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레이폴(Pray for)] 7. for Short-① [영화]

'Pourquoi mon fils(2015)', 'Love is all you need(2011)'
글 입력 2017.12.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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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 mon fils(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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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all you need(2011)'

 
  성탄의 빛은 세상을 온화하게 감싼다. 거리는 손을 맞잡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고 성탄의 노래는 틈 없이 그 사이를 채운다. 가로수마다 걸린 꼬마전구는 다색으로 황황히 빛난다. 축하의 기쁨과 환송의 아쉬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루돌프의 마법 가루처럼 사방에 흩날린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으로 잔을 부딪친다. 이날은 축복의 날, 연인은 입을 맞추고 형제들은 두 팔을 벌려 서로 그러안는다. 모든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고 교회는 문을 열어젖힌다. 음악과 포옹으로 하나가 된 세계는 마음을 나눈다. 예수는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왔고, 성탄은 유일하게 그것만이 허락된 날이다.

  아이들은 한가득 기대를 품에 안고 자리에 눕는다. 머리맡에 저마다의 양말을 놓아두고 잠든다. 적색 줄과 녹색 줄이 번갈아 그어진 성탄의 색은 알록달록하게 방을 꾸며준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선물이자 희망, 사랑이다. 몰래 선물을 두고 갈 산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밤들이 모여 크리스마스를 이룬다. 그러나 어떠한 선물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산타의 손길은 우는 아이들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비어 있는 양말을 쥐어야만 하는 아이들, 모두에게 허락된 사랑을 받지 못한 그들은 운다. 지난밤의 꿈이 허상이었음에, 너무나도 익숙한 공허감에, 양말을 개어두며 눈물을 훔치고 만다.

  아무도 우는 아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소돔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을 예수마저 외면한다. 너는 어찌하여 망측하게 우는 것이냐, 책망하고 몰락시킨다. 돌을 들고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면서 또다시 운다. 이들의 비극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서 온다. 버림받은 굴레 위에서 그들의 삶은 슬프게 회전한다. 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교회는 더욱 단단히 문고리를 조이고 형제들은 몸을 뿌리친다. 도망할 곳이 없어진 아이들은 울지 않고 견딜 수 없다. 산타는 이들을 찾지 않는다. 눈물은 쌓이고 쌓여 소금 벽을 친다. 그들은 이제 벽 뒤에 숨어 빗장을 지른다. 성탄의 은은한 온기 대신 맨바닥의 잔돌을 옷 위로 느끼며 몸을 누인다. 주머니에서 비어 있는 양말을 꺼내 손에 쥔다.

  유등이 밝혀진 청계천 거리를 혼자 걷다 이 아이들을 발견했다. 다리 밑에서 소매를 당겨 잡고 연신 눈물을 닦는 소녀를, 강둑에 앉아 울음을 삼키고 있는 소년을 봤다. 주저앉은 아이들에게 손을 뻗어주는 이는 없다. 왁자한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던 이들을 거두었다. 집으로 데려와 두꺼운 이불을 내어주고 우엉으로 차를 끓여 내어주었다. 너무 오래 방치되어 쇠약해진 소녀를 먼저 재우고 소년과 식탁에 마주 앉는다. 말없이 잔을 들여다본다. 고요를 깨뜨리지 않고 소년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린다. 뜨거운 차를 모두 마시기까지 둘 다 입을 열지 않는다. 소년의 울음은 멈추었다.

  소년의 뺨은 누군가한테 얻어맞은 듯 발갛게 부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자 소년은 잔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년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다니며 숨어 사귀던 둘은 부모님에게 성 지향을 고백하기로 약속한다. 남자 친구의 거사는 싱거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의 부모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소년을 초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애인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자신도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나직한 목소리와 다정한 포옹이 아닌 폭력과 경멸, 터져 나오는 분노였다. 손을 내밀었던 소년은 그 손으로 달아오른 볼을 감싼 채 집을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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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아버지가 “자신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1)” 평생 감추고 살 수 있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서, 도움을 구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성향을 밝혔다. 남은 것은 상흔뿐이었지만 후회하냐는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를 한 잔 더 부탁하기에 남은 물을 따라주었다. 찻잔 위로 퍼지는 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최근에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커밍아웃 이후 아버지에게 밤새 매를 맞아 입원한 지인의 병실이었다. 그의 가족 모두 절연을 선언하고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그 형에 비하면 제 아버지는 저를 아직 사랑하시나 봐요. 소년은 말하는 동안 잔을 가만 쥐고 있다. 소년은 기다린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있는 그대로 자기를 이해해줄 때를, 팔을 벌려 자신의 몸을 당겨 안아줄 때를, 문을 활짝 열고 따뜻한 집안으로 자기를 들여 줄 때를.

  밤이 깊었다. 거실 소파에 소년을 재운다. 형광등을 모두 끄고 식탁 조명만 남겨둔다. 들리는 대로 책을 가져와 부엌에 앉는다. 이규리 시인의 책이다. 한 시에서 손을 멈추고 귀퉁이를 접는다. 「동파」라는 제목이다.

  “바깥 수도가 얼어터졌다 / 참았던 말, / 들어주지 않으니 손목을 그었다 / 혹한을 흘러내린 흰 피 , 빙판이 되었으니 / 너무 오래 혼자 두었구나 / 울다 끈을 놓았구나 / 발목을 덮는 두께 / 차디찬 통곡이었을 것이다 (후략)”

  두 시경이 되었을까, 안방에서 기척이 나더니 소녀가 비척비척 걸어 나온다. 얼른 다가가 의자를 내어 앉힌다. 낯에 핏기가 없고 눈이 멍하여 곧 쓰러질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얼마나 울었던지 두 눈만은 붉게 부풀었다. 얼른 미음을 끓여 내어주자 간신히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표식을 한다. 숟가락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소녀를 앞에 두고 앉았다. 잠드는 순간까지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상기하며 혹 다시 울음을 터뜨릴까 염려하며 기미를 살폈다. 다행히 진정되었는지 다소 평온한 얼굴로 미음을 떠먹는다. 덮어둔 시집을 마저 읽으며 소녀를 지켜본다.

  소녀는 식사가 끝난 후에도 한참 말이 없었다. 시집을 건네주자 양손으로 받아들고 휘 넘겨본다. 그러다 접힌 책장을 발견하고 시선을 준다. 시를 읽으며 소녀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닦아내는 것도 포기한 채 눈물을 바닥에 떨군다. 차디찬 통곡의 고통을 가늠할 수 없기에 소녀를 위로하지 못한다. 소녀의 주머니에 든 양말이 비어 있다는 걸 알기에, 만져보지 않아도 느껴지기에 멀찍이 관조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울어도 된다고 격려해준다. 마음껏 울라고, 산타의 선물은 애초에 없다고. 허락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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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바꾸는 것은 경각(警覺)으로 작용한다. 소녀가 온 곳은 동성애가 일반적인 사회이다. 소수인 이성애자는 축출의 대상이 된다. 성경은 이성애를 죄악이라 기술하고 목사는 이성애 근절을 기도한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들킨 소녀는 온갖 괴롭힘에 시달린다. 구타를 당하는 소녀를 목격한 교사는 오히려 소녀를 책망한다. 잠시 지나가는 감정에 몸을 맡기지 마라며, 처신을 바로 하라며 소녀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소녀의 휴대전화에는 쉴 새 없이 욕설 문자가 전송된다. 소녀의 이마에는 매직펜으로 각인이 새겨진다. HETERO, 이성애자. 소녀는 바닥에 쓰러져 수치와 폭력을 아프게 받아냈다.

  소녀의 고통을, 흘러내린 피를 부모는 알지 못했다. 소녀를 방치하고 더 궁지로 몰아냈다. 누구도 소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누구도 소녀에게 품을 내어주지 않았다. 빈 양말만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성탄의 사각지대, 작고 어두운 욕실 안에서 소녀는 이마의 낙인을 물로 씻어낸다. 치욕과 외로움을 칼로 도려낸다. 다시 회복되지 않을 만큼, 새살이 돋아나지 않을 만큼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 소녀는 울어서 버려졌고, 울어서 사랑받지 못했다. 환영 받지 못하는 밤에 내 앞에 당도해 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소녀의 옆에 앉는다. 더는 관조하지 않는다.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는다. 침묵을 지키지도 않는다. 나도 한 명의 ‘우는 아이’가 되어 울음을 터뜨린다. 누구도 쳐다보기 싫을 만큼 쓸쓸하고 슬프게 운다. 속엣것을 모조리 쏟아낼 각오로 처연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이미지 출처

Youtube, Imdb

참고 문헌

1) 오근숙, 「보이지 않는 아이들-성소수자 청소년들」, 특별기고, 중등우리교육, 2005, p.4
강병철 外 1명, 「청소년 동성애자의 동성애 관련 특성이 자살 위험성에 미치는 영향」, 청소년학연구 12권 3호, 한국청소년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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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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