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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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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간 강아지로 뮤지컬을 만든다니! 뮤지컬 '라이카'를 보러 가는 길은 호기심을 안고 가면서도 예상되는 그림이 있었다. 인간이 나빠서 강아지에게 미안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건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라이카라는 이름부터 확인할 수 있으니까.


따로 이름이 있지만 간단하다는 이유로 품종 라이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힘든 환경에서 적응을 잘하기를 기대하며 길 위에 있던 녀석을 데려왔다. 라이카가 일을 오래 한 사람이었다면,  말없이 묵묵하게 고통을 견디는 게 능사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까?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책을 읽어주고, 쓰다듬어주는 캐롤라인과 함께 할 수 있기만을 바라던 강아지는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지구를 벗어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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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기도, 잔인하기도, 교훈적이기도 하다. 라이카는 우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1막에서는 그걸 명확하게 그리지는 않고 있다. 심장 박동이 2배, 3배 이상 뛰었고 뜨겁고 어지러워 쓰러졌다가, 사람과 비슷한 듯 다른 듯한 존재가 되어서 신나 하는 모습을 귀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왕자와 장미를 만난다. 가만있어 보자, 왕자와 장미? 거기다 바오밥? 우리는 입력된 것처럼 어린 왕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왕자가 예상 밖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이 우주의 낭만주의자였던 그는 자라서 인간을 경멸한다. 타노스는 인간을 절반은 남기려고 했는데, 왕자는 지구를 소행성으로 충돌하게 만들어서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한다. 자, 이제 누가 더 악당일까? 조커, 타노스, 그리고 왕자? 이해할 수 있다. 인간도 인간을 종종 혐오하니까. 그래도 왕자의 변신은 참신한 캐릭터 붕괴였다.

 

왕자와 장미는 순수한 라이카를 위해 진실을 묵혀둔다. 1막에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면, 그들이 의도한 바다. 라이카가 정신없이 여기에서 적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경험하게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라이카는 아픈 진실을 만나게 된다. 라이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보조연구원 캐롤라인을 닮은 로케보트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어차피 너는 돌아올 수 없었다고. 네가 타고 온 우주선은 돌아오는 기능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설사 네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며칠 안에 너는 독살당했을 거라고.


우리의 라이카. 자랑스러운 라이카는 사람에게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서 지구를 멸망시키겠다는 왕자의 계획에 동참하려는 듯했으나 역시나 고민에 빠진다. 모든 사람이 다 나쁜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죽어도 되는 걸까? 지구가 없어진다면 다른 강아지, 그리고 살아있는 생물은 또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렇게 깊은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라이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자에겐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왕자가 강아지 라이카보다도 못한 상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서사는 있다. 그는 그의 친구 비행기 조종사 생텍쥐페리를 보러 돌아갔으나, 아주 간발의 차이로 그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말았으니까. 때마침 전쟁 중이었고, 그의 팬이라는 사람이 그의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다시 돌아갈 때마다 그는 인간이 서로를 괴롭히는 모습만 목격했는지, 인간이란 존재는 무용하고, 이 우주에서도 위협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된 왕자는 장미보다도 비뚤어져 있다. 장미는 혼자 있는 동안 많은 결론을 얻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주는 사랑에 목매지 않기로 했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지켜보기도 하고, 남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굴면서도 신경 쓰고 챙겨주기도 한다. 왕자의 저 계획을 말리려고도 쓴소리도 해보고, 소중한 인간 친구를 잃은 그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켜도 봤다. 정말 그가 지구를 날려버리진 못할 거라는 짐작도 있었을 테고.


재밌는 리듬의 넘버가 많았고, 로케보트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내용은 랩과 비슷하게 진행되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인간의 양면성이나 선악을 보여주는 작품을 생각하니 '지킬 앤 하이드'도 떠올랐다. 지킬 안에 공존하며, 점점 그를 잠식해 가는 하이드는 익숙하고 타락한 사회 지도층을 조롱하고 처벌받는 것에는 통쾌함을 느끼지만, 어째서 지구를 없애겠다는 왕자는 익숙하지 않고, 우주에 먼저 진출하겠다고 동물을 이용한 인간이 벌을 받는 것은 마음이 찜찜한 걸까?

 

우리가 편하게 인정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전쟁과 우주 경쟁은 국가의 정책적인 결정이기도 했고 인간 역시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비행기 조종사와 여우와 친구였던 왕자가 전 지구와 전 인류, 전 생태계를 파괴하겠다는 변화가 생각보다 그렇게 공감이 되거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는 왕자라면 어른이 되었다고 저렇게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은 긴 여행을 가는데 짐이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의 절친한 친구 생텍쥐페리 아저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너무 왕자를 아름답게 그렸으니 그의 변신은 아무래도 성공적이지 않았다. 네가 찾는 아저씨는 저기 저 비행기 안에 있어. 네가 찾는 양이 저기 저 상자에 있는 것처럼. 아저씨는 잠시 아팠겠지만 어쩌면 자유로워져서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절친한 친구 장미가 너무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왕자가 이렇게 금쪽이처럼 보일 수가 없다. 왕자가 내적으로 고민을 같이 한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그러다 라이카의 간절한 부탁으로 인간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다시 라이카를 지구로 돌아가게까지 해준다. 역시나 의문을 품게 한다. 그는 이 우주의 변덕스러운 주인이라도 되는 건가? 정말 '인간' 같잖아!

 

여전히 인간은 우주를 탐험하고 연구한다. 이쯤 되면 인간의 도파민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 생기나 싶다. 모르는 땅과 바다를 넘어, 하늘을 날고, 우주로 떠나는 여정까지 멈추지 않았다. 라이카, 놀라지 마. 이제 우주로 사람을, 너의 친구 로케보트와 비슷한 로봇도 보낸 지 제법 오래됐다. 그게 다 네 덕이야. 며칠 전엔 9개월이나 있다가 지구로 돌아온 인간도 있는데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 하지만 여전히 네 심장 박동이 2배, 3배 올라가서 숨이 다할 때까지 혼자 있었던 게 제일 마음이 아플 뿐이야. 너랑 닮지 않은 우리 강아지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 같아. 많이 막막하고 무서웠을 거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아마 넌 독살되진 않았을 거야. 갖은 이유를 붙여서라도 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인간은 변덕스러우니까. 맞아, 너도 알겠지만 세상엔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이 공존해. 때로 그리고 우주엔 나쁜 개는 단 한 번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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