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되짚어 본 작가의 삶 [문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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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한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아틀리에가 정기개방을 하지 않아 아직까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지만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이 완화되어 다녀올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매일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어 익숙한 장소였지만 높은 계단을 올라 아틀리에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아틀리에에 방문하기 전, 사진을 검색해 보고 갔던 터라 크게 낯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보라색 대문을 마주하니 공간에 대한 낯섦과 기대감으로 설렘이 커졌다. 설명을 들으며 아틀리에 곳곳을 살펴보니 집에서 혼자 자료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이 풀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생각을 했다.
권진규 조각가 (1922-1973)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으로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권진규 선생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배웠다. 일본에서 권위 있는 이과회 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역량을 나타내 보였다.
사람의 얼굴이나 말, 닭 같은 동물상을 직접 만든 가마에서 흙으로 구워 제작하였는데, 작품 표면에 유약을 칠하지 않아 붉은 흙색을 띠어 독특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연구에 심취해 삼국시대 토우에 뿌리를 둔 테라코타와 건칠 기법을 새롭게 발굴하여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의 세계를 정립하였다. 대표작으로 <지원의 얼굴>, <손>, <마두> 등이 있다. (*출처: 권진규 기념 사업회)
권진규 아틀리에 (등록문화재 제134호)
권진규 선생이 작업하던 공간인 권진규 아틀리에는 선생이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1973년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크게 살림채와 작업실(아틀리에), 권진규 선생이 쓰던 방으로 구분된다. 살림채는 보수공사를 하여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현재 모습도 나무들과 잘 어울리며 한국적 미가 드러나는 공간이라 좋았다.
작업실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벽에 서까래와 시멘트 기와 지붕을 얹은 단순한 구조로, 큰 작품을 제작할 것을 염두에 두고 천장을 높게 지었다고 한다.
작업실에는 선생이 쓰셨던 우물, 이젤, 테이블, 심지어는 벽의 낙서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놀라웠다. 작업실과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 대부분은 선생의 손길이 닿았다고 한다. 작업실 내부에는 작품을 보관 할 수 있는 선반을 올린 마루를 달아매었고 계단 아래에는 지하를 파서 흙을 보관하였다. 이는 현재도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또한 큰 조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실 내부를 높게 만든 것도 신기했다. 관람하러 오신 분 중에 만약 큰 작품을 만드셨다면 작품 이동은 어떻게 했을까. 에 관해서 의문을 품는 분이 계셨는데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작업실로 통하는 문들은 사람만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물이었다. 선생은 조각 작업 시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작업실 내부에 직접 우물을 팠다. 우물 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현재도 물이 있어 신기했다.
작업실 복도 또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선생이 작업을 하던 당시에는 작품 보관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권진규 선생이 지내던 방은 출입문부터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고 방 자체도 정말 작았다. 방 안은 공간의 크기 때문인지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방에는 선생이 사용했던 도구들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던 작품은 오기노 도모의 <빛>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오기노 도모와 권진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코로나19로 문화 생활을 거의 즐기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향유하게 되어 더 값진 시간이었다. 삼삼오오 정기개방을 찾아온 관람객을 보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첫 방문이었기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곳곳을 살펴보느라 바빴지만 한 달에 한 번만 개방하는 곳을 직접 신청해서 오신 분들의 열정보다는 못 미치는 듯 했다. 어서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더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보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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