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문화유산은 누군가 계속 바라볼 때 살아남는다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도서]

사진으로 남겨야 비로소 이어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강효정 에디터
2026.08.18 13:20

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

 

 

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좋아한다.


여행하다가 오래된 건축물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보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그 사진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즐긴다. 서헌강 작가의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나 역시 문화유산을 바라보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30여 년간 국내외 문화유산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 서헌강이 공간과 사람, 유물 그리고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무엇보다 책 곳곳에 작가가 직접 촬영한 문화유산 사진이 컬러로 담겨 있다. 실물을 직접 마주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지만, 사진을 통해서도 문화유산이 가진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충분히 전해졌다.

 

 


사진 한 장을 얻기까지 필요한 기다림


 

책을 읽으며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좋은 사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머릿속으로 좋은 구도를 생각하고 현장에서의 모습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더라도 실제 촬영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 날씨와 온도, 빛의 방향,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현장의 조건에 따라 같은 장소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서헌강 작가가 문화유산을 촬영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찾고, 원하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수년을 기다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그의 태도를 보며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예쁘게 담아내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오래 바라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있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결국 사진에 담긴다.

 

 


종묘와 창덕궁을 다시 바라보다


 

창덕궁.jpg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묘와 창덕궁에 관한 이야기다. 평소에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라 더 집중해서 읽었다.


종묘에 들어서면 가로로 길게 늘어선 붉은 목조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은 화려하다기보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정전은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영녕전 정문 계단을 올라오면 그동안 시야에 가려져 있던 종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고요하지만 웅장하고, 분명한 힘이 느껴지면서도 자연스럽게 말을 아끼게 만든다. 그 공간에 서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반듯하고 직선적인 공간 배치보다는 지형과 자연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계절마다 다른 창덕궁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 역시 봄이면 매화가 피어난 창덕궁을 떠올린다.


특히 낙선재가 좋다. 궁궐이라는 공간 속에서 목조로 된 건물이 등장하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공간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준다. 같은 문화유산도 언제, 어떤 계절에,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기록하지 않으면 이어갈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문화유산의 ‘기록’에 대한 부분이다.


문화유산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해서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바라보고, 기록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수 있다.


서헌강 작가는 그 역할을 사진으로 해왔다.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문화유산을 촬영하고, 오랜 시간 그 모습을 기록했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누군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삶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반드시 우리의 문화유산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보고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눈에 비쳐야 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알고,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오래된 것을 바라보며 오늘을 생각하다


 

책에는 유형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전통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한 가지 기술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한 가지 일에 그렇게 오랫동안 몰두할 수 있을까.’


‘무엇에 그토록 매료되었고, 그 일을 계속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동시에 걱정도 생긴다. 그들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기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인생을 100년이라고 생각하면 전통 역시 한 사람에서 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나무줄기와 같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가지가 끊어진다면 그동안 쌓여온 기술과 이야기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문화유산에는 관심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지원과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록하는 사람, 보존하는 사람, 기술을 이어가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문화유산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사진을 통해 다시 이어지는 우리의 것


 

IMG_0029.jpg

 

 

이 책을 읽으며 문화유산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헌강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건축물과 유물, 자연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도 닿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자연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듯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것에서도 비슷한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앞으로 문화유산을 마주할 때 단순히 ‘사진을 찍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왜 이곳이 남아 있는지, 누가 이곳을 지켜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싶다.


사진 한 장은 그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나에게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한 책이다. 카메라를 들고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로, 그리고 무엇인가를 오래 좋아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문화유산은 누군가 계속 바라볼 때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시선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된 것들은 다시 우리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효정 에디터 태그 명함.jpg

 

 

강효정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일상을 담습니다

강효정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K-POP의 다음 무기는 무엇일까 [음악]
  2. 02 [Opinion] 좀비는 영화 밖에도 있다 [영화]
  3. 03 [Review]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괜찮아질까 – 상자 속의 양 [도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