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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긴 여정의 끝에서, 오디세이아 [도서]

인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원형 속 모험

by 정현승 에디터
2026.08.16 11:48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과 젊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지금껏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역경을 견뎌왔소. 만약 신들께서 아직도 내게 내리실 고난이 더 남아 있다면, 내 그 나머지도 모두 기꺼이 견뎌낼 작정이오!”


202쪽

 

    

많은 이야기의 서사적 원형이 되는, 조셉 캠벨이 제시한 영웅서사의 12단계의 마지막에서는 ‘귀환’을 제시한다. 모험에 오른 영웅은 관문을 넘고 적과 협력자를 만나며 시련과 보상을 지나쳐 결국 자신이 존재하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현대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이야기도 이러한 마스터 플롯*을 따르는 만큼, ‘주인공으로 정해진 사람이 모험 끝에 귀환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늘 익숙한 소재일 것이다.

 

*마스터 플롯: 특정하게 코드화된 서사적 공식


여러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신화적 서사 중에서도, 기원전 8세기 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에서 2대 원류로 인정받는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카이아군의 승리를 끌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온갖 역경을 겪으며 고향인 이타케로 향하는 10년 간의 긴 여정을 담은 것이 <오디세이아>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각색해 제작한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가 개봉하면서 원형인 <오디세이아>에 대한 주목도 다시금 쏠렸다.

 

 

45_오디세이아_앞.jpg

 

 

<오디세이아>(아우구스테 레히너 풀어지음, 김은애 옮김, 문학과지성사)는 전권 24권에 달하는 원전을 읽기 쉬운 구성과 흐름으로 정리했다. 레히너는 산문 형식으로 오디세우스 일행이 트로이 전쟁 후부터 배를 타고 이타케로 향하는 여정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여 <오디세우스>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단순히 영웅의 성공적인 귀환담에 이르기보다, 여정 중의 온갖 역경을 대처해 나가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그것 때문에 남은 여정과 인생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고통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태도로 눈앞에 다가온 모든 시간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남편이 이타케로 돌아오지 않은 지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정절을 지키며 남편을 기다린 페넬로페와 페넬로페에게 찾아온 구혼자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주인을 지키는 마음을 유지해 온 돼지치기 청년 에우마이오스 등 ‘돌아올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다. <오디세이아>는 모험뿐만 아니라 오디세우스와 그를 둘러싼 인물을 통해 독자가 고려해야 하는 인간상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전 속 많은 원형이 신화와 맞닿아 있는 만큼 주목해 볼 만한 점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수년 간의 역경과 고난의 모험을 끝내고 그를 이타케로 도달할 수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신들의 뜻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이타케에서 오디세우스는 단번에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밝히지 않는다. 아들인 텔레마코스, 유모, 늙은 개와 아내 텔레코페가 자신을 ‘오디세우스’임을 인식하고 알아볼 때까지 왕이 돌아왔음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


자신의 뜻이 아닌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간과, 그토록 기원했던 고향의 땅을 밟고도 모든 이들에게 단숨에 뛰어가지 않는 인간이라니. 이 두 가지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감히 헤아려보자면 호메로스와 당대 사람들이 ‘인간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아니었을까.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인 신의 뜻을 빌려 모험을 시작하고 닫으며, 도착지에서마저 한 인간을 그 사람으로(오디세우스로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인간성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디세우스는 “사랑하는 모든 일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과 젊음”은 모두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영원한 생명과 젊음은 신의 상징적인 특징이자 혜택이다. 한낱 인간일 뿐인 오디세우스가 신의 유혹과 처벌을 물리쳐가며 지키고자 했던 건 본인이 ‘오디세우스’라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나라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정체성이었다.

 

21세기의 어느 날인 요즘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흩어져 없어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강해지는 것 같다. 둘 중에서 우등한 것과 열등한 것을 가릴 수 없듯이, 나아가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간성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차례가 아닐까. 그 사유의 실마리를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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