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민한 헬조선 청년에게 성장소설이란 [문학]

가네시로 가즈키 GO
글 입력 2017.03.3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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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왜,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책을 접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다. 책에 편식은 있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읽어보려 하는 편이고 일본소설은 특히 좋아하는 장르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헬 조선 청년인 나에게 <성장소설>은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더 채찍질 하는 괴로운 고문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민하다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맞다. 그 정도로 예민하고 힘든 청년이기 때문에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책을 읽어야만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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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onuke.egloos.com/9670305


홍대 정문 복잡한 거리를 프레임에 가둔 사진 작품이 있다. 그 안에 속해있을 때에는 모르지만, 위에서 바라본 거리가 얼마나 삭막한지를 청년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작품에 자극 받아 조금은 탈피해 숨을 고르고 있었건만, 다시 머리채를 잡힌 느낌이다. 정해진 틀(국적)에 벗어나 달리라는 는 정작 루트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를 진취적이고, 투지 넘치는 전형적인 남자주인공을 앞세워 다시 틀 속에 집어던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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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 GO >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머리로만 인지할 뿐 친구가 칼에 찔려 죽는 일, 야쿠자의 아들, 극우 일본인들의 차별 등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한계치는 한참 넘어섰다. 오히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한국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국내의 많은 외국인에게 악의 없는 차별을 했을지언정. 오히려 정체성,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다른 작품들이 생각났다. 아론 울프가 감독한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그 예다. 자신들이 소비하는 대부분의 식품에 함유된 ‘옥수수’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조상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는 식품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지만, 단순하게 모계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언급은 유쾌했다. 역시 DNA가 전부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도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란 국적 혹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따라 분류 될 수 있는 건가. 나를 정의 하는 것은 뭔가. 비슷한 책으로 어릴 적 읽었던 소설이 한 권 떠올랐다. 러시아 혼혈인 남자아이가 외로움에 취해 박물관에서 고대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스스로의 조상을 멋대로 정의하다 훗날 나이를 먹고선 러시아 아버지를 만나는 내용이다. 제목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 줄거리를 나열 해 보니 진부한 감이 있지만, 거친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는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즈키는 자극하지 못한 동질감이다.

  두 책 다 재일조선인과 혼혈인이라는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를 사용했지만 후자가 날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인공의 태도에 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는 아무리 거칠고 드세도 자아를 찾는 일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생각한다. 소심한 성격이라는 게 아니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반면 스기하라는 너무 적극적이다. 그는 ‘아버지가 전직 킥복싱 선수인 무패신화를 써내려가는 멋쟁이!’ 라는 타이틀도 놀라운데 거기에 유복한 집안에 힘입어 하고 싶은 일들은 웬만큼 다 하며 천천히 자아를 확립시켜가기 까지 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의 우리는 이럴 여유조차 없으니.

  이렇게 보면 그가 때려눕힌 택시기사가 틀리지는 않았다. 사실 국적, 자아란 것 자체가 의식주가 다 충족되고 난 이후에야 갈구하게 되는 정신적 문제니. 물론, 소설의 스기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재일교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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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그 비현실성들이 이입을 방해하고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 채 내 자아 찾기나 시작하게 했다. 아마 지금 내 심신의 상태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정도로 맑지 못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며칠만 지나 다시 이글을 읽는다면 창피해서 찢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나는 가즈키에게, 아니 스기하라에게 불만을 갖고 있고 감추고 싶지도 않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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