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청춘, 괜찮아 -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극]

글 입력 2019.10.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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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가 자라 "청춘"을 보내고 있다. 좋을 때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지만 어쩐지 슬펐다. 좋은 때이기에 반드시 좋아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빛날 수는 없는 거니까.

사람들이 "청춘"에게 바라는 것들. 사랑, 도전, 설렘. 모든 20대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왜인지 우리의 슬픔은 가벼워야 할 것 같고, 우리의 실패는 아름다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청춘 좋은 게 뭐냐, 라는 말이 숨이 막힌다. "빛나는 청춘", 정말?

아름답게 포장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누군가 우리에게 "어찌 됐든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세상을 만나고 삶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위로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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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그 어떤 자극적인 요소 없이 진심 하나만으로 그려낸 이야기라서 편안했다. "청춘은 빛나야 해.", "다 잘 될 거야." 같은 인위적인 말들은 없었다. 인물들은 자연스레 살아가고, 관객은 상황이 아닌 "진심"의 흐름을 따라가면 충분했다. 그래서 그냥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

청춘을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찬란하지만은 않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속 인물들은 주위를 둘러보면 찾을 수 있는 "너"와 "나"들이었다. 찬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청춘,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청춘, 그리고 마음껏 울지 못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청춘


청춘은 왠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청춘이니까 다 해 봐라, 라고 들 하지만, 찬란은 말했다. 그렇게 여유 있지 못하다고.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속,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참 쉬운 말인데 실행이 참 어렵다. 정작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차피 하고 싶은 걸 가져도 하지 못하니까, 결국 하고 싶은 걸 갖는 걸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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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많았다. 해야 하는 것들만 수두룩한 채,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여유도 없는 친구들. 그들에게 "하고 싶은 걸 해."라는 말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현실에 "하고 싶은 일"이란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 말조차 늘 미안해졌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된다. 단지 그 맥락이 다를 뿐, 청소년이든 20대든 30대든, 각자 나름의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 물론 어른의 현실이 아이의 현실보다 영향력이 큰 건 맞지만, 주관적으로 느끼는 현실의 벽은 각자에게 거대할 거라 생각한다. 청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인 이유, 혹은 사회적인 이유 등으로 꿈을 꾸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용기와 열정만 가지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기에는 그 벽이 너무 커서 움츠려야 하는 청춘들이 많다. 그들에게 "넌 청춘이니까 용기를 가져."라는 말은 어쩌면 희망 고문과도 같은 수 있다.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청춘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사는 일마저 쉽지 않은 청춘도 많다. 매일 알바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마련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찬란이에게 가득 차 있던 알바 스케줄이 정말 인생의 전부인 학생들을 많이 봤다.

나는 알바를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잠시 했을 때 최저임금을 받으며 각종 무시를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항의를 할 수 있는 경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알바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인 사람들도 많다. 갑작스레 닥친 현실과 책임감의 무게에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쉬는 것을 포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몰두한다. 그들에게 쉬는 시간은 알바가 끝난 후 침대에 누워 다음날의 알람을 맞추는 시간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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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이가 매일을 숨 막히게 살아야 했던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연극부에 들어와 사람들과의 여유 있는 시간을 낯설어하고, 단톡방을 처음 겪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슬펐다. 찬란이에게 소소함이 생소할 만큼 하루를 버티는 일만으로 버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이 과제를 하는 일은 의무이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안락했던 틀에서 벗어나 현실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많은 청춘은 좌절하고 자기 삶의 일부를 포기하게 된다. 성인이니까 당연하다기엔 20살이 되는 순간 노크도 없이 현실이 들이닥치는 경우도 많다.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쉬어도 된다는 말은 와닿지 못할 것이다. 찬란이가 연극부를 들어오고 엄마의 전화로 현실을 자각한 후 알바를 다시 신청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쉼과 여유는 생계가 유지된 후에야 닿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울지 못하는 청춘


하지만 그래도 견뎌야 한다. 이젠 스스로 모든 걸 해내야 하니까. 더는 어리지 않으니까. 아프다고 소리 내어 울기엔 우리는 너무 많이 컸기 때문이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지나가겠지 하며 자신을 다독인다.

대학교를 마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고, 그때는 더 큰 현실을 마주하게 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취업을 어떻게 하겠어." 그러니까 괜찮다며 힘들지 않은 척 꿋꿋하게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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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도래, 혁진, 유, 시온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들을 안고 살아간다.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힘들어."라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깊게 다가갔을 때,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됐을 때, 그제야 눈물을 보인다. 사실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더는 어리지 않으니까 혼자 감당하려 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이다.

주위에 친구들도 이런 말을 한다. "이제는 힘들다고 징징댈 때는 지난 것 같아.", "울 것 같으니까 그만 얘기할래." 우리가 많이 컸구나 싶으면서 큰 것과 우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많은 친구들이 전처럼 울지 않는 건 성장했기 때문일까, 꾹 참고 혼자 울고 있는 걸까?

"대학생이 뭐가 힘들다고 우니?"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그 말이 우리를 숨죽이게 만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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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많이 울던 시절, 나에게 다가와 줬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줬던 사람, 함께 울어줬던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사람.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성장하고,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보며, 찬란이가 도래를 만난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계속 생각했다.

찬란이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해서 그런지, 도래와의 만남 자체부터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찬란이의 마음을 열게 도와준 연극부에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찬란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 만남이 너무 예뻐서 연극을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던 연극이었다.

웹툰이 워낙 깊은 이야기를 많이 다뤄서 어쩔 수 없이 연극은 조금 더 가벼워지긴 했지만, 연극이 주는 떨림은 확실히 있었다. 목소리의 힘과 떨림이 관객을 흔들었다. 마지막 찬란이의 독백은 웹툰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단단했던 목소리를 들으며, 이젠 찬란이가 많이 자유로워졌구나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청춘,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청춘, 그리고 마음껏 울지 못하는 청춘들이 꼭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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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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