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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영화 '결혼 이야기', 어른들의 이별 [영화]

by 한은현 에디터
2020.04.23 09:31



“결혼이요? 뭐 살면서 한번쯤 해보죠. 살다 안 맞으면 이혼하고요.”

 

누군가 결혼에 대해서 물으면 내 대답은 항상 이랬다. 이 말은 즉, 결혼하다가 잘 안 맞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혼이 뭐 별거인가, 요즘엔 이혼 경험을 자처하고 돌싱모임을 나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봤다. 이혼에 대해 대수롭지 않고 쿨하게 반응하기, 이것이 요즘 트렌드 아닌가?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매년 약 10만 건이다. 한 해에 약 25만 건의 혼인건수를 감안한다면, 이혼율이 상당이 높다.


게다가 그 유명한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도 이혼했다. 그래서인지 이혼이란 마치 대학생들의 이별과 같이 무척이나 흔하고 가깝게 느껴지며 인생의 오명을 남기는 엄청난 사건도 아닌 것 같다. 연애의 이별과 이혼의 차이는 이 하나뿐: 법정 대응을 해야하냐 아니냐다. 아, 하나 더. 이혼은 '카톡 이별통보'할 수 없다. 아무리 꼴도 보기 싫어도 서류절차 때문에서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해야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어찌 보면, 내가 이혼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서 이렇게 쉽게 이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이혼은 단순히 두 명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에 대해 아주 사적인 부분까지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과의 이별인 것이다. 서로 이빨 닦을 때 칫솔의 방향, 아침에 눈 떴을 때 눈곱 유무, 발톱을 깎고 나서 뒤처리 방식 등, 피가 섞인 부모형제조차 모르는 모습까지 알게 된다. 아주 사적인 사이가 서류를 오고가는 공적인 사이로 관계의 결이 바뀐다.

 

아이가 있을 경우 양육권 문제까지 겹칠 수 있다. 아이를 가져본 적 없으니 양육권으로 다투는 그 부모의 마음을 난 잘 모른다. 그런데 넷플릭스 영화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를 보면서 이게 이혼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임을 느꼈다. 그리고 영화 끝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신 이혼에 대해 쉽게 얘기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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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이혼절차를 밟는 과정이 영화 전체 내용이다. 이혼 상담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둘의 배경은 이러하다. 니콜은 할리우드 삼류 배우출신이며 찰리는 연극 연출가다. 둘은 우연히 만나 사랑하여 결혼한다. 니콜은 꿈의 할리우드를 뒤로한 채 찰리를 따라 뉴욕에서 거주하며 의존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 곳에서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를 키우며 행복한 생활을 보낸다. 찰리는 남편으로서 조금은 둔하지만 마음씨 따뜻하고 연출가로서 성공의 가도를 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사이가 소원해진다. 니콜은 찰리와 잠자리를 거절하기 시작한다. 찰리는 한번 다른 여자랑 밤을 보낸다. 이를 알게 된 니콜은 분개하며 이혼소송을 낸다.

 

니콜은 헨리를 데리고 원래 집이 있는LA로 돌아간다. 그리고 변호사를 고용한다. 찰리는 한발 늦게 변호사를 고용하여 양육권을 최대한 보장받으려고 애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LA에 임시 거주지를 두게 된다. 찰리는 익숙치 않는 아버지 노릇을 한다. 헨리와 단둘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할로윈 데이에는 헨리는 할로윈을 두 번 보낼 수밖에 없는 ‘웃픈’상황이 연출된다. 한번은 엄마 니콜과, 한번은 아빠 찰리와. 헨리는 두 번 보내기 피곤하다고 하는데도 니콜과 찰리는 꼭 자기들과 할로윈을 지내야 된다고 고집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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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원 문제로 법정 소송까지 이어져 둘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간다. 그들이 고용한 변호사끼리의 싸움이 격해진다. 어떻게든 자기네들이 이기려는 노력, 그리고 상대방의 피고인을 인신공격까지 한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무자비하게 날을 세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은 니콜와 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혼을 직접 겪고 있는 니콜과 찰리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없다. 그들에게는 니콜과 찰리는 말하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둘만의 이야기를 모른다. 변호사들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실과 정황만으로 이기려고만 한다. 이혼은 누구한테는 직업이고, 누구에겐 인생인 것이다.

 

영화 첫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니콜과 찰리는 이혼 상담가가 요청한대로 각자의 장점, 즉 애초에 왜 서로 사랑에 빠졌는지 기술하라고 한다. 이것은 둘만이 아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찰리는 이렇게 적는다:

“니콜은 성가신 상황에서도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다

까다로운 가족 문제에서도 언제나 정답을 안다

이발도 직접 한다

니콜은 선물도 잘 고른다.

아들과 잘 놀아준다. 힘든 티도 안낸다.

니콜은 용기가 있다. 춤도 잘 춘다.“

 

니콜은 이렇게 적는다:

“굴하지 않는 성격이다.

깔끔해서 정리정돈을 그에게 맡긴다.

에너지를 잘 절약한다.

영화를 보면서 잘 운다.

혼자서 집안일과 요리도 잘한다.

나의 감정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져주거나 폭발했다고 자괴감을 주지 않는다.

찰리는 옷을 잘 입는다.

내 이빨에 음식물 껴있어도 민망하지 않게 얘기를 잘한다.”

 


 

 

그들은 이렇게 사소하면서 일상적인 것들에 서로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둘은 과거를 돌이키기에 이미 늦었다. 니콜과 찰리는 서로 심한 비난과 욕설을 하면서 다투는 순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찰리가 내뱉는 순간, 그는 그만 주저앉는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엉엉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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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단순히 남녀와의 헤어짐이 아니라 가족의 파멸이자 소리 없는 비명이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안타까움, 아픈데도 불구하고 포커페이스로 법적 절차를 밟는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두 어른. 그들은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으로는 타들어가는 비명 지르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과연 “세상엔 남자/여자 많아! 술 먹고 털어내고 새로 만나면 되지~ 내가 더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라는 대학교 때나 할법한, 이별을 한 친구에게 술자리에서 할법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혼에 대해 쉽게 얘기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리 이혼율이 높아졌다고 한들, 그렇다고 상처의 깊이는 얕아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으로서 견뎌내야하는 이혼의 짐은 당사자 아니면 결코 그 무게를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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