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픈 아이들이 만들어 낸 즐거운 판타지 [도서]

임정자의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를 읽고
글 입력 2019.04.2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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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이 책은 저학년을 대상으로 쓴 동화라 대체로 쉽게 읽힌다. 글씨도 큼지막하고 쉬운 단어들과 대화체를 자주 사용했다. 작품을 읽을 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특히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에서 도깨비들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글씨체를 사용해 생동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마치 내가 작품 속 도깨비 친구들 쿵쿵이, 겅중이, 총총이 곁에서 노는 듯 즐거웠다.

 

 


판타지 요소가 가득담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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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자의 단편 동화집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는 판타지 요소가 가득해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이빨귀신을 이긴 연이」에서 가장 판타지적 요소가 돋보였는데, 연이는 비오는 길가의 물울덩이를 보고 그 속에 빠져 물도깨비 뿌뿌를 만난다. 뿌뿌의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여 난관을 거쳐나간다.


이 작품은 단순히 물웅덩이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작가는 물웅덩이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한바탕 상상력으로 세상에서 뛰놀 수 있는 동화를 쓰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다양한 글씨체를 사용하는 신선한 편집과 작가의 즐거운 내용이 합쳐지니 책의 장점이 더 살아났다.



 

어른과 아이들의 의사소통의 부재


 

냄비뚜껑에 착 달라붙어있는 낙지를 보았을 때 남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엄마에게 맞기 싫어 애쓰던 자기 모습을 보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 회초리를 맞는 와중에도 낙지가 매달려 있는 뚜껑을 놓지 못했던 것이리라.


엄마는 남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다. 대신 문어가 빨판달린 신발을 선물해 남수의 구멍 난 마음을 조금이나마 메꾸어준다. 남수는 그 신발을 신고 유리창도 닦아주고, 나뭇가지에 걸린 연도 내려준다. 그리고 맞기 싫어 고민한다.

 

왜 어른들의 화풀이 대상은 항상 ‘나’(주인공)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평생 그 기억들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이처럼 나 또한 아동문학을 따라가게 된 건 위로와 갈망, 그리고 치유의 나눔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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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가 보낸 선물」,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 이 두 작품에서 주인공과 어른의 의사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아이들은 엄마와 소통하기를 포기한다. 남수는 강압적인 엄마의 회초리에 대화 대신 회피를 선택한다. 바로 빨판이 달린 신발을 신고 벽을 올라타는 것이다.

 

다행히도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의 주인공은 우연히 엄마와의 소통방법을 찾게 된다. 우주선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엄마와 다르게 아이는 적극적으로 소통의 방법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기억의 상자를 되찾아준다. 어떤 결말이 좋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남수의 슬픈 행동에 여운이 남았고, 주인공과 엄마의 소통의 성공에 행복했다.

 


 

고통 속에서 피어오르는 상상력의 힘


    


어쨌든 남수는 빨판 신발 덕에 예전보다 훨씬 신나게 살았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유리창도 빨판 신발 신고 올라가 닦아 주고, 나뭇가지에 걸린 연도 내려 주고, 가끔 박쥐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엄마가 늘 때리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없나 궁리도 하며 말입니다.



- 「낙지가 보낸 선물」 본문 中



나는 행복한 감정보다는 색이 거뭇거뭇한 감정에서 더 다양한 상상들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고통 속에서 피어오르는 상상력들이 대부분 독자에게 전해지는 효과가 상당하다. 이 책이 그렇다. 엄마에게 맞는 남수, 엄마와의 불통에 힘들어하는 아이, 자유롭게 놀 곳이 없어 고민하는 수민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을 헌신하여 행복을 느끼는 곰인형 등. 모두들 아픈 손가락 같다.


작가는 아마도 그런 아이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즐거운 이야기의 이면에 나타나는 이 슬픈 존재들은 시멘트를 뚫고 자란 들꽃처럼,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딱딱해진 아이들의 마음속에 비집고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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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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