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서, 북아트로 즐기다 [시각예술]

책이 지식을 전하듯 아트북은 예술을 전한다.
글 입력 2015.11.1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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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가을은 유독 빨랐다. 심지어 며칠 사이 내린 비로 꽤 많은 단풍이 지고 말았다. 바삐 찾아오더니, 느긋함을 다 즐기기 전에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는 가을. 바닥에 드넓게 깔린 단풍잎들이 조금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원래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 아니던가. 바스락거리는 단풍잎들, 청명하고 높은 하늘, 바람만이 가득 찬 가을 풍경은 책과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책을 통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잔향을 즐기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가을의 끄트머리를 잡으며, 책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책은 책이지만 조금 특이한, 예술가들의 책. ‘Book Art'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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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트(Book Art)는 과연 무엇일까? 직역하면 책 예술, 책으로 하는 예술 정도가 되겠다. 넓게 보면 책과 미술의 결합을 의미하는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으며, 좁게 보면 책의 내용을 미술가들이 삽화로 옮긴 것이나 장식그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초기 북아트는 중세의 성서 필사본, 판화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삽화 시집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들어선 후에는 여러 화가들이 북아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북아트는 예전과 달리 좀 더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삽화나 장식 그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형식을 한 시각미술 작품을 통틀어 이른다.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사조와 결합하면서 문학운동과 함께 북아트가 전개되기도 했다. 북아트는 기존의 책이 가진 가장 큰 요소인 ‘글자’가 없이 형상만으로도 구성될 수 있다. 반대로 문자만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일시적인 퍼포먼스나 설치미술에 의해 행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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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옆면에 새겨진 글자. 종이 위는 비었지만 책의 옆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위쪽으로 누르면 ‘NO’라는 글자가, 반대로 누르면 'OH'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글자를 책과 결부시켜 만든 작품. 이것은 글자를 이용해 예술 작업을 하는 에드워드 루샤의 작품이다. 현대에 이르러 대중문화가 빠르게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는 표준화되고 대량 생산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루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영감을 받은 작가이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대중문화적인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하는 단음절의 단어에 주목하여 단어들을 팝아트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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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위에서 본 작품과는 달리, 아예 글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글자 대신 책을 채운 것은 기하학적 도형이 담긴 그림이나, 혹은 이미 폐지로 취급될 것 같은 낡은 만화나 광고지의 조각들이다. 책은 책이지만 글자가 없는 책. 이 작품을 만든 다이어터 로스는 책을 단순히 지식 전달의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책이란 ‘여러 것들의 정신적인 연결, 커뮤니티’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작품의 책에는 어떠한 형식도, 어떠한 문장도, 어떤 글자나 삽화도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 작가의 책은 오로지 여러 색과 이미지들이 섞인 추상적인 메시지로 가득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가는 책을 매개체로 하여,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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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책이지만, 책이라기엔 조각에 가까워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책이라는 형태를 모티브로 예술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이 작품에서는 책 자체를 작업이 행해지는 실제적인 대상으로 삼고 있다. 펼쳐져있는 거대한 책이 조각난 속지를 휘날리는 모습. 마치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페이퍼 아트의 일종이기도 한 이 북아트는 바바라 와일든보어의 작품이다. 본래의 책이 가지고 있었던 문장, 단어, 스토리와 모든 내용은 작가의 손에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어 재탄생한다. 흩어지고 모이고 반복되는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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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책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다만 책에 사용된 삽화를 절묘하게 자르고 겹쳐놓아 줄글로 된 긴 이야기를 단 한 폭의 그림으로 묘사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글자를 과감히 제하고, 오직 삽화와 그것을 다시 재단함으로써 나타는 완전히 다른 풍경.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친숙한 존재인 책을 이용했지만,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은 그 발상의 전환에 감탄사를 뱉게 만든다. 

  책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해석. 책의 상징성에 주목하기도 하고, 책이라는 대상 자체가 가지는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기도 한 다양한 작품들. 일상 속에서 한없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책이 여러 모양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은 무척 낯설면서도 오히려 친숙하다. 북아트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여러 형태의 책은 우리 머릿속 생각을 온전히 화폭에 꺼내 놓은 느낌을 준다. 듣거나 읽었던 이야기더라도, 새로운 색깔과 형태을 입은 작품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처음 책을 읽었던 설렘과 스릴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처럼, 북아트는 책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다양한 감성으로 표출된 예술이다. 사실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종이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존재는 자칫 외면당하기 쉽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북아트는 아날로그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만드는 그 어떤 소중함이리라.
  
  책이 지식을 전하듯 아트북은 예술을 전한다. 남은 가을을 책과 함께, 북아트의 감성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참고자료

구글 이미지 ; fall / book art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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