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展 < 영원한 풍경 >

글 입력 2015.02.1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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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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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올해 갔던 전시 중 가장 좋았다. 그래서 그만큼 아쉬웠다. 내가 사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카르티에-브레송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사진을 마주한 순간 느껴지는 안정감이 극도로 계산된 구도라는 걸, 설명을 읽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었더라면.

제일 먼저 감탄했던 작품은 프랑스 이에르에서 찍은 사진으로, ‘하이앵글로 만들어진 완벽한 기하학적인 균형과 시각적인 리듬’으로 설명된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찍은 사진의 설명은 ‘곡선과 직선의 조화. 단순한 형태와 여백의 미’ 이타릴아의 살레노에서 찍은 사진은 ‘형태와 황금분할에 맞춰져 안정감을 준’다고 쓰여있었다. 


극적이거나 선성적이지 않은 시선
자신의 색이 뚜렷한 사진가들 중 일부는 선정적인 사진을 찍곤 한다. 그 자극으로 인해 쉽게 인식하게 된다. 반면 카르티에-브레송은 그렇지 않았다. 맨몸을 찍어도 외설적이지 않았다. 예술과 외설은 한 끗 차이라는데 그의 사진을 외설과 한 끗 차이라고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찰나의 포착’이란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잡아낸 한 순간. 얼마나 준비되어 있어야 얻을 수 있을까. 천막에 뚫린 구멍으로 서커스단을 엿보는 남성과 그 옆에서 망을 보는 남성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꽤 잘 차려 입은 모습이 엿보고 망본다는 행위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인물의 안경알 한 쪽에만 빛이 비춘 사진이 있었다. 건물의 그림자 사이 네모난 빛으로 뛰어드는 아이의 사진도 있었다. 일상에 존재하는 정말 찰나의 순간. 아, 그래서 극적이지 않다고 했구나. 무엇도 의도하지 않았구나. ‘결정적 순간은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제때에 도착한다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런데 그 순간이 아무에게나 올 것 같지는 않다.


“순간적인 시각의 느낌, 대상의 본질과 작가 내면의 진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을 초상사진에 적용” 

사실 카르티에-브레송의 인물사진은 크게 기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입장하면서 받은 초대권의 까뮈의 사진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사진으로 마주한 순간 느꼈다. 내가 외운 까뮈의 얼굴은 카르티에-브레송이 포착한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까뮈 100주년을 기념하며 낸 일러스트 엽서와 함께 받은 홍보지를 찾았다. 같은 날 같은 까뮈가 첫 장에 있었다. 나는 카르티에-브레송을 아주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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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인물사진은, 카르티에-브레송이 그 인물과 친밀한 사이라는 게 드러났다. 경계심이 없는 표정, 배경은 피사체의 집.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나 근엄한 자세가 아닌, 인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생활감이 있는 사진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유능한 포토그래퍼라고 한들 낯설다면 그 명성만큼이나 거리감이 있기 마련인데,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에선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직업을 유추할만한 것들이 있었다. 눈빛이 날카롭다 싶은 인물은 모두 작가였다. 카메라를 마주하고 의식한 그 인물이 아니었지만 그 인물의 특징을 담아냈단 생각이 들어 사진을 감상하는 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직업을 유추할 수 없었던 건 트루먼 카포트 한 사람이었는데, 좋은 피사체였기 때문에 유추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남다른 세계를 가진 작가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인물을 담는다는 건 참 다양한 걸 담는 일이라는 걸 카르티에-브레송의 초상사진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저 누군가를 순간에 담아두기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래 볼 각오를 하고 안 신던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다리가 아프다고 느낄 새가 없었다. 나오고 보니 두 시간도 훌쩍 더 지나있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아쉬웠다. 전설적인 인물의 대단함을 그저 몇 번의 가벼운 감탄으로 감상해서 아쉬웠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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