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일 미술관 여행 (1) [시각예술]

첫 번째, 튀빙겐 쿤스트할레
글 입력 2019.03.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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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술관 탐방기 (1)

- 튀빙겐 쿤스트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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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의 독일 교환학생 생활 중, 참 많은 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처럼 유명한 미술관들도 있었고, 지나가다 보인 건물이 마침 미술관이어서, 호기심에 들어가 보기도 했었다.


신기했던 점은 유럽의 어떤 도시를 가도 미술관이 하나쯤은 있었다는 것이고, 각각의 공간 모두 다른 분위기, 다른 스타일, 다른 철학을 가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을 방문할 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공간이 보여주는 그 도시, 혹은 그 나라의 스타일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교환학생을 하며 여러 국가의 다양한 마을들을 여행했지만, 아무래도 독일에서 공부하다 보니 독일의 도시들을 조금 더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작은 마을부터 북적북적한 대도시까지, 미술관은 지역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독일 미술관 여행’으로 시작하는 이 시리즈에서는 독일을 여행하며 방문했던 미술관과 흥미롭게 보았던 전시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그 중 이번에 첫 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내가 6개월동안 살던 곳 튀빙겐의 미술관이다.




Tübingen Kunsthalle



튀빙겐은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서 처음 알게 된 독일의 아기자기한 소도시이다. 그 흔한 스타벅스도, 맥도날드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지만 작은 북카페, 헌책방, 실을 파는 가게, 차를 파는 가게가 있는 활기 있는 도시였다. 쉬는 날 사람들이 넥카 강에서 배를 타고 언덕에서 산책을 하는 이 평화로운 곳에도 미술관이 있었다.


일상을 보내느라, 여행을 다니느라 미루고 미루다 서울에 돌아가기 1주일 전에야 가게 된 이 미술관은 왜 그제서야 갔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미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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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왔던 다음 날, 기숙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었던 튀빙겐 미술관은 무슨 온실처럼 생겨서 처음엔 미술관인지 몰라 못 들어갈 뻔했다. 생각보다 정말 현대적으로 건축된 튀빙겐 미술관은 모든 스태프분들까지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고 계실 정도로 세련되었다. 아기자기하고 전통적인 튀빙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술관에서는 현대미술에 집중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Birgit Jürgenssen의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점은 미술관 내부의 공간이었다. 미술관 내부는 위로 조금씩 올라가는 계단식 구조의 전시장으로,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전시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각 층에는 전시의 세부 주제에 따라 조그마한 방들이 있어서, 각 주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조금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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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상하게 된 전시는 Birgit Jürgenssen의 ‘Ich bin(I am)’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생의 페미니스트 예술가이며, 성별의 관계, 인간과 동식물, 사물과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자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성별을 뛰어넘어 인간과 동식물의 경계까지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았다. 인간이 동식물과 섞여 묘사되는 작품들을 통해, 특히 여성의 몸이 어떠한 동물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는지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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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회화, 드로잉, 설치 작품, 사진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각 분야가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바를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는 점 또한 좋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오펠리아’라는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을 버린 햄릿에 충격을 받아 익사하기 직전의 오펠리아,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꽃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이다. 작가는 이 이미지에서, 아름다움과 성적인 긴장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장면에 여성이 항상 도구로서 이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욕조에 담긴 여성의 하체와 주위에 뿌려진 꽃들을 통해, 익숙하지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클리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익숙해진 이미지는 낯설게 바라보기 어려운 법인데, 작가는 이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았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한번 더 눈여겨보게 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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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수업만 있던 날,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미술관에서 생각지 못한 느낌들을 받으며 왜 진작 다녀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만 튀빙겐을 떠나기 직전 방문한 이곳 덕분에 튀빙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안고 돌아갈 수 있었다. 새파랗던 하늘, 눈을 밟으며 걸어갔던 미술관 가는 길, 서툰 독일어에도 친절히 대답해 주시던 직원 분들, 생각보다 더 예술적이었던 공간과 전시, 그리고 작은 계단 하나하나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아무도 배제하지 않았던 배리어프리(barrier-free)한 미술관 구조까지.


하루 만에 보고 느낀 모습들은, 6개월 동안의 튀빙겐 생활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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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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