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제자리를 찾은 사랑일 뿐, '텔 잇 투 더 비즈' [영화]

그 사랑이야말로 모순으로 가득 찼다.
글 입력 2020.05.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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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를 향한 존중의 역설은 구분이다. 귀한 것이 아님에도 귀한 대접을 하는 것. 결국 보통의 무리에는 포함하지 않으리라는 묘한 확신을 근거로 존중은 이루어진다. 천대가 이성을 포기한 차별이라면, 존중은 교묘히 포장된 차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평등과 차별은 모두 쉽게 학습된다. 진실을 바라보는 두 눈만 있으면 평등은 바로 앞에 자리한다. 하지만 곳곳에 위치한 차별의 넝쿨은 두 눈을 너무나도 쉽게 휘감는다.


연륜도, 재산도, 그 앞에선 무효하다. 어리더라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시선은 존재하기야 모두에게 존재한다. 친구의 무신경한 한 마디 말에 차별을 학습하고, 눈앞에 있는 가지런한 사실에 평등을 학습한다. 글에서 소개할 영화, <텔 잇 투 더 비즈>(Tell it to the bees, 2018) 속 찰리(그레고르 셀커크)의 경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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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아빠의 외도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엄마인 리디아(홀리데이 그레인저)와 아빠를 그리며 살아간다. 어렴풋이 사실을 아는 리디아는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가정을 부양하느라 소진된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겨우 부여잡고 버틴다. 매일이 축축한 슬픔의 공기로 가득하던 이 집안에 새로운 향기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진(안나 파킨)이 등장한 이후. 진은 동네에 새로 온 의사다. 아니,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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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양봉장을 마당에 둔 진과 그 안에 열심히 꿀을 나르는 벌을 좋아하는 찰리를 통해 두 가정의 관계는 문을 연다. 진은 첫 만남에서 막막한 현실을 토로하는 리디아의 손을 잡으려다 이내 마음을 거두고 눈 맞춤으로 대신한다. 진은 줄곧 이렇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리디아를 배려한다.

 

이 배려가 단순히 예의만을 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렸을 적,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진에게 큰 상처를 줬던 동네이다. 학생이 의사로 성장해 돌아올 동안에도, 분위기가 여전한 동네이다. 시간의 흐름 사이 지독히도 고여 있는 이 동네에서, 진의 배려는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 상대의 인식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마음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배려일 뿐이다. 어쩌면 평생을 상처 속에 떠돌아다녔을 진의 몸에 밴 질기고 끈끈한 생존방식 아닐까.

 

그래서인지 진은 항상 정갈한 표정을 짓는다. 진심인가 싶은 말을 하다가도 형식적인 느낌을 주는 얼굴을 한다. 그렇게 긴가민가한 분위기를 풍기던 진은 어느새 자라난 리디아를 향한 마음을 표정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 리디아의 아들, 찰리가 장난감 배를 호수에 빠트리자 진의 발걸음은 그를 차디찬 호수로 이끈다. 배를 건질 수 있을까, 물이 차진 않을까 생각하는 망설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걸음이 먼저 그를 움직인다.

 

진의 이런 행동은 여지를 남기고, 리디아 또한 그 여지에 응답하며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진을 만나 리디아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맺는 안전한 관계에 안착한다. 비로소 가정부도, 노리개도 아닌 인간 리디아 그 자체로 존재하며, 커지는 사랑만큼 성장해간다. 작고 차가운 마을이지만 진의 집만큼은 온실같이 따스한 것이, 마치 다른 세상 같다.

 

진과 리디아, 찰리가 사는 저택만이 영화 속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공간은 아니다. 병원은 의사가 진으로 바뀜에 따라 분위기도 바뀌었다. 생전 진의 아버지가 진료를 보던 병원은 여성들이 마음 놓고 드나들기에는 불편한 공간이었다. 참는 것이 미덕이었다. 의사가 진으로 바뀌고 나서야 여성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런 작은 변화로 동네 여성들에겐 참는 것을 그만둘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의 갈래가 생긴 것이다. 결국 진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동네 가장 따뜻한 공간들의 중심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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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내 찰리가 진과 리디아의 관계를 알아채며 이 공간들도 빛을 잃는다. 찰리의 시선 끝엔 그동안 진이 꿀벌들에게 수없이 토로했을 비밀이 자리했다. 찰리는 친구에게 주워들은 못된 말을 터트리고 만다. 앞뒤를 따지지 않고 나쁜 것이라고 판단해버렸지만, 집을 떠나 있는 잠깐 동안 찰리는 깨닫는다. 리디아를 괴롭게 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닌 엄마의 정신과 육체를 해치는 아빠였음을. 누군가는 영영 알지 못할, 학습된 사랑의 결과였음을.

 

찰리를 잃을 뻔한 위기도 꿋꿋이 견뎌낸 두 사람이건만, 영화가 끝날 무렵 둘은 기한 없는 작별을 주고받는다. 원작과 다른, 마음 아리는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레즈비언 영화인데, 그중에서도 행복한 결말을 맺는 영화는 한줌 정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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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별개로 둘의 작별 신은 강렬하다. 외유내강의 면모를 가진 진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다. 리디아와 진은 공개적인 곳에서 입맞춤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한다. 리디아와 찰리야 동네를 떠난다지만, 진은 내내 남아있을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얼어버려도, 둘만의 따뜻한 공기를 내뿜는다. 리디아가 탄 기차가 떠나고, 냉기 속 혼자 남은 진은 어느 때보다 힘찬 걸음으로 차가운 시선들 사이를 거슬러 간다. 뚝심 있는 진의 에너지는 우악한 힘도, 냉소적인 시선도 우습게 만든다.

 

리디아와 진은 영화 속 등장하는 관계들 중 가장 건강한 관계를 형성한다. 동등한 존재로 서로를 이해하고 꾸준히 마음을 쓴다. 각자의 고통은 공유되고 공감된다. 그럼에도 갖은 폭력의 가해자인 전 남편보다, 새로운 안식처인 진을 나무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의 정의는 모르겠으나, 이 둘이 나누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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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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