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마음은 불가능을 모른다

글 입력 2019.12.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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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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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단어가 떠올랐다. 놀리는 게 아니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참사랑에 참우정. 뭘 해도 참자를 빼놓고 싶지 않았다. 진심을 기대하는 게 어렵다. 조선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사이, 한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 말한다.


함께 하늘을 보고, 하늘에 묻고 답을 찾고, 같은 곳에 시선을 둔다. 당신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지금 당장 자신의 모든 걸 잃고 죽는다고 해도 아까울 게 없는 단호한 눈빛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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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되고 애틋한 사이가 세종과 장영실의 사이다. 영화는 역사에 남아있는 기록의 틈에서 시작한다. 장영실을 아끼던 세종이, 사람을 잘 버리지 않는 세종이 어째서 장영실에게는 안여 사건이라는 원인과 곤장 80대라는 결론이 들어간 문장 하나로 끝을 내었을까.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왜 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를 아끼니까. 아끼니까 거리를 두겠다는 모순적인 말이 왕에게는 제법 잘 어울린다.


왕은 사람이 아니라 자리니까. 왕의 마음은 진심일지라도 위험하다. 조금만 한 사람에게 넘치는 마음이 갔다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스멀스멀 적대감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마음이 맞으면 한 사람을 내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그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소인들의 충심, 충정을 헤아려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달고 산다.


왕관의 무게를 버티라고 하지만 실제로 왕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누가 옜소, 하고 시켜줄 일도 당장 없겠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삶이 얼마나 지칠지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예전에 역사를 배울 때 참 이상한 왕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오히려 업적을 남긴 왕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체 어떻게 버틴 거지? 세종에게 감탄해야 할 것은 그 업적보다도 정신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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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노비인 영실은 어떤가. 왕은 신분이 높아서, 노비는 신분이 낮아서 주변의 진심을 구하기 힘들다. 왕은 가진 것이 많아 고운 말로 이익을 얻으려 이용하려는 자들이 많다. 노비는 가진 것이 없어 고운 말도 듣지 못한다. 주변에 자기 먹고사는 것이 급급하거나 그보다 가진 것이 많아 그를 이용할 가치를 찾지 못해 함부로 대한다. 둘 다 진심같이 값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근데 변수가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 노비. 신분을 뛰어넘을 법한 재능은 영실에게 복이자 독이었다. 천출 주제에 종3품 대호군의 호칭을 얻었다며 그를 잘근잘근 씹고 다니고 꼴 사나워하는 사람이 여럿이었을 터. 그래도 복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가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점이다. 영실에겐 그런 사람을 만난 복 하나로 수많은 독이 상쇄된다.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를 지켜보자면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차림새나 신분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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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대호군. 이도와 영실. 두 마음의 교집합은 영화의 제목처럼 바로 하늘과 별에 있다. 왜 하필 하늘과 별일까. 내려다보며 고심하는 것이 일상이라 하늘과 별에 고개를 들어 올린 시간이 마음 편한 세종과,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 때문에 땅만 보다 아무 걱정 없이 하늘과 별을 보는 게 좋은 영실. 태초부터 너무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세종이 노비 출신인 장영실과 가까이 지낸 것은 파격적이다.


영화에서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세종 때문에 영실과 주변 이들이 머쓱해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한쪽은 날 때부터 남들이 우러러보았고, 한쪽은 남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업신여겼다. 그렇다 해도 마음은, 외로움은, 답답함은 충분히 같을 수 있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동등한 시절이 아니라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만 동등한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명나라는 세종과 영실에게 자유의 틈을 느끼게 해 준 그 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늘 명나라를 머리 위에 얹고 조아려야 했기에 하늘도, 별도, 시간도 명나라가 정해준 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세종이 꿈꾸고 영실이 발명한 것들은 그저 기술적으로 획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하늘과 별과 시간, 그걸 찾기 위한 우리의 힘과 기술, 노력. 있는 그대로 하늘을 볼 수 있어 수많은 백성들의 삶이 편해졌고, 명에 짓눌린 조선이란 나라의 갑갑함도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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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의적인 이유 외에 이도와 영실이라는 두 사람만 보자면 어떤 하늘, 어떤 별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잔뜩 꼈던 밤이었을 것이다. 별을 볼 수 없어 아쉬워하던 세종을 위해 영실이 창호지를 검게 칠하고 뒤에 등불을 두고 구멍을 뚫어 북두칠성을 본 그 밤 말이다. 그 장면이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느껴진 건 자주 듣던 별과 관련된 애정표현 때문이 아니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종조차 북극성은 명의 것이라 자신의 것이 아니라 했고, 영실은 천출 따위에겐 별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했다. 그런 서로에게 별을 만들어주었다. 저기 저 북극성은 세종이요, 그 바로 옆에 밝게 빛나는 별은 영실이 네 별이다 하는 것이 낯간지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좋지 않나. 저 별을 온전히 마음에 담아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하지만 내가 반했던 건 검게 칠한 창호지 때문이었다. 별도 따다 줄게, 저 별은 너의 별이라는 표현은 들어봤어도 밤을 만들고, 별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꼭 만들어주지 않았더라도 그 마음이 참 순수해서 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세종은 그때 깨닫지 않았을까. 영실이라는 순수한 사람과, 그가 전한 순수한 마음을 정말 놓칠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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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로 불러온 어둠과 등불이 만들어낸 빛, 안여 안에서 세종만 볼 수 있게 붓 끝이 만든 밤과 별이 낭만이라면, 감동은 연로한 이도와 영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한 가지씩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을 버리는 과정일 것이다. 이들이 서로를 지키는 법은 분명 다르다. 세종은 효과적인 전략을 활용한다. 꼭 진실이나, 진심이 아니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영실을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떼어두고, 명의 사신의 말대로 영실이 만든 혼천의며, 간의며, 천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망가뜨린다. 마음에 없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그를 이윽고 명으로 보내버리려는 데에는 강수를 두어 '흑화'하기도 한다. 선위를 하겠다며 조정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직접 안여를 손을 대고선 역모를 꿈꾸는 세력이 있다면서, 무서운 태종 이방원의 아들이라는 이미지를 검은 용포 하나로 이용한다. 여태까지 쌓아왔던 모든 선한 군주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신하들을 대전에 쥐 떼처럼 몰아넣었다.


상대의 약점과 공포, 자신의 강점이라는 변수를 고려한 방법이 잘 먹히는 듯도 싶지만 상대라고 그 방법을 모르겠는가. 연로한 영의정 역시 오래 사람과 세상, 왕과 조정을 겪었기에 역으로 세종을 몰아세운다. 영실을 버리지 않게 해 줄 테니 세종이 추구하는 문자를 버리게 하려는 심산이다. 적어도 영의정에겐 둘 중 무엇을 버리든 손해는 아니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사대부의 권력은 어떤 식으로든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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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은 틈을 찌르는 전략 대신 진심 어린 정공법을 쓴다. 그가 지킬 것은 오직 세종뿐이다. 그의 소원은 오래전부터 왕의 곁에 오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멀리 하는 것이 자신을 잊은 건 아닌지 마음이 타서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변하진 않는다.


왕이 기약 없이 그를 찾지 않아도, 함께 꿈을 담은 발명품이 부서지고 무너져도, 그는 슬퍼하지만 안타까워하지만 원망하진 않는다. 깊은 믿음과 애정이 있다. 세종이 모두가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드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그가 힘든 길을 갈까 염려스럽다. 자신이 명나라로 보내져서 영영 돌아올 수 없어도, 자신이 꼼짝없이 붙잡혀 죽을지도 몰라도, 왕이 난처해질까 봐, 문자라는 꿈을 놓칠까 봐 더 걱정이다.

 

고민할 것이 없다. 왕과 함께 많을 것을 이뤘으니 아쉬움이 없다. 지킬 것은 한 가지이고 달리 손에 쥔 것이 없다. 좀 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렇게나 자기 자신은 안중에 없고 상대방만 지키려고 하는 건 지나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아마 그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이 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생각, 한 사람의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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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담은 마음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좋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나? 저 둘은 가능할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쉽나. 누가 없는 밤과 별을 만들어주고,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나를 아끼고 지키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할까. 혹은 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다시 묻게 된다. 정말 불가능한가. 정말 불가능했으면 하는가.

 

불가능한 것을 보면 고개를 저으며 포기하거나 불가능을 붙잡으려 애를 쓰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마음은 불가능을 모른다. 마음 한 구석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내게 그런 사람이 있길 바라지 않던 적이 없었다. 진정한 친구니, 진정한 사랑이니 그런 건 기대하지 말라고 배웠다. 네 마음만 다칠 뿐이라고. 적당히 나쁘지 않은 사이로 만족하라고. 근데 재밌는 건 기대하지 않아도 다친다.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픈 건 매한가지니까.


그러니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누구보다 믿고 싶고, 누구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마음이 불가능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 둘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둘이 함께 같은 세상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세종과 영실 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별은 모든 것을 향해 빛나며, 그런 대단한 마음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스스로 짓밟고 남이 생채기를 낸 마음일지라도, 여전히 마음은 불가능을 모른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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