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08. 예쁘지 않아도 될 권리

글 입력 2019.11.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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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예쁘지 않아도 될 권리


 

영화 <밤쉘>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지금의 와이파이, 블루투스의 토대를 만든 천재 발명가이자 빼어난 미모로 대중들의 인기를 끈 배우, 헤디 라머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그녀의 삶은 박물관에 전시된 귀중품처럼 완벽해 보인다. 처음 줄거리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미모에 지적능력까지 겸비한 역사적 인물을 칭송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박물관 속 귀중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완벽함에 대한 동경이 아닌 완벽해야만 했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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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자가 예쁘면 고시 3관왕’이라고 말한다. 예쁘기만 하면 온갖 혜택이 뒤따라온다고, 미모는 곧 여자의 권력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헤디 라머에게 미모는 곧 족쇄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뛰어난 능력보다 외모에만 집중했고, 그녀가 가진 잠재력은 깡그리 무시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예쁜 여자의 틀에 가두었다. 머리에 든 게 없고, 내세울 건 미모뿐이라는 말은 언제나 그녀를 괴롭혔다.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외모로 인한 차별을 목격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쪽만 생각했지, 혜택받는 쪽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지나가다가 스타일이나 외모가 눈에 띄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의 인생은 편하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 웃는 사람은 아름다운 헤디 라머가 아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들이었다. 화장도, 하이힐도, 그 어떤 노출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미모를 맘대로 평가하는 남자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가 여태까지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모두 남성 중심사회가 주입한 세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쁜 건 권력이 아니었다. 예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권력이었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며 웃는 남성들의 모습은 이미 현실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봤었다. 그 대상이 나인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대외활동 임원진이었던 시절, 나는 종종 화장하지 않은 상태로 회의에 참석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라는 일정은 내게 참석하는 자체에 의의를 둘 만큼 힘겨웠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예뻐 보일 필요는 조금도 없기에 맨얼굴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겐 그게 아니었다. 남자들은여자들 중 유일하게 화장하지 않은 나를 향해 웃으며 농담했다. 사촌 동생 아니냐, 진짜를 데려와라 등의 말들이 웃음과 함께 쏟아졌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어차피 다 장난이라고, 친하니까 하는 농담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따라 웃기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떠올려 본 그 상황은 어딘가 이상했다. 내 얼굴을 보며 웃는 그들의 얼굴에도 화장기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옷차림 역시 대부분 후드티나 맨투맨으로, 나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놀림의 주체가 되고 나는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들과 나의 차이는 성별, 단지 그 하나뿐이었는데.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줄곧 착용하던 렌즈 대신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서비스직의 기본에 어긋난다고 지적받은 나와 매일 안경을 쓴 상태로 출근해왔던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차이도 오직 성별뿐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 보면 마치 여성은 처음부터 화장한 상태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민낯’이나 ‘쌩얼’과 같은 단어가 주어진다. 그러한 단어들은 화장한 상태가 기본형이고 화장하지 않은 상태가 특수하다고 여겨지게 한다. 나조차도 주위 여성들이 모두 화장한 상태일 때, 그러다 거울을 통해 화장하지 않은 나를 마주할 때 그런 착각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 착각은 항상 나를 외롭게 했고 의심하게 했다. 혼자 여성의 전형을 벗어난 아웃사이더가 된 것 같고 당장이라도 저들처럼 긴 머리에 치마를 입고 얼굴에 뭐라도 덧발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화장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더한 것이며 지금 이 얼굴이 자연스러운 내 본연의 모습이라며 나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게 예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친구들은 예쁘게 꾸미는 것을 갈망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꾸밀 수 있는 자유를 기쁘게 누렸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꾸미는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아이였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흔들리기 쉬운 상태였던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제 넌 성인이니까 예뻐야 한다, 눈이 크니 안경을 벗어라,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 눈썹을 다듬어봐라…. 나노 단위로 이루어지는 ‘조언’을 들을 때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심지어 그 조언은 초면에도 이루어지곤 했다.

 

조언을 던진 이들 중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조언도 더 예뻐질 수 있는 나를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때도 그 조언을 따르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았다. 굳이 일찍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고, 화장을 지우느라 애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하자 메이크업 영상을 찾아보며 배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억지로 찾아보았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그 유튜버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스포츠나 게임처럼 화장도 내가 관심 없는 분야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화장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부지런함이 여성의 기본적인 소양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렇게 할 수 없는 내가 게으르고 무신경하다고 생각했다. 남들 눈에 내 눈썹이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내가, 화장하는 것보다 몇 분 더 자기를 원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 같았다. 그런 나에게 작년 초부터 떠오른 탈코르셋 논의는 커다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상한 것도, 게으르고 무신경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꾸미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논의가 이루어지자 주변 사람들 몇몇도 서서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모든 여성이 진심으로 꾸미기를 즐긴 게 아니라는 것을, 예쁜 여성을 원하는 사회가 주입한 세뇌의 결과라는 것을.

 

물론 누군가는 사회적 시선과 무관하게 진심으로 화장을 즐길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내 주변에서도 여전히 ‘자기만족’으로 화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 ‘자기만족’으로 꾸미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꾸밀 자유가 있다면, 꾸미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짧은 머리를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앞머리를 기르고, 장발을 유지하라는 말 역시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올해 초 처음으로 그 말을 거역하고 아주 짧게 머리를 잘랐다. 후회할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해방감만이 느껴졌다. 가족들은 내게 남자 같다고 말했지만, 이제 나는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내가 변한 만큼, 나를 둘러싼 세상도 변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변한 세상 속에서 예쁘지 않아도 될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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