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린스키 발레단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내한공연 〈 백조의 호수 〉 [공연]

발레의 정석과도 같은 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무대를 통해 클래식함의 극치를 온몸으로 느끼다
글 입력 2017.11.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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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가 나오는 동화만 골라 쌓아두고 읽었던 어릴 적. 그 중에서도 ‘백조의 호수’는 책장이 닳고 닳도록 읽었던 동화였다. 순백색의 백조로 변하는 공주,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치는 왕자, 악당인 걸 알지만 매력적이었던 오딜까지 지금 보아도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한가득이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였을까,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中 ‘정경’의 멜로디 또한 동화의 줄거리만큼이나 익숙했다. 일고여덟 살 즈음에 신청했던 방과후 발레학교는 얼마 못가 그만두었지만, ‘정경’의 멜로디와 토슈즈의 감촉, 그리고 대회에 나가는 언니들에게만 허락되었던 화려한 발레복에 대한 동경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발레는 클래식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그 고고한 분위기 때문에 조금 멀게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했지만, 꼭 한번 깊이 파고들고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그 음악으로도 물론 유명하지만, 역시 ‘발레’하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작품일 것이다. 차가운 기후의 러시아에서 찾아온 마린스키 발레단(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공연, 그리고 흰 눈처럼 새하얗고 우아한 백조들의 향연을 겨울의 초입에 만나보았다. 이번 공연은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과 빅토리아 테레시카나, 그리고 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수석무용수 세르게이 우마넥과 이리나 사포즈니코바가 각각 지크프리트와 오데트(오딜)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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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_ 왕자의 생일날
 
  성대한 음악으로 막이 올라간다. 음악 뿐 아니라 무대든, 의상이든 모두 화려하게 빛난다. 왕자의 생일을 맞아 사람들은 잔을 들고 광대가 나와 흥을 돋운다. 왈츠의 리듬에 맞춘 동작들은 우아하지만 활발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 포스터에서 보았던 딱딱 떨어지는 군무는 등장하지 않으나 개별 배우들의 자유로운 동작들이 연회에 풍성한 분위기를 더했다. 지크프리트는 검은색 상의를 입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힘차게 뛰어나오는데, 등장만으로도 무대를 꽉 쥐는듯하여 절로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딱히 정해지지 않은 동선위에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의 3인무(파 드 트르와)가 시작되는데, 발랄하고 생기있는 춤선, 발레리노의 지탱으로 회전하는 발레리나의 삐루에뜨를 보여주며 앞으로 펼쳐질 지크프리트와 오데트의 환상적인 호흡을 예고하는 듯 했다.
 
 
제 2장_ 숲 속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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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이 바뀌고, 어머니께 받은 석궁을 들고 궁 밖으로 나온 지크프리트. 숲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왕자의 모습 아래, ‘정경 scene'이 신비롭게 흘러나온다. 백조에서 사람으로 변신한 오데트는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에 의해 낮에는 백조로, 밤에는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 지크프리트는 오데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왕자비를 간택하는 내일의 무도회에 오데트가 참석하기를 바란다.

  오데트와 함께하는 수십 명의 발레리나들은 걸음걸이, 팔의 높이까지 맞추어 수십 마리의 백조가 된다. 깃털처럼 부드럽게 펼쳐지고 떨어지는 팔동작은 백조의 날개와도 같았고, 곧게 뻗은 다리는 백조의 목처럼 고고했다.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들의 발등은 흡사 우아한 곡선을 이루는 백조의 머리같이 보였다. 수십 명의 발레리나들이 각기 다른 국적, 다른 해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러한 ‘기교’에 가까운 호흡을 만들어냈을까,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한 명이 연기하는 오데트와 오딜의 대비가 마린스키 발레단의 자랑이라면, 백조들의 하나된 몸짓은 이 작품 자체의 자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조들이 숨도 쉬지 않는 듯, 팔을 뻗어 고요히 멈춘 가운데 오데트와 지크프리트의 사랑의 춤이 시작된다. 가녀린 오데트의 동작과 그를 받쳐주는 지크프리트의 섬세한 동작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제 3장_ 궁전 무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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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지크프리트가 왕자비를 정하는 시간. 1장보다 더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는데, 왕자의 백년가약을 축하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손님들이 등장한다. 개성있는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각 국의 민속춤을 선보이며 발레 무대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모든 손님들의 무대가 끝나고 새까만 의상을 입은 로트바르트와 오딜이 등장하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궁중 사람들 가운데서도 두 명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둘의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동작때문이었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한 명의 발레리나가 오데트와 오딜을 모두 소화해낸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도 오딜처럼 바뀐 프리마돈나 때문에 속으로 재차 같은 사람인지 확인했다. 2장에서는 백조보다 더 가녀리고 희었던 오데트였는데, 단 20분의 인터미션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파워풀한 동작을 선보였다. 오딜이 무대 정중앙에서 32회전을 하는 그랑 푸에떼를 선보이자마자, 한 8회전쯤부터 관객들은 연신 박수갈채를 보냈다. 순진무구한 왕자는 오데트와 똑같은 얼굴을 한 오딜에게 결혼을 맹세하고, 그 순간 무대가 번쩍이며 오딜은 받은 꽃을 바닥에 내던진다. 창문 바깥으로는 오데트가 좌절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제 4장_ 밤의 호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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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데트를 쫓아 달려나간 지크프리트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하지만, 이미 저주가 깨어질 수 없음을 아는 오데트는 슬피 운다. 오데트를 지켜보려는 듯 백조들이 유약한 날갯짓을 하며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만, 로트바르트가 소환한 흑조들이 나타나 이마저도 혼란스럽게 한다. 지크프리트가 로트바르트의 날개를 꺾자 동이 트기 시작하고, 오데트와 지크프리트는 백조들 사이에서 사랑의 춤을 추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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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연에 멀리서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 뿐이었다. ≪백조의 호수≫는 서사를 넘어 기교를 선사했고, 기교를 넘어 예술을 펼쳐보였다. 자연스레 공연에 빠져보려해도 자꾸만 ‘저런 동작을 선보이기까지 얼마만큼의 연습을 해야했을까’하는 경외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수많은 연습 끝에 탄생했을 몸짓들을 받아들이는 순간, 발레는 전율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얼마 전, 발레가 ‘발끝으로 통통 튀어다니는 놀음’, ‘서커스중에서도 악질적인 곡예’라는 한 트위터리안의 글을 보았다. 그 트윗을 본 직후에도 전혀 공감이 안 되었지만, 프리모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난 지금은 공감이 안 되는 것을 떠나 화가 치밀었다. 발레를 놀음이나 서커스라고 비유한 것으로 보아 글쓴이는 발레 공연을 제대로 보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분명 뛰어난 발레를 선보이기 위해선 가학적일만큼 엄청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동작을 선보이기까지의 엄청난 연습을 단순히 ‘가학적이다’라고 표현할만큼 발레는 얕은 예술이 아니었고, 무대 위에서 발레가 비로소 상연되었을 때의 폭발적인 아름다움은 놀음이라는 말로 가볍게 소비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발레의 정석과도 같은 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무대를 통해서라면 클래식함의 극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발레가 어떻게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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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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