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며시 꺼내보는 나의 첫 유럽, 폴란드 [여행]

순수했던 그 날의 시간과 기록
글 입력 2019.05.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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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가볍고 통통 튀고 웃기고
신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가뜩이나 요즘은 일주일에 6일동안 일을 하면서 활자를 풍부하게 짜낼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다. 대학을 스리슬쩍 벗어나기 시작하는 애매한 신분의 사람들 (취준생, 수료생, 졸업 예정자)과 직장인들은 (특히나 문화 예술과 관련없는 분야의 업종이라면 더욱 더) 점점 여유와는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 같다. 한정된 시간 속 우선순위를 정하다보니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한 가지 톤으로 통일되고 있다.

깊고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고) 감정을 다루는 잔잔한 글들(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읽히면 좋겠다). 하지만 인간은 다면적인 동물이라, 그 중에서도 나는 끓어오르는 드립력을 갖춘 관종이라 무언가 다른 느낌의 글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일일일일일로 짜여진 요즘 나의 메마른 일상은 소재가 없는 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스리슬쩍 2년 전 교환학생 때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슬며시 꺼내보는 나의 첫 유럽,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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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유럽은 폴란드, 바르샤바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2017년 8월 27일은 유럽에 입성한 첫 날이다. 10시간 넘게 장거리 비행을 하고 두근거리며 입국 심사를 받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외국 경험이라곤 미국 전공연수와 일본 자유여행이 전부였던 나는 나름 대로 철저히 교환학생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준비해서 대기했는데, 앞줄의 관광 패키지 투어와 나를 같은 일행으로 본 것인지 여권을 내밀자 마자 도장을 쾅! 찍었다. 잔뜩 마음을 졸였던 게 허무하게도 한국 여권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막대했다.

심지어 나는 교환교가 있는 리투아니아로 가기 위해 폴란드를 경유하던 중이었고 하루를 빼 스탑오버를 하던 차였는데 도장 하나 툭 찍곤 정말 어떤 절차도 없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피식 웃을 법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가도 되는 것인지, 혹시 잘못되어서 공항에서 잡히는 게 아닌 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짧은 영어로 물어 물어 나가도 된다는 걸 확인하고 (참고로 폴란드 사람들은 영어 잘 못한다) 패기롭게 버스를 타고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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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동유럽 중에서도 물가가 싼 편이기에 한화로 3-4만원대면 중저가 호텔에 머무를 수 있는데 혼자 여행인 처음인 주제에, 아니 혼자 여행이 처음이어서 겁이 많았기에 호텔을 예약했다. 그 이후 5개월 간 유럽을 떠돌며 공항노숙부터 야간버스까지 많은 고생길을 경험할 터였지만, 당시의 나는 겁이 너무 많았기에 올드 타운과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호텔을 잡았다. 다행히 프론트에서 영어는 잘 통했고 친절하게 맞이해 준 직원 덕분에 무난히 체크인을 했다.

나름 혼자서 쓰기엔 아늑한 방을 배정 받았고 첫 번째로 한 일은 가족들에게 전화하기! 어린 마음에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타국에 와서 숙소도 찾고 체크인도 해낸 스스로가 대단해서였는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리 저리 자랑을 해댔다. 10시간이 넘게 비행을 했고, 기내식은 이러저러했고, 여기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라는 곳이고, 나는 내일 오후에 리투아니아로 간다 등등. 이십 여분 간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긴 비행으로 노곤한 몸이 푹신한 침대에 폭 감겨들어갔다. 그대로 몇 분간 졸음에 겨워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툭, 눈물이 흘렀다.

왜 그랬는진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마 무서웠던 것 같다. 이전에 한국에서도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긴 했지만, 완전히 타지에서 혼자 헤쳐나갈 반 년의 시간이 문득 두려웠다. 마치 대학교 1학년 3월 처음 기숙사에 발을 들였을 때처럼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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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누워있다가 배에서 소리가 났다.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고민을 하다가 호텔을 나섰다. 그리곤 아까 그 눈물은 거짓이었던 냥 바로 설레기 시작했다. 이건 뭐 변덕의 끝판왕이다. 곧 가을이 다가올 여름의 끝자락, 처음 접한 유럽은 그냥 모든 것들이 다 새로웠다. 그냥 흔히 있는 공원조차도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앞에 서서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다.

지도 앱에 올드 타운을 찍었지만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성당의 저녁 미사에도 참가하고 성가대의 노랫 소리에 홀린 듯 빠져 앉아 있다가 마트에서 빵을 사 노을이 지는 공원에 앉았다. 야금 야금 사람들을 관찰하며 저녁을 먹고 올드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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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폴란드 특히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은 정말 작은 편에 속한다. 바르샤바는 구시가지보다는 신시가지가 더 발달했고 바르샤바보다는 제2의 도시인 크라쿠프를 여행지로 많이들 추천하곤 하는데 (실제로 크라쿠프의 구시가지가 더 크고 볼 것도 많다)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의 나는 그저 유럽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이 아름다웠다.

작은 인어 광장에서 날아다니는 비눗방울도, 거리에서 사먹는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반짝이는 해와 그 빛에 부서지는 나뭇잎의 잔상도 전부 꿈만 같았다. 그렇게 올드 타운에서 한 두시간을 보내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면서 눈에 띄는 예쁜 카페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기와 다이어리를 쓰며 조용히 유럽의 첫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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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지금 보면 이게 뭐라고 그렇게 사진을 찍어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나름대로 첫 숙소라고 인증샷을 찍은 것 같다. 해질녘의 저녁 하늘빛이 아름다웠고 유럽의 'ㅇ만 알던' 나는 그 작은 것에도 그리 깊게 감동을 받았더랬다. 생각해보면 참 가성비가 맞지 않는 여행이었다. 스탑오버를 하기에 내 비행기는 오후 1시에 바르샤바에 도착했고 다음 날 10시에 리투아니아로 출발했다.

해가 일찍 지는 하반기의 유럽, 심지어 그것도 동유럽에서 1시에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나가면 거의 3-4시가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아침 10시 비행기라면 공항에 적어도 2시간 전에는 가야하니 아침 7시 쯤엔 나가야하는데 그러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끽해야 밤의 4-5시간 뿐이다. 거기다 그 정도 시간을 위해 호텔을 잡았다. 유럽 여행을 한 차례 다녀온 지금의 기준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가성비 빵점의 여행일정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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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그 하룻동안의 짧은 여정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마 뭘 잘 몰랐기 때문일테지만, 다르게 보면 그 당시엔 그렇게 순수했기 때문일테다. 심지어 그 날 저녁엔 약하게 빗방울이 흩날렸는데 그 비까지도 유럽의 비라서 분위기 있다고 방방 뛰던 걸 생각하면 순수함이 도를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헛웃음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계산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던 순간들. 교환 학생 시절은 내 대학 시절에서 그 어떤 시간보다도 그러했지만 그 시간들 중에서도 가장 정직하고 맑았던 순간은 이 날 하루가 아닐까 한다. 그리움을 더하며 다시 그리 순수하게 낯섦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한다. 다음 번 여행은 어디로 가야할까?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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