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영혼을 기댈 수 있는 곳

#16 드 메닐 부부와 로스코 채플
글 입력 2020.03.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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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칠 때마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색면추상화가’라는 딱딱한 수식어는 제쳐두고, 그 특유의 색채 감각과 테크닉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크기가 다른 사각형을 여러 개 그려놓은 아주 단순한 구성이지만 따뜻하고 뭉근한 색감, 불규칙적으로 겹쳐진 붓질의 층, 그리고 특히나 묘하게 물들어 흐려진 경계선은 시선을 잡아끌고, 감성을 자극하여 때로는 눈물 짓게 하고, 눈앞의 캔버스에서 시선을 돌려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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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의 작품. 출처: Encyclopedia Britannica

 

 

어쩌면 로스코의 그림이야말로 예술에 대해 우리가 가장 근원적으로 기대하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상을 반영하여 후세에 귀감을 주는 작품, 시각적 표현 방식에 혁신을 일으켜 미술사의 주요한 변곡점이 되는 작품 등 예술의 가치는 다양하지만 결국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는 안식처와 같은 예술을 우리는 자연히 사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로스코의 보편적인 형태와 고요한 색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종교적 체험과도 맥락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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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 채플과 그 앞에 세워진 바넷 뉴만(Barnett Newman)의 오벨리스크.

 

 

이러한 로스코의 작품을 그 의미와 가장 잘 통하는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이다. 창이 없는 팔각형의 벽돌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면 검푸른빛, 보랏빛의 거대한 로스코의 작품이 벽면을 채우고 있고, 그 앞에는 사색과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채플(예배당)’이라는 이름처럼 이 공간은 단순히 작품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어떤 종교나 배경, 사상의 구분 없이 누구든 고독 혹은 모임을 즐기며 정신적 성숙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로스코 채플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의 내면과 대화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인권에 대한 담론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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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닐 캠퍼스 내의 메닐 파크(Menil Park).

 

 

그렇다면 이 공간은 과연 누가 만들고 기획한 것일까? 사실 로스코 채플은 휴스턴에 드넓게 조성된 ‘메닐 캠퍼스(Menil Campus)’의 한 부분이다. 총 3만 6천 평에 이른다는 이 거대한 캠퍼스 안에는 로스코 채플, 사이 톰블리 갤러리(Cy Twombly Gallery), 드로잉 인스티튜트(Menil Drawing Institute), 댄 플래빈(Dan Flavin) 설치 공간, 비잔틴 프레스코 채플(Byzantine Fresco Chapel), 그리고 메닐 가(家)의 주요 컬렉션이 전시된 메인 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이 캠퍼스는 도미니크 드 메닐(Dominique de Menil, 1908-1997)이 설립한 것이다.


 


 

 

도미니크 드 메닐은 텍사스 석유 재벌 콘래드 슐룸베르거의 딸로, 1930년 은행가였던 존 드 메닐(John de Menil, 1904-1973)과 파리에서 만나 1년 만에 결혼하여 ‘드 메닐’ 성을 가지게 됐다. 존도 가톨릭 신자였고 도미니크도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이들 부부는 신혼 시절 파리에서 마리-알랭 쿠튀리에(Marie-Alain Couturier, 1897-1954) 신부를 만나 평생에 영향을 미칠 가르침을 받게 된다.


쿠튀리에 신부는 모던 아트를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미술관을 가리켜 “정신없이 열중해야 할 곳”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부부는 쿠튀리에 신부의 말씀을 들으며 미술에 대한 열정과 안목을 키웠고, 2차 대전으로 미국으로 함께 돌아온 이후 1945년 남편 존이 출장길에 세잔의 작은 수채화 작품을 구입하면서부터 부부 컬렉터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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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존 드 메닐. 출처: Houston Chronicle

 


존과 도미니크에게 종교란 늘 중요한 삶의 테마였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컬렉팅의 방향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입체파, 초현실주의와 같은 유럽 모더니즘 작가들에서부터 시작해 전후 미국에서 유행한 미니멀리즘,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그리고 비잔틴, 지중해 문화와 아프리카, 태평양 미술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그들의 컬렉션에서 예술과 정신성(spirituality)이 교차하는 지점은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컬렉팅한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을 짓는 것보다도, 작품과 함께 영혼의 힘과 인권, 사회정의에 대해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채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먼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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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이 프로젝트에 있어 그들 부부가 마크 로스코를 주목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다. 우선 로스코는 전후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 표현주의 흐름의 작가 중 한 명이었음은 물론, 드 메닐 부부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른 추상 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의 작업을 해왔는데, 악동 같은 이미지에 짧고 강렬한 삶의 행보를 보여준 폴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늦게 주목받기는 했지만 로스코도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컬렉터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로스코는 자신이 거머쥔 부와 세속적 인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물질주의를 굉장히 혐오했다(그래서 대중문화, 소비문화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작품에 적극 차용한 팝 아티스트들을 경멸했다). 특히 포시즌 레스토랑 벽화 의뢰와 관련한 사건이 유명한 일화인데, 로스코는 고급 레스토랑의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뒤 3년 동안이나 작품을 제작해놓고서도 그 레스토랑의 가식적인 분위기와 고객들의 허세에 분노해 프로젝트를 뒤엎어버리기도 했다.


 


 

 

1964년 드 메닐 부부는 로스코에게 명상을 위한 공간에 설치할 회화작품을 의뢰했다. 오로지 그의 작품으로만 채워질, 정신적 성숙과 신념의 대화가 이루어질 공간이었다. 자신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 함께 걸리는 것에 극도로 예민해하고, 자신의 작품들이 모인 전시공간을 갖는 것이 꿈이었던 로스코에게도 이는 딱 걸맞은 의뢰였다.


그는 생의 마지막 6년간을 이 로스코 채플을 위한 작품 제작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게 알맞은 빛, 특히 자연광 아래에서 그 색채를 드러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천장이 뻥 뚫린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며 빛을 조절하기 위해 낙하산을 띄우기까지 했다. 드 메닐이 로스코 채플의 건축가로 의뢰한 필립 존슨과도 ‘빛’과 관련한 의견 충돌이 있어 중간에 건축가가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사명을 다해 열중했던 로스코 채플이 완공되던 1971년, 로스코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혼과 건강 문제 등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가 197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완성된 로스코 채플은 그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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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로스코 채플 헌정식에서, 도미니크 드 메닐. 출처: Houston Chronicle

 


안타깝게도 로스코는 휴스턴이 흐리고 칙칙한 뉴욕과 달리 쨍한 햇살로 가득한 도시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채플의 천장은 거대한 우산과 같은 가림막으로 가려졌다. 덕분에 텍사스의 장렬한 햇빛은 팔각형으로 막힌 천장의 틈 사이로 은은히 새어나오게 되었다. 극히 제한된 자연광이 그림 속 색조를 비추고, 구름이 지나가면 그림도 어둠에 잠겼다.


로스코가 완벽하게 만족할 만한 빛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으나, 이로 인해 이 채플은 바깥의 환경과 더욱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이며 더욱 고요하고 명상적인 공간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미니크 드 메닐은 로스코 채플이 열리던 날 헌사에서, ‘무엇도 꿰뚫을 수 없는 색채의 요새’를 만들어낸 로스코에게 찬사를 보냈다.


*로스코채플은 첨단 기술로 현재 더욱 본래에 가까운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수공사 중이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 작품과 컬렉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주저함을 느낄 때도 많다. 가끔씩 이런 것들은 우리네의 팍팍한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스코의 그림과 채플, 또 이를 만들어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자한 드 메닐의 신념에 대해 떠올리면 용기를 다시 얻는다.

 

드 메닐은 예술이란 ‘근원적(primary)’인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캔버스 너머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각각의 상황, 배경을 넘어 화합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즐거울 때에도 예술은 필요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술은 더욱 필요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안식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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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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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서울아트가이드 칼럼, 세계의 슈퍼컬렉터 (6)텍사스 석유재벌의 메닐 모녀, 휴스턴과 뉴욕에서 공공컬렉션의 전범(典範)을 만들다, 이영란

NY Culture Beat, 마크 로스코(Mark Rothko)에 대하여, Sukie Park, 2017-10-28

NPR, Meditation And Modern Art Meet In Rothko Chapel, 2011-3-1

rothkochapel.org

menil.org

The New York Times, Rothko Chapel to Be Seen in New Light, Hilarie M. Sheets, 2019-2-27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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