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박종훈의 클래식 데이트, 냉정과 열정 사이를 바라보다

글 입력 2017.04.1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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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도 오전 11시라는 시각에 시작하는 클래식 공연. 다소 이른 시간이다 보니, 성남까지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평소 공연을 보러 갈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습니다. 박종훈의 클래식 데이트는 이번 해 3월부터 12월까지 매월 첫째 주 목요일마다 다양한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유롭고 낭만적인 오전. 엄마도, 아내도 아닌 '우아한 여자'로 누리는 소소한 행복. 향긋한 커피와 다과, 아름다운 클래식으로 힐링하는 시간!' 이라는 광고 카피와 공연 컨셉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주 마케팅 타깃은 공연장 가까이에서 거주하시는 전업주부 여성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면서도 한 시간 거리에서 찾아온 저를 위해 기획된 공연은 사실 아니었습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바라봐도 비판할 점이 많은 문구지만, 공연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으니 굳이 이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오전 시간대가 여유로우신 성남 부근 거주자분들은 꼭 한 번쯤 관람해보시면 좋을 공연입니다. 클래식 공연은 무거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다르게 진행자분께서 최대한 성심성의껏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셔서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쾌한 편이었습니다. 영화 보러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셔도, 나른한 오전 시간을 알차게 채울 만한 문화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보통 공연에 비해 저렴한 전석 2만원이라는 티켓값이 큰 장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향긋한 커피와 다과가 제공된다는 안내에 많이 기대했지만(!) 공연 시작 시간 20분을 남기고 도착했더니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살짝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라도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조금 더 일찍 가셔서 보다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즐기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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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박종훈의 클래식 데이트의 주제는 <냉정과 열정 사이>였습니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의 제목입니다. 저는 아직 이 작품의 제목밖에 들어보지 못했기에, 영화가 주는 여운과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음악들을 연관 지어 글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행자이자 연주자이신 박종훈 피아니스트께서 제목을 <냉정과 열정 사이>로 지은 이유를 공연 중 짧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 문장에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습니다. 

1부에 주로 연주되었던 클래식 곡들은 '냉정'을 상징합니다. 클래식은 그 어떤 장르보다 형식미를 중시하며 뚜렷한 균형이 잡힌 음악입니다.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 한편으로는 감성적인 선율에 빠져들면서도 이성적으로는 분명하게 음표의 윤곽을 인지하게 됩니다. 섬세한 피아노 터치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화려한 음률로 장식된 징검다리를 정확하게 짚으며 건너갑니다.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냉정입니다.

반대로 2부를 주도했던 재즈 풍의 음악들은 '열정'을 상징합니다. 재즈는 특유의 즉흥성과 활력 있는 연주에서 그 매력을 온전히 발산합니다. 분할된 음표들이 정확하고 부드럽게 열을 맞춰 움직이기보다는 기분 따라 마음껏 서로 뭉치며 함께 뛰어놀 수 있도록 풀어놓습니다. 때로는 같은 징검다리를 두 번씩 타닥 밟아보기도 하고, 길게 쭉 점프해서 하나를 건너뛰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물에 뛰어들어 가로질러가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악기와 음표들이 서로 논쟁하듯 팽팽히 맞서기도 하고, 어우러져 화합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합니다. 그야말로 열정의 음악이라는 별칭을 붙이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피아니스트 박종훈과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이 이어가는 두 갈래의 선율은 클래식의 냉정과 재즈의 열정 사이를 가로지르며, 또 다른 '냉정과 열정 사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여러 가지의 선율이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것을 느끼게 되면 때로는 신비롭기도 합니다. 아마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이런 경우의 대표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아노가 열정적인 직선의 멜로디를 연주하며 주도권을 가져오면, 바이올린은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듯 섬세한 곡선을 긋습니다. 반대로 바이올린이 힘차게 붉은색 붓질을 시작할 때에는, 피아노가 그 위에서 차분한 청록색의 보색을 넣어줍니다. 냉정과 열정이라는 단어의 분위기에서 언뜻 떠올려보면 두 성격은 마치 물과 불처럼 서로 대척점에 서 있기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을 포함해서 수많은 음악과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보여주듯, 때로는 가장 다른 것이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화합하며 만들어 낸 4월 박종훈의 클래식 데이트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의 OST를 연주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냉정과 열정이라는 두 성격이 다른 모양의 선을 긋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그 '사이'에서 같은 점으로 만나게 된다는 은유적 의미를 담은 구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두 획으로 그려진 선들을 가까이에서 살펴보기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았을 때 보다 아름답게 균형 잡혀 보이는 그림을 닮은 공연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박종훈의 클래식 데이트


일시: 2017년 3월 2일 – 12월 7일 (목) 11:00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장소/주최: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

티켓가격: 전석 20,000원
(조기예매 할인 20%)
단체관람 별도 문의

출연진:
피아노 박종훈, 자스민, 듀오비비드
바이올린 선형훈, 양고운, 박미선
비올라 가영, 박치상
첼로 이강호, 예슬, 장우리
가야금 한혜진
반도네온 진선외

공연시간: 90분
관람연령: 취학 아동 이상
공연예매: 인터파크 1544-1555, 예스24티켓 1544-6399
문의: 031-779-1500 www.tliart.co.kr


[김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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