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이란 무엇일까. 흔히 우리는 성장을 무언가를 배우고,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 성장은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 낯선 얼굴로 다가올 때. 그제야 우리는 누구의 보호도 없이 스스로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영화 [레위기]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성장 서사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 성장은 따뜻한 이해나 다정한 응원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과 자신을 부정하는 세계에 맞서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레위기는 기독교 신자들이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하는 성경의 한 부분이다. 영화 속 마을 역시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존재를 배척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바로 그 마을로 돌아와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안온한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억압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고통받는 동안 어른들은 침묵하거나, 그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폭력에 가담한다. 보호받아야 할 소년들은 금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이 되고, 종교는 그 폭력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사랑과 용서라는 기독교의 가치가 떠오르는 순간, 영화의 제목은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믿음과 다른 존재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는 어쩌면 기이한 사건 자체보다도, 폭력이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쉽게 용인되는 현실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레위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종교적 억압에 대한 비판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유년기를 지나 자신만의 자아를 만들어가는 한 소년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사춘기는 익숙했던 세계가 조금씩 낯설어지는 시기다. 부모의 말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존재가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서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가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설정 역시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익숙한 얼굴인데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듯한 순간. 혹은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존재마저 낯설어지는 경험은 유년기의 끝에서 마주하는 공포와 닮아 있다.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주인공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마지막 존재에게서조차 외면당한다. 그 순간 소년은 타인의 선택을 바꿀 수도, 자신의 힘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도 없다는 무력함을 마주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공포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하나의 공포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지금 내리는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 내가 믿고 있는 감정이 옳은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순례길을 걷듯 우리는 수없이 흔들리고, 때로는 돌아가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세계와 작별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을을 떠나는 장면은 다소 익숙한 결말이면서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두 사람이 탄 버스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을 밖의 세계가 반드시 안전하거나 행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침내 자신을 억압하던 공간을 벗어나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선택은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성장의 시작에 가깝다. 자신을 규정하던 믿음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앞으로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는 작은 선언처럼 느껴진다.
빠른 장면 전환과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순간들 역시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목격한 일련의 사건들은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내면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사람이 낯선 존재가 되고, 안전했던 장소가 위협적으로 변하며, 마침내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는 과정. 이는 단순한 탈출을 넘어 이전의 자신과 결별하는 여정으로 읽힌다.
결국 [레위기]는 내게 무언가에 맞서 끝내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남았다. 자신을 부정하는 세계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낯선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길 위에 기꺼이 올라서는 이야기.
우리는 성장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낯설게 마주한다. 때로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서 이해받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믿음에 의문을 품으며,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와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을 믿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간다. 어쩌면 성장의 끝에는 완성된 자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전보다 조금 더 자신에게 가까워진 내가 있을 뿐이다.
[레위기]의 소년들이 탄 버스의 종착지를 알 수 없듯, 우리 역시 자신의 여정이 어디에서 끝날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를 부정하는 세계를 벗어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용감한 성장의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