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문학]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손톱」,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글 입력 2020.05.1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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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해진 줄 알았던 코로나가 다시 커질 조짐이 보인다. 줄어들었던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끝날 줄 알았던 긴 싸움이 다시 시작될 느낌이 든다. 이제는 재택과 마스크가 정말로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진 것이지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놀고 싶다.


온종일 일하고 먹고 자는 작은 집이 나를 납작하게 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바쁘게 할 일들을 처리하고 무료하게 일상이 지나며 벌써 5월, 연휴마저 지났다. 엉망진창으로 느껴져도 너무 당연하게 내 삶은 돌아가고 있었다.


버티며 살아가는 두 단편 소설을 골랐다. 두 소설의 각 인물은 독자를 착잡하게 만들 정도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건조하게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 당장 내일도 나에게 배당된 일이 있기 때문에 슬픔마저 사치처럼,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피할 수 없으니까 그냥 감내하는 거고 감내하는 힘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건, 일상은 계속 흐른다. 모든 날은 결국 지나가고 다른 날은 반드시 온다. 권여선의 「손톱」 속 소희와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속 조지영 씨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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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

「손톱」이 수록되어 있다.

 

 

 

권여선, 「손톱」



끝없이 자신이 써야 하는 돈을 계산하는 소희가 가장 편안하게 쉬면서 사치를 부리는 시간은 아침에 통근버스를 타는 시간이다. 출근하기 전, 돈을 내기는 하지만 느긋하게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을 구경할 수 있는 버스를 타는 시간이 소희는 좋았다.


무엇이 소희의 삶을 그렇게 팍팍하게 만들었을까. 소희는 치열하게 산다. 겨우 21살이지만 갚아야 하는 빚이 어마어마하다. 엄마에게서 본희로, 본희에서 소희에게로 내려온 빚 때문에 말이다. 10만원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출근 시간이 40분이나 더 걸리는 곳으로 직장을 옮긴다. 그리고 계산한다. 10만 원 더 받는 것과 출근 시간이 40분이 더 걸리는 것. 무엇이 더 이익인가를 계산한다. 매운 짬뽕을 먹고 싶지만 청양고추를 추가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해서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온다. 매장에서 신어야 하는 신발을 바로 팔아버리고 손톱치료도 받지 못한다.


소희를 뿜어낼 구멍이 절실해서, 손톱이 깨졌다. 소희에게 관심도 없었으며 오히려 빚을 주고 갑자기 떠난 엄마. 엄마와 상의하고 치료하겠다는 말과 함께 기괴하게 뒤집힌 손톱. 잘못한 것 하나 없이 빚을 갚느라 손톱 치료를 하지 못하는 소희. 엄마나 본희처럼 빚을 주고 도망갈 상대도 없어서 오로지 소희가 떠안고 살아간다.


그래도 소희는 버틴다. 한푼 두푼 아껴서 묵묵히 빚을 갚아나간다. 쉬는 날에는 혼자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휴대전화 매장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텔레비전도 보고 잡지도 본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알뜰한 휴식을 보낸다. 소희에겐 언젠가 언니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


소희는 손톱치료처럼,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서럽고 포기하고 싶고 언니를, 엄마를 원망할 것이다. 그래도 소희는 그냥 산다. 살아야 하니까 산다. 또는 언니가 올 수도 있으니까, 이 불행을 피할 수 없으니까 산다.

 


“젊은 사람이 매가리가 없어.”



매가리는 힘을 말한다. 무엇이 젊은 사람을 매가리 없게 만들었을까. 소희처럼 피할 수 없고 대물림되는 부조리 속에서 얼마나 더 매가리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일까.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소희는 자신에게 (어쩌면 부당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부과된 짐을 짊어지는 힘이 있다. 매가리 있다. 소희는 매가리가 있다.


무나안하고 매가리 없고 손톱이 흉하게 깨진 소희. 소희가 듣고 싶은 말은 저런 말이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자꾸 말한다. 넌 무나안해. 여자 손톱이 그래서 어떡해. 소희는 오늘도 주말을 맞아 자신만의 휴식을 즐긴다. 환상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휴대전화 매장. 소희는 매장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매장에서 나가면 다시 소희의 팍팍한 삶이 시작되니까. 치료받지 못해 언제 아물지 모르는 손톱처럼, 소희의 삶은 언제 어떻게 맺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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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속 소설의 화자 조지영 씨는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반갑지 않은 편에 속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날의 슬픈 기억이 남아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다음 날이 온다는 것은 다행이면서도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화자의 잔잔한 일기처럼 진행되는 소설에는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사라진다. 그저 일상적인 장면만이 나열될 뿐이다. 다양한 인물이 두서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설명해주지 않아서 여러 요소가 불확실하다.


화자는 최근에 강사로 일하고 있던 학원을 그만두고 서점으로 출근한다. 화자의 언니는 죽었고, 송이가 언니의 딸이자 화자의 조카다. 그리고 화자, 엄마, 송이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이렇다 할 줄거리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송이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다. 화자는 송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송이를 사랑한다.


이야기는 건조하다. 학원 원장에게 심한 욕을 듣고 화풀이를 당해도 화자는 담담하다. 원장이 사과하며 다시 부탁할 때도 화자는 거절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그저 알겠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다른 인물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세상에 무감각하게 그저 견디고 있는 화자가 불안해 보인다.


이야기는 송이의 파자마 파티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파티를 위해 의욕적으로 떡볶이를 만들고, 그 결과도 대성공이었다. 화자, 조지영 씨는 다음 날 출근 해 준호 씨에게 농담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배려를 받기도 하며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내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을 비슷하게 살고 싶었지만, 이제 화자는 그런 마음에서 멀어진 듯 보인다. 어버이날 파티 후 한바탕 울고, 화자는 이제 매일 아침 서점으로 가는 길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짧은 이야기에서, 화자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전개에서 조지영 씨는 그새 성장한 것 같다. 세상에서 받는 상처를 그저 견디었던 조지영 씨. 송이를 위하던 마음에서 이제는 자기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 나아간 것 같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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