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의 위대한 도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공연 [공연]

이상하게 조화로운 차이코프스키, 유쾌한 라흐마니노프.
글 입력 2017.11.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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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실제로 만나고 싶었던 피아노 협주곡 콘서트. 게다가 프로그램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처음 경험하는 피아노 협주곡 콘서트를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니, 왠지 모를 영광이 느껴졌다. 한 가지 더, 두 곡은 모두 뛰어난 기교와 지구력을 요하는 작품인데 연주와 지휘를 같이 하겠다는 가브릴로프의 위대한 도전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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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62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활동하고 있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는 러시아 태생이다. 18세에 정명훈을 제치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카라얀이 첫 눈에 반할 정도의 연주를 했던 그는 소련 당국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5년 동안이나 격리되어 활동하지 못했다. 큰 우여곡절을 겪은 뒤 성공적인 재기를 이루어냈지만 돌연 7년간의 휴식기를 갖는다. 이 때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했고, 이후 ‘아름다운 기이함’, ‘괴기스러운 신비로움’등의 수식어와 함께하며 피아니스트 중 독보적인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러시아 태생의 가브릴로프가 연주하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협주곡은 어떤 느낌일까. 분명 러시아적인 색채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적인 색채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고, 위풍당당하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이었는데, 가브릴로프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분명 이 느낌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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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가브릴로프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엄청나게 강렬한 지휘로 시작해,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연주로 이어나갔다. 평소에 들었던 음원보다 더 빠른 템포로 곡을 이끌었으나, 가브릴로프는 결코 그 연주가 버겁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그는 음 위에 올라타 채찍을 휘두르듯, 곡의 진행을 재촉해나갔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정통적인 해석에 의해 곡을 연주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아예 곡을 재해석한 듯 했다. 그냥 연주 스타일이 독특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닌, 음을 변형하거나 생략하기도 하며 ‘가브릴로프’의 차이코프스키 연주를 펼쳤다. 여기서 방점은 가브릴로프에 찍혀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주가 완전히 이계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한 차이코프스키는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차이코프스키와 분명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웅장함과 자유로움의 어떤 이상한 조화, 그 속에서 느끼는 어렴풋한 익숙함이 그것인데, 가브릴로프의 연주는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해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신선함에 빠져 인터미션을 보내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어떻게 연주를 할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2부를 맞이했다. 걱정이 되었던 까닭은 평소 내가 생각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예민하고 섬세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그런 인물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이다보니, 내 기준에 맞추어 해석해주길 은근하게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가브릴로프는 차이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자신감과 자기확신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다. 그 어려운 곡을 더 빠른 템포로 연주하여, 혹여나 오케스트라가 중간에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 머릿속의 처연한 느낌의 라흐마니노프는 눈 앞에서 가브릴로프의 ‘자유로운’ 라흐마니노프로 구현되었다. 몸을 들썩이기도 하고, 팔을 흔들기도 하면서 폭발적인 연주를 이끌어나갔다. ‘유쾌한 라흐마니노프’라는 표현은 어딘가 아이러니해보이지만, 가브릴로프의 해석은 그래서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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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클래식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콘서트였으나, 클래식 음악을 정말 온전히 자신만의 프레임 안에서 바라본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가브릴로프가 보여준 도전은 누군가에겐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흥건히 젖은 가브릴로프의 등은 그의 도전이 결코 얕은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교과서 같은 작품들을 정규교육과정 외의 해석으로 바라본 느낌이랄까, 그의 열정적인 연주는 어떤 음악에도 해석의 자유는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듯 했다. 궤도 밖의 것이나, 반짝였던 가브릴로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울려퍼진 그 날은 아름답고도 기이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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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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