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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현대음악이라는 낯선 문을 열다 - 앙상블블랭크 10 [공연]

예술의 가치는 익숙한 세계를 넘어 낯선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by 임채희 에디터
2026.06.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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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보면 선뜻 하나의 장르를 말하기 어렵다. 시즌에 따라 즐겨 찾는 음악이 있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힙합을 듣고, 어떤 날은 발라드만 반복해서 듣는다. 또 어떤 날은 신나는 댄스 음악을 찾다가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전시, 공연, 책까지. 돌아보면 필자는 특정한 하나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다양한 예술을 좋아하는 예술 잡식러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현대예술이다. 현대예술은 기존의 틀에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현대예술을 접해보았지만 여전히 작품을 마주할 때면 "이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해할 듯하다가도 다시 멀어진다.


그래서 앙상블 블랭크의 공연은 나에게 현대예술과 가까워지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새로운 현대예술을 마주한다는 기대감과 아직은 낯선 영역이라는 어색함을 동시에 안고 지난 13일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음악이 펼치는 하나의 장면


 

I. Stravinsky (1882-1971) - Histoire du Soldat Suite (1918)


첫 번째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였다.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음악을 대표하는 러시아 작곡가로, 1913년 발표한 <봄의 제전>을 통해 음악계에 큰 충격을 안긴 인물이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소수의 연주자만으로도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병사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악마에게 자신의 바이올린을 팔게 된 한 병사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극을 위해 만들어졌다. 첫 번째 악장에서는 타악기와 더블베이스의 반복되는 리듬이 마치 긴 여정을 걷는 병사의 발걸음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악장에서는 잠시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악장이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기묘해졌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쌓이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특히 일곱 번째 악장에서는 반복되는 리듬이 긴장감을 극대화했고, 마지막 악장에서 강렬한 타악기 연주를 통해 악마가 승리했음을 표현하는 듯했다. 이번 공연을 깊이 감상하기 위해 작품이 가진 배경을 어느 정도 찾아보고 갔는데, 그로 인해 음악이 아니라 한 편의 극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선율만이 음악이 아니다.



H. Lachenmann (b.1935) - Pression (1969/70)


이번 공연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곡은 두 번째 곡인 Pression이었다. 현대음악이 가진 실험적인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음악이었다. 첼로 한 대만으로 진행되는 연주였지만, 내가 알고 있던 연주 방법과는 달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자는 활을 현에 긁기도 하고, 현뿐만 아니라 악기의 나무 부분까지 활용하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곡은 악기가 반드시 아름다운 음을 내기 위한 도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악기에서 발생하는 마찰음, 움직임, 작은 소리까지 모두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어느 순간부터 눈보다는 귀에 집중하고 있었고,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P. Hindemith (1895-1963) - Duet for Viola and Cello (1934)


 

두 번째 곡의 강렬한 경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 번째 곡이 시작됐다. 이번 곡은 비올라와 첼로 두 악기가 서로 대화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어느 한 악기가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 한 악기가 메인 악기를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두 악기가 동등하게 연주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서로 경쟁하듯 빠르게 주고받고, 때로는 하나의 악기처럼 어우러졌다. 각자의 길을 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만나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것이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앞선 세 곡이 끝난 뒤,  최재혁 음악감독이 무대에 올라 짧은 감사의 말과 이번 공연의 기획 의도에 대해 언급했다. 사실 필자는 공연을 보기 전, 연주곡을 미리 찾아보고 여러 번 들어본 뒤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프로그램북에는 곡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 들었던 의문은 음악감독의 설명을 통해 풀렸다. 최재혁 음악감독은 보통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어떤 음악을 듣게 될지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선입견이 생기지만 모든 곡은 아름답고 각자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자신들의 공연을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프로그램북에 곡 정보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미리 음악을 공부하고 갔기에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정보 없이 이 음악들을 처음 만났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P. Boulez (1925-2016) - Dérive 1 (1984),  J. Adams (b.1947) - Chamber Symphony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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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곡인 Dérive 1은 푸른 조명 속에서 연주됐다. 섬세하게 이어지는 음들은 어딘가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전까지 비브라폰은 밝고 맑은 느낌을 주는 악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브라폰의 울림은 때로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낯설고 기묘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악기가 가진 가능성이 얼마나 다양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곡에서는 프로그램북에 나온 대부분의 악기가 등장해 앞선 곡들에 비해 더 풍성하고 다양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악기가 함께 등장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음색, 그리고 악장마다 변화하는 조명은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세 번째 악장에서 빠르게 이어지는 타악기의 연주는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현대음악 특유의 긴장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앙상블블랭크는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통해 미래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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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현대예술이 어렵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는 쉽게 의미를 부여한다. 한 번쯤 들어본 멜로디, 눈에 익은 작품, 이해하기 쉬운 클리셰적 서사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하지만 현대예술은 이러한 익숙한 기준을 흔든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부터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지조차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어쩌면 현대예술이 어렵다며 거리를 두었던 이유도 작품 자체가 어려워서라기보다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불편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의 모든 음악이 아름답게 들리고 즉각적인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음악은 미리 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낯설었고, 특히 첼로를 또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던 Pression은 쉽게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는 반드시 이해의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쉽게 답을 주지 않는 그 자체가 관객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현대음악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든 경험이라기보다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작품을 마주하는 방법을 알려준 공연에 가까웠다. 익숙한 아름다움만을 찾던 시선에서 벗어나 낯선 것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 어쩌면 예술의 가장 큰 가치는 익숙한 세계를 넘어 낯선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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