다 유튜브가 더 재밌다. 그렇지만 그게 시를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시를 읽고 쓰는 마음은 가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신형철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진부하고 거친 삶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그 다양한 언어들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시는 어렵다. 시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어렵고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 만큼, 우리는 시에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시는 정말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한 번 해보자.

 

우리가 자발적으로 시를 읽어본 경험이 얼마나 될까? 점수라는 제약을 걸고 공부라는 이름으로 시를 읽는 것과 그냥 시를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해석이 좀 안 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좀 어떤가. 어려운 부분은 넘어가면 된다. 시에서 꼭 무언가를 발견할 필요도 없다. 필요하다면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해석을 읽으면 된다. 이제 우리가 시로 시험을 봐야하는 것도 아니니, 시를 읽는걸 한글로 하는 놀이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한글을 이렇게도 적어볼 수 있구나. 새롭다. 신기하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일까? 잘 모르겠지만 이 문장은 마음에 들어.’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해석은 평론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편하게 읽자.

 

나도 시를 찾아 읽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에게도 여전히 시는 어렵고, 훌륭한 해석을 제시할 실력이 없다. 그래서 내 글이 설득력 있는 비평이나 해설이 못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저 시집을 한 권씩 소개하고, 여러분과 함께 천천히 시를 읽으려한다. 시를 읽으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간단한 감상이나 생각 정도를 나누고 싶다. 해석할 수 없으면 모르겠다고 말하며 솔직하게 읽을 것이다.

 

나도 여러 핑계로 최근에 시를 읽지 않았으니까 조금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으려 한다. 시를 조금 더 알고 싶어 노력하는 마음이든 재미로든, 시를 함께 읽는 이 시간이 우리의 거친 언어와 삶의 진부함을 해소해 줄 수 있길 바란다. 나 역시 함께 읽는 독자의 마음으로 기대한다. 오늘 고른 시집은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이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


 

 

작가의 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2016년 가을 

허수경

 

 

내가 사고 싶은 책을 고르는 기준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산 이유도 작가의 말 때문이다.

 

친구의 책장에서 이 책을 처음 집어들 즈음의 나는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과 영영 떠나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서성이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다음 역을 향하여 떠났다’는 작가의 말에 한편으론 반발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오늘도 같은 마음으로 시집을 연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


 

 

제목: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를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가장 앞에 놓인 시다. ‘가장 서러운 시절’을 기억하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그 시절을 기억하며 어떤 감정을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농담조차 아리고 비린 시간의 단면들을 바라보면 어떤 심정이 되는가.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를 따서 가져오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의 서러운 시절과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은 ‘끝끝내 서럽고 싶다’뒤에 붙는 걸까. ‘살고 싶다’앞에 붙는걸까. 나는 아직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은 마음도 ‘끝끝내 서럽고 싶’은 마음도 알지 못한다. 어느 쪽일까. 뭐, 조금 더 살다보면 알게 되겠지. 다음 시로 넘어가자.

 

 

 

밤과 새벽의 틈새


 

 

제목: 포도


너를 잊는 꿈을 꾼 날은 

새벽에 꼭 잠을 깬다 


어떤 틈이 밤과 새벽 사이에 있다 


오늘은 무엇일까 


저 열매들의 얼굴에 어린 빛이 

너무 짧다, 싶을 만큼 지독한 날이다 


잎의 손금을 부시도록 비추던 빛이 

공중에서 짐짓 길을 잃는 척할 때 


열매들이 올 거다 

네가 잊힌 빛을 몰고 먼 처음처럼 올 거다 


그래서 깬다 

너를 잊고 세계가 다 저물어버린 꿈여관,


여기는 포도가 익어가는 

밤과 새벽의 틈새

 

 

이 시집에는 과일이름으로 된 시들이 몇 편 있다. 포도, 레몬, 딸기, 수박, 자두 등등... 나는 2부에 실린 이 시들을 좋아한다. 밤과 새벽의 틈새에서 부유하며 잠 못 드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다.

 

그런 시간에는 지나온 나날과 순간의 기억을 곱씹는다. 이 시의 제목이 포도인 이유는 알알이 맺힌 포도알이 추억을 닮아서일까. ’너를 잊고 세계가 다 저물어버린‘ 날을 기억하며, 포도가 익어가는 밤과 새벽의 틈새를 떠올리며 책장을 넘긴다.



 

배고픈 우리를 사해주려무나


 

 

제목: 수육 한 점


이 한 점 속, 무엇이 떠나갔나

네 영혼 


새우젓에 찍어서 

허겁지겁 삼킨다


배고픈 우리를 사해주려무나

네 영혼이 남긴 수육 한 점이여

 

 

내 주변에는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중 몇은 고기를 ‘안‘ 먹는게 아니라 ‘못’ 먹는다. 채식을 지향하는 이유는 개인기호나 환경보호, 건강상의 문제 등 다양하겠지만  ‘안’ 먹는게 아니라 ‘못’ 먹는 경우라면 결이 조금 다르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그런 유형일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존재로써의 폭력성. 다른 존재(생명체)에게 상처주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잘 공정된 핏빛 덩어리에서 남의 살을 씹는다는 자각을 할 때가 있다. 수육 한 점을 먹으면서도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예민함을 가진 이들이 있다. 타인에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조금 더 예민해져도 좋을 것이다. 이 시에서 수육 한 점 속 떠나간 것이 ‘네 영혼‘이라고 말하는 단호한 서늘함과 ‘배고픈 우리를 사해주려무나’라고 말하는 저 의연함이 좋다.


 

 

얼마나 오래


 

 

제목: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시인도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시인을 시인으로 만드는 건 이런 순간들일 거다. 저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단어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와 그들의 시간만큼 다양한 의미가 한 단어에는 축약되어있다. 때로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만의 시각이나 삶을 엿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다고 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읽어야 할 것이다. 나와 다르게 말하는 모든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때로는 같게 말하는 모든 존재와 다르게 말하기 위해서. 우리, 함께 시를 읽자.

 

 


 

 

이 시집에 담긴 문장들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이 몇 편의 시가 허수경이라는 시인과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전부 설명하거나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를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마음 가는대로 시를 골랐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이 시집이 곁을 지켜줄 것이다.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인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095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