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거리에 앞을 향해 걷는 청년들.
웃지도 않고, 우산도 쓰지 않는다.
1965년 한일 국교 회담 반대 시위 현장이 담긴 이 사진이 영화의 막을 연다. 나는 이 사진, 그리고 한일 국교 회담 반대 시위의 존재를 이 장면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포착한 인물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내 시선을 붙잡았다.
1. 구와바라 시세이
그렇다면 이 장면을 포착한 구와바라 시세이는 누구이고, 왜 한국을 찍었을까.
구와바라 시세이는 1960년 미나마타병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으로 일본 사진 비평가협회 신인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한다. 1964년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60여 년 동안 100여 차례 한국에 오가며 대한민국의 다양한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사진의 얼굴>은 90세 일본 포토저널리즘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과 사진을 다룬다. 영화는 연대기적 구성을 따라가지만, 감독의 말처럼 ‘한평생 사진이 전부인’ 사람의 삶을 주목한 만큼 포토멘터리의 형식을 띤다.
2. 이방인의 시선으로 마주한 역사
영화에서는 민주화 운동부터 문경의 도자기까지 다양한 한국의 풍경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동두천에 대한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전쟁 이후 동두천에는 미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유흥업소가 자리 잡았고, 그 흔적으로 당시의 성병 관리소가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그 주변엔 이름 없는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진에 시선을 붙잡힌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데, 동두천에 대한 분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살던 나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외국인을 통해 알게 됐다는 낯선 경험도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외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역사를 사진으로 마주했을 때, 이전과는 다른 감상이 들었다.
이것은 나의 낯선 경험만으론 완벽히 설명하기 어렵다.
3. 증언으로써의 사진
이미지 외에 어떤 과거의 유물이나 문서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해 주지는 않는다.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13p
구와바라의 사진은 그가 현장을 직접 보았다는 명백한 증언처럼 보인다. 그는 한국인에겐 이방인이었고, 그렇기에 그 사진은 더 객관적으로 다가온다. 동두천 기지촌처럼, 외면하거나 숨기려 했던 역사를 그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끈질기게 기록해왔다.
한동안 수면 위로 나오지 못했던 한국의 근현대사가 많았기 때문일까, 이방인의 정직한 증언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2024년, 구와바라는 90세의 나이에도 대통령 탄핵 찬반 시위 현장을 담기 위해 한국에서 카메라를 든다. 그가 그토록 끈질기게 기록해온 이유를 영화에서 정확한 말로 설명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그가 계속해서 증언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으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의 얼굴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끈질기게 기록했던 한 인물을 다시 영상으로 기록해낸 <사진의 얼굴>은 또 하나의 증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