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 꼽히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중 유독 미술관은 언제나 나에게 어려운 곳이었다. 유명한 그림이라고는 하는데 왜 유명한지도 잘 모르겠고, 작품이나 작가가 어떤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존재인지도, 이 그림을 보고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건지도 와닿지 않는, 그저 의문투성이인 공간일 뿐이었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을 읽기로 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책을 쓴 김정화 작가는 오랜 시간 파리에서 공부하며 여러 대학의 교수를 거친 뒤 서울공예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개관을 총괄한, 그야말로 문화의 전문가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펼치면 바로 그런 사람이어도 벗어날 수 없는, 미술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가장 먼저 나열된다.
어둑한 복도와 계단을 따라가다가 처음 맞닥뜨린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설명란에 ‘산드로 보티첼리, 프레스코, 15세기’라고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 어느 집의 벽에 그려졌던 벽화 한 부분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곳으로 옮겨와 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도 “진짜 보티첼리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곤 곧 ‘왜?’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쏟아져 나왔다. 왜 이 그림은 거기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우리는 왜 이 그림을 중요한 ‘작품’이라고 여기는가. 미술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귀하게 모셔두고 있을까. 미술관이 뭐길래. 미술관은 왜 있는 걸까. 우리는 왜 미술관에 오는 걸까.
작가가 학생 시절 느꼈던 이 의문이 그야말로 내가 미술관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품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그림은 왜 이곳에 걸릴 정도로 중요한 존재가 된 걸까? 처음 보는 작가 이름인데 혹시 미술사에서 유명한 인물인 걸까? 그렇다면 왜 이 작가의 여러 작품 중 하필 이것이었을까? 그리고, 왜 이 위치에 걸어두었을까?
미술관을 잘 아는 사람도 처음에는 누구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작품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색다른 충격이었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는 것을 알고 나자 어쩐지 더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던 미술관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주기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 입체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12204649_luenhcge.jpg)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파리 골목길 곳곳에 있는 작은 미술관 8곳을 소개한다. 들라크루아, 마르모탕 모네, 로댕, 귀스타브 모로, 몽마르트르, 피카소, 르코르뷔지에, 자코메티 미술관이 그것이다. 기실 파리에는 이미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3곳의 대형 미술관이 있지만, 그런 곳은 너무 넓고, 또 너무 많은 작품과 인파가 있기에 그림 하나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골목길로 숨어들었고, 특이하게도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은 미술관들을 나열한 뒤 그 안에 든 작품들을 단순하게 쏟아내지 않는다.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마주하는 광장에 잠시 앉아 이곳에 어떤 역사적인 인물들이 왔었고 어떤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는지 먼저 설명한다. 작가가 직접 찍은 현장감 넘치는 사진들과 함께 읽고 있노라면 마치 그곳에 실제로 앉아 얘깃거리를 나누는 것만 같다.
주위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 책은 나를 파리의 골목길 안으로 인도한다. 이 길 역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곳이 근방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지, 왜 하필 이 골목길 근처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미술관이 생겨났는지 등 작은 이야기들이 먼저 나온다. 그 후에야 나는 미술관 건물을 마주한다.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만들곤 하던 입구가 이 순간에는 전혀 두렵지 않고, 오히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이제 이 미술관은 나에게 들이닥친 미지의 공간이 아니라, 이곳까지 걸어오는 내내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실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직접 박물관 개관을 총괄하고 초대 관장까지 지내본 작가의 시야 덕에 작품은 단순한 역사 소개가 아니라 왜 하필 이 자리에 배치되었는지까지 폭넓게 분석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인사이트 같은 것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예로 들어보자. 건물에 처음 들어가 좁은 길을 지나면, 화려한 타원형 테이블과 금동 센터피스, 높은 촛대와 삼미신이 우아하게 춤을 추는 조각이 나온다. 그리고 벽면에는 <빅토린 드 벨리오의 초상>, <신문 읽는 클로드 모네>, <모네 부인의 초상>과 같은 초상화들이 사이사이에 걸려 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 공간에 들어섰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끄러운 말이지만 ‘아름답다’ 정도의 외적인 감상만 남겼을 듯하다. 기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러한 배치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만찬 손님들을 기다리듯 관람객들을 환영하는 듯하다고 적는다. 초상화 역시 모네와 깊은 관계가 있던 사람들의 것을 골라 마치 손님들을 지켜보는 집주인의 역할을 하게끔 배치해둔 것이다.
미술관의 1층으로 입장해 둘러본 뒤 2층으로 올라간다. 중간중간의 복도에 걸린 그림들도 빠뜨릴 수는 없다. 특이하게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2층까지 둘러본 뒤에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특별전시실을 거쳐 지하 전시장으로 가게끔 되어 있다. 또 한 번 부끄러운 말을 하자면, 나는 이것이 특이한 동선 배치라는 점도 눈치채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은 공간이 협소해 그런 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1966년에 모네의 아들이 대량의 작품을 기증하였고 이를 전시하기 위해 지하 전시장을 별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동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의 공간을 기획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쉽게 지나치는 부분 하나하나에도 계산된 디테일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역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미술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이 예술을 꼭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작품 자체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맙게도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그런 부담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미술관을 찾아오는 주변의 일상적인 공간들부터 차근히,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는 마치 조감도를 보듯 한 걸음 물러나 천천히, 그렇게 감상하다 보면 어느샌가 미술관을 이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