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마크 로스코의 빛 [문학]

글 입력 2016.12.3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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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바다에서 나는 마크 로스코의 빛을 보았네, 내가 눈을 떼면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빛을 보았네,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갑작스런 문장들이 나왔죠? 마크 로스코는 뭐고, 누구를 기억한다는 건지요. 다분히 감성적이지만 이해하긴 힘든 위의 문장은 김연수의 단편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연말 연초가 되면 유독 떠오르곤 하는 작품이지요.
 
새해가 시작되는 이 맘 때 즈음이면 새로이 시작될 것들에 대한 설렘만큼 떠나보냈고 떠나보낼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곤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 감성을 기가 막히게 잘 자극하는 작품이에요.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어느 날 ‘나’에게 도착한 희진의 이메일을 ‘나’가 읊듯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여졌거든요. 과거의 인연이 나에게 전하는 편지를 함께 읽다보면 아련하고 어렴풋한 기분에 어느새 푸욱 젖어들곤 하지요.
 
소설 속에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채 함께 일본을 거닐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감상적이고 모호한 모습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해요. ‘나’와 ‘희진’의 관계는 소설 속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두 사람은 과거에 대체 무슨 관계였을까. 저는 그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갑자기 메일을 보낸 희진은 그저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끝끝내 든 저의 감상은 이것이 총체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해져 온 희진의 이야기로부터, 과거의 시간에서 십 년이 지나 희진의 시간은 이메일로서 이어지지만 ‘나’의 현재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이 소설을 읽을 때에 저를 휘돌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이었죠.
 
사실 과거란 건 모두 그래요. 명확하지 않고 명확할 수 없지요. 그래서 소설 속 ‘나’는 희진이 멀리 있다거나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독자로서 저는 그녀가 어딘가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에 거듭 등장하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 때문에 더욱 그랬죠. 희진은 밤바다의 배 위에서 마크 로스코의 빛을 떠올리는데, 그건 아주 막막하고, 동시에 아득한 기분을 저에게 선사해 주었거든요.

 
마크 로스코.jpg

 
마크 로스코는 추상표현주의 계통의 작가에요. 추상표현주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감성을 작품에 담고자 했죠. 이런 추상표현주의의 창작 방식 중 색면회화를 창시한 것이 마크 로스코였습니다. 그는 커다란 색면을 이용하여 자기 내면의 감정을 전달했죠. 커다란 캔버스에 단순하게 가득 찬 색채가우리에게 어떤 감성을 전달해 주는 거예요.
 
“그 밤, 바다에서 나는 마크 로스코의 빛을 보았네.”. 제가 소설에서 이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 멈칫했던 건 저의 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는 색채로 가득찼을 뿐인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 서면 어쩐지 먹먹한 기분이 든다고, 특히나 아주 새까만 그의 어떤 캔버스 앞에 서면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펑펑 울곤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거기엔 단지 색채만이 있을 뿐인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어쩌면 이것은 소설 속 희진이 목이 메인 그 감정과 비슷한 것일지도 몰라요. 마크 로스코의 새까만 그림, 밤바다, ‘그건 언젠가 우리가 함께 나란히 서서 바라본 빛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뭐 그런 것이 모두 연관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들이 모두 연관이 있다면 이건 어쩌면 기억에 관련된 것일 겁니다. 새까만 색채 저 너머로 기억과 감정이 밤바다 출렁이듯 밀려오고 그래서 사람들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펑펑 울곤 한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도 흉내내거나 알 수 없는 오롯이 본인만의 기억이고 정서니까 말이죠. 기억의 심해에서 수면으로 발굴되어 올라온, 그건 확실히 벅찰 것 같지 않은가요?
 
원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솔직해지곤 하는 법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후쿠다는 HJ를 찾고, 희진은 ‘나’에게 메일을 보낼 마음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그 기억이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우주가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러다가 나는 후쿠다 준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일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제가 쓴 감상이지만 두서없고 모호하군요.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모호하지만 감상적이고, 그래서 사람마다 각자 다른 부분을 자극하겠지요. 그건 어쩌면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추구하던 본질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고,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의 기억에 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연말에 떠나보낼 것들과 새로 맞이할 것들을 떠올리면서 한 번, 생각보세요. 여러분들은 누구를 기억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기억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기억은 당신의 세상에 영향을 끼치나요? 기억은, 이 우주를 바꿀 수 있을까요?


[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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