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증의 끝은 없다

도서 <갈증> 리뷰
글 입력 2019.01.02 18: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도서 <갈증> 리뷰


갈증_팩샷_v003_도서출판잔.jpg
 

검은 어둠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읽어서 유독 그렇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강한 피로를 느꼈다.


나름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었고 잔인한 내용, 음침한 묘사도 꽤나 잘 읽을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번 도서는 표지를 열 때부터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매우 힘들었다. 종이 위의 글자들은 공연이나 영상처럼 순식간에 지나버리는 형태의 것이 아니라, 잔상처럼 남는 묘사와 대화들을 애써 지워내느라 애를 먹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다른 것은 잘 몰라도 ‘갈증’이라는 제목 하나는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제3자의 시선



보통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 중 한 명에게 이입하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 서브 주인공, 주인공의 친구 등 그 대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 도서만큼은 철저하게 제3자의 시선으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물, 매춘, 근친, 조직폭력배 등 책 1권이 아니라 100권은 쓸 수 있을 법한 소재들이 연달아 엮여 나와서 그랬을까. 책, 그리고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 깊게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갈증_2018_1쇄_엽서_앞면_180515.jpg
 


등하불명



‘후지시마’는 사라진 ‘가나코’의 아버지이자 사건의 흐름을 전개시키는 핵심 인물이다. 아내의 불륜 상대를 폭행해 형사를 그만두고 혼자 살다가 딸이 없어졌다는 연락에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후지시마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며 그는 절대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가나코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실의에 빠지거나,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등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형태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후지시마는 딸을 찾는 것에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지 못하는 가나코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자신이 가나코를 찾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그가 오카타에게 질투를 느꼈다는 부분, 그리고 그가 아내와 딸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적힌 부분을 읽으며 눈을 의심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탈을 쓴 괴물인가. 독자인 내 눈에 그는 ‘딸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인 자신’에게 심취한 괴물이었다.

 


“슬픈 얼굴 하고 있다는 거. 그 애 가까이 있는 애들 모두 그렇다는 거 모르겠어요?”



그리고 ‘가나코’가 있다. 부모가 기억하는 가나코는 모범생이었고, 예뻤고, 평범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던가. 후지시마가 알던 가나코는 빙산의 일각 중에서도 가장 끝부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심지어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도 못하다가 정신과 의사 츠지무라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된다), 정서적으로 유대를 가지던 남자친구 오카타가 죽었다. 그녀를 안아줄 따뜻한 가정은 없어진지 오래. 결국 그녀는 약물과 성매매에 손을 대게 되었다.


츠지무라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준 끔찍한 기억을 중화하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은 어린아이들의 성매매를 주선해 아버지뻘의 중년 남성을 지배하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었다. 범죄의 피해자는 어느새 범죄에 빠졌고, 나아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가나코가 느낀 갈증의 끝은 죽음이었다. 가나코는 아즈마에게는 딸 아키코를 성매매에 가담시킨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그녀 스스로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다. 가나코가 왜 그랬는지 그녀가 남겼다던 말을 통해 얼핏 알 것도 같았다.



“그 애가 말했어. 금기에 당한 인간에게 금기는 없다고. 두려움도 없고 연민도 없다고.”



후지시마는 영영 가나코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가 왜 가나코를 찾고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가나코를 찾으려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추락한 사회적 지위와 잃어버린 가장이라는 자리를 되찾고 싶다는 이기적인 자존심과 ‘내가 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어딨어?’라는 알량한 자만으로 시작한 일일뿐이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가나코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갈증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즈마는 가나코를 용서할 수 있을까? 가나코의 갈증은 과연 끝났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것 같다.


 

25018B485462FDD22A.jpg


 

덮고 나서



내가 왜 판타지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모든 인물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정도 되는 결말이 있어야 그 앞의 온갖 고난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이유 모를 충족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 <갈증> 속에는 욕망이 만들어낸 악으로부터 비롯된 갈증이 끝없이 드러난다. 이 책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과 이 책 속 상황은 완전한 악이며, 불행을 더 큰 불행으로 막아보려다가 결국에는 그것보다 더 큰 불행에 빠지는 루프(loop) 속에 있다.


리뷰를 쓰는 것조차 힘들어서 미루고 미룰 정도로 이 책을 다시 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어휘, 어떤 표현을 써야 좋을지 고민했고,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 글이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프리뷰에는 책을 읽고 영화까지 보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적었지만, 내 인생에서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기대했던 카타르시스와 만족스러운 결말을 위해서는 다른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바닥이 없는 컵으로 물을 마신다고 목마름이 가시지는 않는다. 도서 <갈증>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들여다보다 못해 꺼내어 보여준다. 한 번쯤 책을 읽으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박예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